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2015. 3. 18. 오전 4: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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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유다인들은 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을까요?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의 신성을 주장하셨기 때문입니다. 벳자타 못 가에서 서른여덟 해를 앓는 병자를 고쳐 주시는 예수님께서는 오늘 독서에 소개된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인고의 서른여덟 해! 그 병자는 하느님께서 이미 자기를 잊으셨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이 출렁일 때 그를 도와 물에 들어가게 해 줄 사람이 없었던 것을 보면 가족도 이미 그를 돌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그저 잊히고 버려진 병자일 뿐, 그를 가엾이 여겨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가가셨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부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셨습니다. 수많은 병자 가운데서도 그가 절실히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먼저 알아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 속에 있는 그를 빛으로 불러내셨습니다(이사 49,9 참조).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인간적 연민에서 그를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그대로 하실 따름이었습니다(요한 5,19 참조). 차라리 그저 인간적 연민이었다면 유다인들은 그분을 죽이려고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단지 안식일을 어긴 불경한 사람이라며 꾸짖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치유가 하느님의 행위라고 주장하셨기 때문에 유다인들은 그분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소외되고 버려진 이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행위가 하느님에게서 비롯될 때 사람들은 그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뿐, 그 안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알아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당사자도 자신의 행위가 하느님에게서 비롯된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치유 행위가 하느님에게서 왔음을 강조하시면서 당신에 대한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치유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점이 바로 벳자타의 병자를 고쳐 주신 예수님의 자애와 순전히 인간적인 자비가 서로 다른 점이며,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치유해 주시고서도 죽임을 받으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예수 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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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15.03.20조회 39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15.03.19조회 53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15.03.18조회 65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었다.15.03.17조회 50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15.03.16조회 40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15.03.15조회 41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15.03.14조회 35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15.03.13조회 35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15.03.12조회 34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15.03.11조회 36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15.03.10조회 36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15.03.09조회 34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15.03.08조회 35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15.03.07조회 35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15.03.06조회 35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15.03.05조회 36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15.03.04조회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