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사도 5,17-26; 요한 3,16-21
누군가와 만나서 하루 중에도 엄청나게 쏟아내고 있는 나의 말을 유심히 들여다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말을 가만히 보면 나 자신의 잘남, 주장,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등이 담겨있는 것을 봅니다. 과연 우린 몇 명을 만족시켜주고 싶어서였을까요? 얼마나 남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였을까요? 하지만 알게 됩니다. 생각보다 내 말에 찬동해주는 이가 많지 않음을요. 그리고 이런 것도 알게 됩니다. 내 마음이 허(虛)하기 때문에 그렇게 쏟아내고 있음을요. 이제 이런 것을 발견합니다. ‘나는 정말 필요한 말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논리적인 언어 철학을 해왔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합니다. ‘어떤 언어를 상상한다는 것은, 어떤 하나의 삶의 형식을 상상한다는 것이다.’ 언어를 통해 그 사람이 가진 세계를 알 수 있고요. 한 마디의 필요한 말을 통해 구현해내고픈 삶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인데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구현해내고 싶으십니까?
복음에서는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라면서 참된 것을 품고 사는 이가 무엇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 지를 보여주고요. 독서에 나온 것처럼 천사의 명령에 의해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그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다.” 는 말씀처럼 진정 해야 할, 필요한 것을 전하는 데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
오늘은 폴란드의 성인인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이 주교님은 자국의 왕인 폴란드 국왕의 폭정을 꾸짖다가 괘씸죄로 살해당한 분입니다. 그야말로 사람에게 순종하기보다 하느님께 순종한 결과인데요. 물론 성령의 힘으로 살면, 인간적으로 이런 겁나는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기에 주님의 손짓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두려워하다가, 아예 그분의 목소리를 거부한 사람들과 똑같은 인생결말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총의 보관자요, 분배자인 우리는 어떤 말을 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요한 복음 19장 40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적절하고, 필요한 말을 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