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아름다움..

2012. 8. 7. 오전 8:3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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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옆지기와 우아함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과연 우아함이란 것이 무엇일까부터 왜 그러고 사는지에 대한 정의라고나 해야하나 암튼 그런 대화를
하다보니 저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더군요.

제가 정의한 우아함이란 이런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사람이란 다른 사람과 다르고 이 다름에 집착하다보니 조금 더 다르게 보이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다르게 보이려고 한다는 것은 어쩌면 나아보이게 하는 그런 모든 행동을 말하는 것이겠죠.

인조적인 모든 것들 예를 들어 우리가 표현하는 회색도시에서는 이 서로 다름이 표가 많이 납니다.
입고 걸치고 들고 신고 다니는 모든 것들이 튀게 마련입니다. 회색도시란 것이 인조적이다보니
당연히 인조적인 모든 것들 역시 돋보이는 것이 당연하겠죠.

그러나, 제가 사는 이곳처럼 땅떵이는 크지만 사람이 그닥 많지 않은 곳은 자연적인 것이 대세입니다.
인조적인 것이 힘을 쓰지 못하죠. 설사 그런 치장을 아무리 한다해도 돋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자연 속에 묻히게 됩니다. 이러다보니 우리의 본성에 조금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정작 1차적인 우아함이라고 하면 자연적이어야 하지만 인조적인 것들이 1차적인 우아함으로 인식되다보니
제 인식으로는 자연적인 것이 3차원 내지 고차원의 우아함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어찌됐든 1차적인
수단이 그리 힘을 쓰지 못하니 이곳에서의 삶이 편안합니다. 굳이 드러내 놓지 않아도 좋고 드러낸다고
해도 별반 차이가 없으니 그런가보다 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제가 정의하는 2차적인 우아함은 학벌이나 가문 뭐 이런 것입니다.
2차적인 이런 우아함도 결국 이곳에서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민자로서 살아가는데
어떤 도움이 될까 생각해보지만 진정한 실력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3차적인 우아함은 누구나 다 아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꼽습니다.
신앙을 가졌든 가지고 있지 않든 상관없이 영혼을 위해 누구나 기도합니다.
그 내용이 기복적인 것이든, 노예적인 것이든 간에 이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에도
몇 개의 단계가 있겠지만 사회생활 하며 겪는 가장 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최고의
방법이 바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지 않을까 믿게 됩니다.

오늘도 누구는 무엇을 가졌고, 어떤 일을 하고 얼마를 버는지에 상관없이
제가 가진 영혼이 우아하게 살았으면 좋겠네요. 그래서, 저 자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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