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여줘야
몇 년 전 가평 성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성당에 성체 분배를 하러 자전거를 타고 가시던 한 할아버지께서,
몇 년 전 가평 성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성당에 성체 분배를 하러 자전거를 타고 가시던 한 할아버지께서,
언제나 그랬듯이 삼거리에 있는 내리막길을 속도를 내며 달려서 왼쪽으로 꺾어 성당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왼쪽으로 꺾는 순간 마주오던 동네 친구 분의 자전거와 부딪혀 그만 이마에 상처가 나고 말았습니다. 성체 분배하러 가는 길인데 몸은 온통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이마에 상처까지 났으니 난감해졌습니다.
“좋은 일을 하러가는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길까” 하는 생각에, 그동안 아무 일도 없이 잘 다녔는데 의아하기만
“좋은 일을 하러가는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길까” 하는 생각에, 그동안 아무 일도 없이 잘 다녔는데 의아하기만
했습니다.
먼지를 털고 성당에 겨우 도착한 그 할아버지는 교우들로부터 속도를 내며 달려 내려왔던 그 삼거리에 다음 날부터 버스 노선이 생긴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제야 버스와 부딪힐 뻔 했던 큰 사고를 예수님께서 미리 막아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렇듯 예수님과 성모님은 우리 곁에서 지켜주시고 계십니다. 세상 이치와 눈으로는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렇듯 예수님과 성모님은 우리 곁에서 지켜주시고 계십니다. 세상 이치와 눈으로는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지금 눈앞에 다가온 어려움 때문에 우리는 실망하고, 예수님께 의지하기 보다는 도망가려 합니다
마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모습처럼 말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는 예수님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세상 걱정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 알아볼 수 없었을까요? 그것은 절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평과 불안에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길을 가면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야기하는 동안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 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가 24,32)하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도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처럼 신앙을 놓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과 나와의 사랑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고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입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도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처럼 신앙을 놓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과 나와의 사랑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고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입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삶 자체가 밝지 않습니다. 우리는 교회 모임이나 봉사를 할 때 부활한 주님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세속에 관한 것들에 마음을 두고 떠들며 가지 말아야 합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는 예수님과 이야기 하면서 갔는데도 예수님을 못 알아 봤는데, 다른 일상생활 이야기를 하면서
간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신앙은 하느님께 드러내는 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곧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신앙은 하느님께 드러내는 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곧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하느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깨닫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 기도는 바로 하느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다는 잊니 않기 위해 끈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 사도들은 성령 강림을 통해서 변화되었습니다.
초대교회 때 사도들은 성령 강림을 통해서 변화되었습니다.
처음 신앙 공동체가 생활하는 모습이 사도행전에 잘 나와 있습니다. 말씀은 서로 나누고 가진 재산을 서로 나누며
기도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공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라, 저들이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가를...” 하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바로 그 모습 자체가 선교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초대 교회가 커나갔습니다. 말씀과 성찬, 성사를 통하여 초대교회 사도들이 그리스도를 만났듯이, 이제 우리를 총해서 그리스도를 보여줘야 합니다.
레지오단원들은 부활한 예수님을 이야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사랑하고 선교할까 고민해야 합니다.
바로 그 모습 자체가 선교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초대 교회가 커나갔습니다. 말씀과 성찬, 성사를 통하여 초대교회 사도들이 그리스도를 만났듯이, 이제 우리를 총해서 그리스도를 보여줘야 합니다.
레지오단원들은 부활한 예수님을 이야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사랑하고 선교할까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그리스도는 가정 안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기도할 때만 예수님께 매달리고, 나와서는 다른 사람이 된다면 잘못 사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안에서 성모님께 매달리면 성모님께서는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더 나아가 가평 할아버지처럼 모든 위험과 환난에서 미리 구해주시는 성모님이십니다.
우리 삶 안에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큰 사랑에 감사하며,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축복 받을 수 있는 레지오 단원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박성규 베네딕도 신부
박성규 베네딕도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