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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 없이 베푸는 것이 아니라면 진정한 용서라고 말할 수 없기에,
하느님의 자비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자르야의 기도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용서를 받기 위하여
바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당신께 제물을 바쳐 자비를 얻을 곳도 없습니다”(다니 3,38).
이렇게 성전이 파괴되었을 때, 그리고 그 이후에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져 살게 되었을 때,
역설적으로 이스라엘의 신앙은 오히려 정화됩니다.
빈손으로 하느님께 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죄로 낮추어진 마음이 짐승을 잡아 바치는
제사보다 더 순수한 제물로 하느님께 바쳐집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무엇을 바쳐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다고 스스로 낮추며 뉘우치는 이에게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느님께 무엇을 많이 바쳐야만 한다는 생각은 과감하게 떨쳐 버려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신앙 안에는 어느새 그와 같은 기복적이며
이교적인 요소들이 많이 스며들어 왔습니다.
하느님은 무엇을 해 달라고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랑으로 준 선물에 대가를 지불한다면
그 선물은 하나의 상품에 불과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임금이 빚을 탕감해 준 것은
“가엾은 마음”(마태 18,27)에서였습니다.
그렇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오직 우리가
당신의 자비를 입고 새사람이 되어 형제들을 향해 가는 것,
형제들이 “마음으로부터”(마태 18,35) 서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비가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나 열매를 맺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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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용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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