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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
무수한 추측과 상상과 신학과 연민을 불러일으켜 온 인물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논쟁거리가 될 인물인 듯합니다.
복음서에 따라 조금씩 강조점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요한 복음에서 분명한 것은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수동적으로 배반을 당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늘 복음에 따르면, 유다가 먼저 예수님을 배반하고
그다음에 예수님께서 누가 배반했는지 아시게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신 다음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아시면서도,
유다에게 그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라고 이르십니다.
또한 빵을 함께 나누는 벗이 배반하리라는 내용은
시편 41편 10절을 암시하고 있어서, 유다의 배반이 이미
구약에 예언되었고 따라서 하느님의 계획 안에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이런 행동을 막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당신의 수난을 향하여 나아가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에도,
요한 복음에서는 유다가 입맞춤으로 예수님임을
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당신 자신을 밝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피해 가려 하지 않으십니다.
당신 뜻을 거슬러 그들이 강제로 죽이도록 당신을 내맡기지도 않으십니다.
또한 끝까지 피하려 하셨다면 피할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의 계획을 막으실 수 없었겠습니까?
당신께서 하고자 하셨다면,
사람들이 요구하던 대로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길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기에
(요한 15,13 참조),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사랑으로 죽음을 받아들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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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주님 앞에는 어둠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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