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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요한 3,14).
‘들어 올려진다’는 표현은 요한 복음의 특징적인 용어입니다.
요한 복음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때를 예수님께서 현양되시는 때,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이 드러나는 때라고 표현합니다.
요한 복음서 전반부에서는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내용이 소개되는데,
심지어 그분께서 기적들을 행하시는 시기마저도 아직 때가 되지 않은 시기,
표징을 보여 주시는 시기로 이해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때야말로
비로소 현양의 때, 영광의 때라고 강조합니다.
십자가에 달리는 것을 영광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눈이 아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십자가에 달리는 것은 극악무도한 흉악범이
비참하게 처형되는 순간에 불과하고, 좀 더 긍정적으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무죄한 의인이 이 세상의 권력에 불의하게 희생되는 순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획은 당신 외아드님이 가장 무력한 죽임을
당하심으로써 인간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시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컸기에 하느님의 아드님,
창조 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신 말씀, 신성을 지니신 그분께서
불의한 힘에 의하여 이렇게까지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셨을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강력한 힘의 행사가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세상에 구원을 주십니다.
세상을 위하여 이렇게 생명을 바치시는 그 사랑이,
이 세상의 권세보다 강한 예수님의 전능하심입니다.
세상의 권세는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죽을 수는 없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 구원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전능, 예수님의 현양은 그 전능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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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그 밤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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