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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 성월의 끄트머리인 까닭인지 죽음에 대한 묵상의 기회를 자주 가집니다.
이 죽음에 대한 묵상은 오히려 삶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합니다.
죽음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볼 때 삶이 더욱 절실해지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손톤 와일더의 희곡
『우리 읍내』는 죽음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삶의 소중함을 애잔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젊은 주부 에밀리가 일찍 죽어,
막 죽은 이들의 세계인 마을의 무덤가로 오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단 한 번이라도 산 이들의 세계로 돌아가 보기를 염원했던
그녀는 마침내 행복했던 열두 살 때의 어느 하루로
되돌아가는 기회를 갖습니다.
그 시절의 행복을 되찾으려던 그녀는 다시 찾은 이승에서
사람들이 소중한 하루하루를 얼마나 맹목적이고
이기적으로 보내며 허무하게 사는지를 깨닫고 비통 속에 말합니다.
“몰랐어요, 모든 게 그렇게 지나가는데, 그걸 몰랐던 거예요.
데려다 주세요, 산마루 제 무덤으로요.
아, 잠깐만요. 한 번만 더 보고요.
안녕, 이승이여. 안녕, 우리 읍내도 잘 있어.
엄마 아빠, 안녕히 계세요. 째깍거리는 시계도 해바라기도 잘 있어.
맛있는 음식과 커피도, 새 옷과 따뜻한 목욕탕도, 잠자고 깨는 것도.
아, 너무나 아름다워 그 진가를 몰랐던 이승이여, 안녕.”
그러면서 그녀는 이렇게 묻습니다.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매순간?”
사색의 이 계절에 용기를 내어
‘자신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현재의 삶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은 지금 여기서
더욱 생생하게 살게 하는 길을 보여 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신앙의 눈으로 죽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죽음으로 단절되는 유한한 삶에서
슬픔과 허무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약속된 영원한 삶의 빛나는 조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살아 있는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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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내 모든 사랑 주께 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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