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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
(요한 11,52),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어떻게 한 사람의 죽음이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에제키엘 시대, 곧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유배를 간 순간부터 하느님께서는 흩어진 당신 백성을 다시 모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대사제 카야파도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을 테지만,
그 절차와 방법은 사뭇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제거함으로써 백성의 소요를 막고
로마의 침입을 예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는 위험 요소를, 곧 자신과 대립되는 사람을 제거함으로써
안전을 확보하고 국론을 통일시키려고 합니다. 그가 말하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은 사실 안정을 위하여
한 사람을 희생시키고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편에서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은 다른
누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죽이도록 내어 주심을 뜻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죽음은 일치를 가져옵니다. 상대방을 죽이는 것은
끝없는 죽음의 악순환을 가져올 뿐입니다. 그 죽어야 할 사람의 자리에
‘나’를 놓을 때, 내가 그 죽음의 악순환에 마침표를 찍을 때,
흩어진 이스라엘은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에페소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2,14)라고 고백합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바치신 당신의 몸으로 적개심을 허무시고
갈라진 이들을 결합시키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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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십자가 짊어지신 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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