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2주간 금요일
식물로 따지자면, 많은 분들이 거기 달린 잎이나 과일, 열매를 보며 좋아라 합니다. 회사로 따지자면, 많은 분들이 거기서 생산된 제품, 브랜드를 보며 가지려 듭니다. 하지만 우린 그런 산물들보다 뿌리를 보는 이들입니다. 그런 것을 생산하거나 만들 줄은 몰라도 이것 하나는 알 수 있습니다. 저것들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와 어려움과 고난을 겪었고, 그런 기술을 익혔을까? 감탄합니다. 그리고 다 헤아릴 수 없는 경지까지 이르려면 무엇이 필요했을까? 여깁니다. 우린 다 헤아릴 수 없는 밑에 깔린 뿌리를 봐야 하는데요.
오늘 말씀에도 대다수 사람들이 이면의 것을 볼 줄 모르는 안타까움이 들어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에서 주님께서 얼마나 훌륭하신 지 그들은 알아야 한다.” 넋 놓고 바라볼 지언정, 박수를 치면서 그것이 가능하게 해주신 하느님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있잖습니까?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 막상 사람들은 손가락만 쳐다본다’ 고요. 이러면 무엇이 벌어질까요?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소돔이 무너질 때 뒤를 돌아보지 말고 뛰어가야 했지만 뒤를 돌아보는 통에 그녀가 소금기둥이 되버리죠. 괜한 호기심, 믿지 못하는 연약하고 무지한 마음. 오히려 이런 인간적인 면이 우릴 어렵게 만듭니다. 우린 사람이지만 사실 그 이상을 만날 수 있는 이들인데 대다수가 현실만족에 자족하고 있는데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는 말이 있지요. 정확하게 원문에는 배고픈..보다 ‘dissatisfied’ '불만족스러운'이라 나옵니다. 이 말은 산업혁명 시기 존 스튜어트 밀이라는 공리주의 철학자의 말입니다. 그는 유년시절을 부유하게 살았고요. 현실주의요, 실용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자본주의의 허상도 볼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노동자의 권리와 여성 참정권 운동에 힘쓴 인물이기도 합니다. 불만족스럽다는 것은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직시하자는 차원이었습니다. 불만스럽다는 것이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한편 현실을 보는 올바른 시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렵지만 더 가치있는 것을 추구할 때, 주님이 주시는 은총을 맛볼 수 있는데요. 우리도 그래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