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2주간 목요일
예전 세상과 요즘 세상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많이 쌓고 얻으려고 들었습니다. 지식이건, 정보건, 물건이건 많이 가지려고만 들었지요.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그런 것을 여러 다른 경로를 통해 듣고 볼 수 있게 되었고요. 이젠 창작보다 조합하는 기술이 더 각광을 받습니다. 인공지능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이런 지식보다 지혜는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측면’ 이라서 많이, 빨리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식 같고는 돈을 벌 수는 있어도, 돈을 잘 쓰게 만드는 것은 지혜입니다. 갑자기 일확천금을 얻었다고 한 순간에 날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혜가 없어서지요. 오늘 독서는 지혜가 가지고 있는 여러 측면을 소개합니다. 너무 세세하게 나열하여 감탄할 지경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조선 시대 선조 시절, 이식이라는 형조와 예조판서까지 지낸 이가 있습니다. 그가 아들에게 편지로 쓴 대목이 있는데요. ‘근래 조용히 생각해보니 세상을 사는 데 다른 방법이 없다. 천금의 재물은 흙으로 돌아가고, 벼슬도 그리하다. 몸 안의 물건만 나의 소유일 뿐, 몸 밖의 것은 머리카락조차 군더더기다. 모든 일은 애초에 이해를 따지지 않고 바른 길을 따라 행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실패하더라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다. 이것이 바름을 받아들인다는 증거다’ 살아보니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는 관찰을 잘해야 얻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헤아리는 혜안이 있어야 자세히 살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보화는 참으로 작으나 귀하고, 얻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알아보는 이도 적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빛이 나지요. 복음처럼 “하느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라는 말에 휘둘리지도 않습니다. 주도권이 주님에게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우린 이미 알고 있습니다. 부유하다고 부귀영화가 영원하지도 않고요. 무소불위의 권력도 몇 년 가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많이도 보아왔습니다. 여태껏 그리 보았다면 이제 참되고 영원한 것이 안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화답송 후렴으로 마치겠습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