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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에서 묵시적이고도 종말론적인
담화들이 모여 있는 첫 번째 대목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묵상하며 ‘사람의 아들의 날’에 대한
묵시 문학적 표현에만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존재 방식에 대해 예수님께서
명확하게 말씀하시는 어제 복음의 정신에 따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깨어 있는 마음으로 ‘종말론적 긴장’을 지니되,
이적을 동반하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가시적인 현상으로
하느님 나라를 이해하는 경향에는 거리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에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그 때와
장소에 대한 우리의 철저한 관점의 전환을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관점은 ‘사람의 아들의 때’에 관한
오늘 복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기본 범주인 때와 장소, 곧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는
크게 물리적 차원과 관념적 차원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 관해 성경이 말하는 시간과 공간은
물리적 차원과 관념적 차원의 이해를 뛰어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이들이 실제로 체험하는,
하느님께서 ‘위에서’ 개입하시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물리적 차원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분명히 ‘실재’로서
현존하는,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자리로서의 공간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 나라를 우리는 ‘사건’으로서 체험하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현존은 이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지만 이 세상에 매이지 않는 사건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사람의 아들의 때’를 기다리는 이는
그 나라의 가치를 철저하게 실천하며 세상의 삶을 초월합니다.
그러나 참된 종말론적 윤리는 결코 세상에서 도피하거나
맹목적 두려움에 따른 포기를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의 자리와 일상이 하느님 나라가 현존하는 때와
장소가 되도록 복음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삶의 모습을 뜻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종말론적 차원을 늘 간직하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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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그날이 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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