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오늘 제1독서의 이사야서가 선포하듯,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친히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느님의 계명에 나타난 참된 지혜를
거부한 나머지 모든 것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어리석음을 안타깝게 여기시는
주님의 탄식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도 확인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말만이 아니라 금욕의 삶으로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회개의 시급함을 알렸으나,
백성의 지도자들은 오히려 그를 비난하고 제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격의 없이 대하시며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몸소 보여 주셨을 때, 이른바 안다는 자들과
힘 있는 자들은 예수님의 처신을 폄하하며 불편하게 여깁니다.
그들은 예언자들을 거부한 그들의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 나라의 선포에 대한 어떠한 ‘울림’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은 판단과 지식 이전에 주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즉각적인
‘울림’이 되고, 그 울림에 온전히 ‘공명’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이노우에 요지 신부는 그의 책 『사람은 왜 사는가』에서
일본의 뛰어난 가톨릭 시인 야기의 짧은 시 하나를 인용하여
울림과 공명을 아는 참신앙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 밝음 속에/ 하나의 소박한 거문고를 놓으면/
가을의 아름다움에 견디지 못해/ 거문고는 조용히 울리기 시작하겠지.”
이노우에 신부는 ‘소박한 거문고’가 아니라면 아무리 빛을 받더라도
거문고는 스스로 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시의 뜻을 새기면서, 자기중심적인
교만함이 없는 소박한 거문고가 되고 싶어 하는 시인의 소망에 감동합니다.
우리 또한 오늘의 미사 독서를 묵상하면서 주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울림을 주고 있는지, 소박한 거문고처럼
그 울림에 삶으로 응답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
-출처 매일 미사-
♬ 우리 사랑안에 하느님 사랑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