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소원을 빈다는 것은 인간의 심성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행위입니다.
자신이 종교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때때로
자신이 모르는 절대자에게 절실하게 소원을 빌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 또한 청원 기도를 자주 바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청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청원 기도보다는
감사와 찬미의 기도가 더 높은 차원이라는 영적 지침을 듣습니다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청원 기도를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우리는 신앙인들의 청원 기도와,
‘먼 곳에 있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 올리는
비신앙인들의 염원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재판관에게 끈질기게 청하는 과부는 재판관과 같은
고을에 살아 그가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기도하는 이들이 가져야 하는
주님의 ‘현존 의식’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원이든, 감사와 찬미이든, 묵상이든, 모든 기도의 진실성과
간절함은 하느님의 현존을 ‘가까이’ 느끼는 데서 비롯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먼 곳’을 향해 보내는 ‘기약 없는 편지’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주님과 함께하는 대화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과학자이자 신학자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테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의 묵상 한 대목이 기도 생활의
기초가 되는 하느님의 ‘현존 의식’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 안에, 그리고 성자로 강생한 모든 것 안에 계시는
하느님은 우리가 주변에서 보고, 만지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는 세상과 완전히 떨어져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 안에서,
현재의 일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중략)
하느님께서는 나의 연필 끝에도, 나의 붓 끝에도,
나의 바늘 끝에도, 내 마음과 생각 안에도 현존하신다.”
|
-출처 매일 미사-
♬ 나를 사랑하신 주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