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주간 화요일. 사도 4,32-37; 요한 3,7-15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면서, 더 깊이 얘기해서 하느님의 움직임인 영(靈)의 활동을 만나면서도 생각만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그분의 활동이 우리의 예상 가능한 수준에서만 머물지 않으시고요. 어떤 때에는 불편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성경에서 이런 경우입니다. 하느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치시면서 롯의 아내가 소금으로 변하구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한다고 10가지 재앙을 내리시면서 사람들이 힘들어하고요. 신약시대에는 아기 예수님을 구하기 위해 2살 이하의 아이들이 무차별로 학살당하는 경우가 나옵니다. 일단 이유가 어떻더라도, 이 예만 들어도 별로 개운치 않게 여겨져서 고개가 갸웃거려질만 합니다. 하느님의 활동이 우리의 기분과 꼭 맞아떨어지지 않다는 사실을 어찌 받아들이시렵니까? 사실 이 어려운 고개를 넘어야 우리가 진정 만날 것을 만날 수 있는데요.
오늘 독서는 어찌보면 이상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으로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사실 우리교회에서 그리워하고 모범적으로 여기는 때가 ‘초기 교회로 돌아감’ 이라고 신학자들은 말합니다. 즉 주님이 가르쳐 주신 데로 사는 것이지요. 자기의 소유가 없다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고요. 불만도 가질 수 있겠습니다만, 실상 그 당시 사람들이 우리에게 던지고자 한 메시지는 이것이지요. ‘하느님의 나라를 지금부터 살아갈 수 있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려워도 감히 감행하며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안타깝게 오래가지 못했고요. 이것을 나중에 공산주의로 바라보는 사태도 생겼습니다만,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것.’ 은 사실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오히려 주님에게서 나왔다고 해야 옳겠습니다. 복음에 예수님은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는 말에 율법학자 니코데모는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반문하지만, 하느님에게서는 안 되는 일이 없지요. 주님께서 하신 큰 생각을 읽을 때, 우린 더 선한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만유인력을 주창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에게 사람들이 묻습니다. “어떻게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었느냐?” 고 묻자 “단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보통 사람이 거인이 되기는 어렵지만, 거인의 어깨에 올라설 수는 있습니다. 즉 거인들을 통해 꿈과 지혜를 전수받으면 우리도 더 멀리 세상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요. 어쩌면 뉴턴이 말한 거인의 어깨는 우리로 바꿔 부른다면 주님의 시각에서 보는 자세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야 그분이 바라시는 것에 맞게 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