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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에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인물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인간적인 측면에서 받아들이다가 잘못 알아듣게 됩니다.
단순하게 보이는 말씀 안에 다른 뜻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주의를 기울여 복음을 살펴봅시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
(요한 8,28). 내가 나라는 것,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나다.”라는 한마디는 중대한 뜻을 품습니다.
모세가 하느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그분께서 하신 대답이
“나다.”이기 때문입니다(탈출 3,14 참조).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은, 당신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그 하느님이심을 깨달으라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한편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다음을 뜻합니다.
십자가 처형을 현양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역설적이지만,
그렇게 못 박은 다음 십자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그분에게서
신성을 알아본다는 점은 더욱 역설적입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오늘의 말씀 전례는 이 복음을 민수기의 말씀과 함께 놓음으로써
그 십자가의 의미를 해석해 줍니다. 불 뱀에 물렸어도 높이 달린 구리 뱀을
바라본 이들은 죽지 않았기에, 구리 뱀은 구원의 표지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전례와 같은 의미로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3,14-15). 그들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점에서
예수님께서 위에서 오신 분, 아버지에게서 오시어 아버지께 돌아가시는
분이심이 드러납니다. 우리 안에 넘치는 생명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주어진 그 생명이 예수님의 신성을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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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아버지 뜻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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