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창세 22,7)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고 길을 떠날 때에 이사악이 던진 질문입니다.
그러나 제물로 바칠 양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사악 자신이 바로 그 제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파스카도 그러했습니다.
죽음을 피하시려고 다른 양의 피를 흘리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몸을 내어 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써 새 계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요한 13,1)하신 방식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까지 받아들이시고 사랑으로 목숨을
내어 주시는 것에 비하면, 어쩌면 발을 씻어 주시는
복음의 장면은 상대적으로 작은 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하시는 일은 그렇게
발을 씻어 주시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3,34, 복음 환호송) 하고 말씀하시면서
새로운 사랑의 계명을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명하신 것은 아주 단순한 바로 그것,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곧 목숨을 내어 주신 그 사랑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발을 씻어 주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발을 씻어 주는
종의 위치가 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작아져서 내 자리를
양보하거나 내어 줄 상황은 누구에게나 일어납니다.
그렇게 작은 ‘내어 줌’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분명 우리가 실천하는 사랑은 새로운 필요성과 새로운 가능성과
새로운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
-출처 매일 미사-
♬ 그 사랑 전하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