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사도 2,36-41; 요한 20,11-18
예전 경제 관련 책을 보며 눈에 뜨이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짧은 문장은 이랬습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바로 인센티브(incentive)에 있다’ 맞는 말이지요. 때 맞춰 월급이 안 나오면 직장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고요. 불만은 쌓이고, 받을 수 있는 방도를 찾고자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신앙을 계속 가져야 하는 인센티브가 없다면 이 생활을 계속 할 수가 없습니다. 사회에서는 돈이 인센티브라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인센티브가 되어 우리를 움직일까요? 그렇습니다. 주님이 주신 ‘구원의 약속’입니다. 문제는 여러분에게 이 인센티브가 얼마나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가? 를 자신있게 답해야 하는데요. 그래야만 이 생활을 무리없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 예수님을 죽인 죄책감에 놓인 이들이 묻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베드로는 답합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사실 이 이야기를 들은 당사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몰랐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그들은 세례를 받지요. 그럼 우리는 그들과 무엇이 달라야 할까요? 이미 세례도 받았고, 고해를 통해 죄사함도 받았고, 견진을 통해 성령의 은사도 받았는데 왜 여전히 흔들리고 있을까요? 여기서 볼 사항이 있습니다. 문제는 내 방식대로 본다는 겁니다.
오늘 복음에 잘 나와 있습니다.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는 예수님의 질문에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답합니다. 여기서 돌아가신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왜 그녀는 몰라볼까요? 이미 돌아가신 분이니, 죽은 사람 취급하고 재껴 놨기 때문일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리, 강론, 교육을 통해 들은 말은 많았지만 그 말씀들이 내 생활과 연결시키지 않는다면, 그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검색창 정보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그 정도여야 할까요? 물론 처음에는 교육을 받아야 하지요. 하지만 좀 지나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내 방식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분이 알려준 것을 습득해 간다면 내가 얻은 인센티브가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 지 나 스스로 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우린 약속을 받았습니다. 다만 미래가 오지 않았을 뿐이지요. 다만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면서 점차 보장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받은 약속을 잘 체험해 가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