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1요한 2,2)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그 누군가의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누군가의 죽음과 희생이 없이는 새 생명이 탄생 할 수도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고 우리 인간이 살아감의 이치 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생명이 존귀한 이유는
누군가의 고귀한 희생과 죽음이 헛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어제 서품식에서
주교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새 사제의 아버지가 아들 신부에게 편지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신부님 잘 사십시오. 나는 죽었습니다.
아들을 하느님께 바치면서 나는 죽었습니다."
사제의 탄생은 누군가를 죽이고서야 이루어지는 직분이기에
고귀하고, 그래서 잘 살아야 합니다.
구세주의 탄생을 위해서도
죄없는 어린 아기들의 죽음이 필요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오기 위해서는 이해 할 수 없는 희생제물이 요구되나 봅니다.
예수님은 무죄한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자신의 고귀한 소명,
즉 가난한 이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당신 스스로 희생제물이 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생명으로 초대하였습니다.
그대의 생명도 얼마나 고귀한지요?
그대를 위해 희생하고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수많은 동식물들, 물고기들이 죽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노동현장에서 수고의 땀과 고통을 봉헌 합니다.
이렇게 그대의 생명은 고귀합니다.
존귀합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하느님의 자녀이고 하느님을 담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잘 살아서 그대도 더 많은 생명을 살리도록 최선을 다 하십시오.
그대도 죽음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희생제물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잘 살고 잘 죽는 오늘 되소서.^^
-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묵상 글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2012. 12. 28. 오후 5: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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