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외로운 별 이야기

2010. 11. 21. 오후 7:50:48

글자

진실과 거짓... 그 차이


서울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매우 오랜만에 들렸고 식구들은 명퇴 당한 사실도 모르지만 아직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아내는 주말 아닌 평일에 그것도 12시 넘은 귀가를 이상해 했지만 급한 일로 본부에 들렀다고 둘러 댔다.
그리고 다음날 실로 오랜만에 가족들과 멋진 식당에서 회식을 했다.

오랜만이라 해도 여느 때와 달리 가족들이 타인처럼 느껴지는 것이 이상했다.
두 아들이 그동안 청소년 티를 벗어 꽤 어른스러워졌는데 그 때문일까.
녀석들이 년년생 고2 고3이라 수능 준비에 고생이 많은데도 전혀 도와주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그동안 두 아들에게

"어차피 너희는 나의 세대와 다르지 않느냐? 
 너희가 갈 길은 너희가 택해야 하고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인지 아닌지도 너희들이 결정할 일이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챙겨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한다..
 난 늘 그랬듯이 너희에게 잔소리 하기 싫고 또 늘 바쁘게 지내다보니 할 수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무엇을 원하느냐?
 필요한 것을 말하거라, 
 너희에게 유익하고 합당하다고 생각되면 그게 무엇이고 무슨 일이든지 다 들어 주겠다."

그리고 가끔은 덧 붙여

"나와 엄마를 탓하면 안 된다.
 부모로서 너희에게 줄 것은 주고 또 바라고 싶다.
 나의 이 말은 너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자유롭게 해 주고 그 대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
 절대로 너희에게 관심이 없거나 적다는 뜻이 아니니까 오해하면 안 된다."

전에는 그랬었는데 그 날은

"내 정년퇴직이 얼마 안 남았는데 너희들 혹시 걱정 안 되나?"

"퇴직하시면 뭐 하실 거에요?"

"글쎄다.... 무슨 일이든 하겠지....."

"전 졸업하고 군대 갔다 올 때까지면 돼요, 그래서 그 전에 퇴직하시면 곤란한데?"

"그래? 하지만 그 전에 퇴직하게 될 거야,  하지만 등록금과 학비 걱정은 안 해도 돼, 조금도 걱정마라."

"그럼 난 됐어요, 형은 몰라도....?"

"나도 그래, 아빠 정년이 언제에요?"

"원래는 내 후년 초쯤인데.... 어떻게 될지.... 회사 사정에 따라 변하니까, 그 전이 될 수도 있어..."

"그럼...당신... 얼마 안 남은 그 기간도 못갈 수 있단 말에요?"

"그렇지.. 요즘은 어느 회사든 다 그래
 그래서 언제든 적당한 일거리가 나타나면 즉시 그만 두는 게 유리할 수 있는 거야.
 정년퇴직 후에 찾으면 늦어요, 자칫하면 장기간 놀아야 하니까....그래서 요즘 나도 찾고 있는 중인데 
 어쩜 괜찮은 일이 조만간 있을 거 같기도 해....
 암튼, 내가 뭘 어찌 하든 애들 등록금과 생활비 걱정은 안 하도록 할테니까 조금도 염려할 거 없어."


식사 후 집에 오자 본부장에게서 내일 자기 사무실에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난 괘씸한 생각에 만나고 싶지 않아 당분간은 급한 일 때문에 갈 수 없다며 딱 자르듯이 거부해 버렸다.
그런데 이틀인가 후에 후렌차이 업체 김부장에게서 이상한 전화를 받았다.
그는 전과 달리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며칠 전 대구에 갔다 왔다면서요?
 저는 센터장님 명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던 차에 본부장이 만나자 하여 만나 물어봤습니다."

"....?"

"어제 본부장이 시간 좀 내 달라고 해서 만나 한잔 했는데요. 
 자세히 듣고 보니 본의 아니게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하더군요. 중요한 건 본부장의 진심 아닐까요?"

"세상에 그런 진심도 있습니까? 글쎄요... 본부장이 뭐라고 하던가요?"

"예..저도 센터장님 말씀 듣고 도무지 이해를 못했는데 만나 사연을 들어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다시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그 말씀을 드릴려고 전화한 겁니다."


내가 섭섭해 하는 것을 그들도 충분히 이해하며 다만 사정상 부득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사실을 말하고 협조를 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김부장은 그 점이 나를 무시한 아주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하며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물었다고 했다.

그에 본부장은 처음부터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게 꼬여 최악의 조건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내가 그 사실을 알면 자청하여 사직하고 전 재산을 걸어 그 사업을 하겠다고 하겠는가.
설사 한다고 해도 피해를 주면 안 되므로 회사가 손해를 보장해 주어야 하는데 그 일이 어렵다는 것이다.
즉, 사업 초기부터 회사 손해가 너무 커서 나의 손해보장까지 해 줄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1년만 손해를 감수해 주면 1년 후 재계약시 조정하여 충분히 만회시켜 줄 수 있지만
그 1년을 내가 손해를 봐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고 하겠느냐는 것이다.
N 사와 계약이 5년이므로 내가 첫해 1년만 어떻게든 넘겨 주면 충분한 만회와 보상까지 해 줄 수 있고
서면 약속을 원하면 해 줄 수도 있지만 사업 경험이 없는 내가 응할 것 같지 않아 말을 못했다는 것이다.

1년간 싫것 이용하고 1년 후에도 회사 욕심만 채우며 모른체 하는 짓은 
대기업의 한 사업부문을 책임진 사업본부장으로서 절대 할 수 없어 믿어도 된다는 것이 김부장 견해였다.
그리고 그 사업을 하려면 일정의 자금이 필요한데 그 역시 물류부에는 나 외에 적임자가 없다는 것이다.
고참 직원들 모두가 중간 퇴직금정산을 하여 퇴직금이 얼마 안 되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유일하게 저온물류에서 장기간 근무하기도 했지만 퇴직금이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물론 나도 아파트를 구입할 때 중간 퇴직을 신청했으나 미운 털이 박혔다는 것인지 끝내 결재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좋은 입지의 아파트를 구입하지 못하고 변두리 인기 없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집값이 별로 오르지 않아 막심한 손해를 보게 해 놓고 이제와서 엉뚱한 일에 퇴직금을 운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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