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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남아메리카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해방 신학’은
당시 교회 안팎에서 큰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해방 신학이 제시하는, 권력자와 특권층의 위치를 정당화시키는
교회가 아니라 가난한 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교회상은,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이에게 희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일부 해방 신학자들이 사회학적 분석의 방법론으로
사용한 마르크스주의의 오류와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태도 등으로 말미암아 교도권의 우려를 자아냈고,
그들에 대한 제재가 따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불행한 역사는 남아메리카의 교회 지도자들과
평신도 신학자들의 노력으로 극복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편향되고 지나치게
정치적인 시각을 바로잡으며 해방 신학 본디의
복음적 열정과 식별을 새로운 언어로 되살리려는
꾸준한 노력의 결실입니다.
이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라는
해방 신학의 본디 이상이 ‘복원’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의 바람직한 교회상을 보여 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도 그 반향을 듣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 마음에 담을 만한, 해방 신학이 제시한
통찰은 ‘올바른 실천’(정행)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입니다.
‘산상 설교’의 마지막 대목이기도 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을 들었는지가 아니라 올바로
실천하는지의 여부가 참된 그리스도인인지를 결정한다고 밝히십니다.
독일의 현대 신학자 에버하르트 쇼켄호프 신부는 최근 저서
『산상 설교』를 이 구절의 묵상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은
‘사랑의 실천’과, 이 사랑의 실천 없이 주님의 말씀을 ‘귀’와
‘입’으로만 아는 데에 머무는 두 가지 선택이 주어졌다고 합니다.
그는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는 예수님의 단호한 요구는 또한
우리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인 ‘산상 설교’의 가르침을
실천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길을 걷는 이는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대림 시기는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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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Ubi caritas Deus ibi e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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