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5주간 목요일

2018. 3. 21. 오후 6: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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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5주간 목요일. 창세 17,3-9; 요한 8,51-59

  기도를 하는 사람은 현실에 대해 초월하는 시각을 가질 수 있고요. 그로인해 자유롭게 갇히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우리는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느끼질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왜 들은 것과 실제가 이어지지 않을까?를 고민하면서 우리에게 닥쳐진 문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해석의 틀 안에서 초월적인 자세를 잃어버리고 경제적인 해석에 갇혔다는 점입니다. 요사이 사람의 최고의 신은 돈입니다. 돈을 가지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합니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로인해 삶의 가치나 방향성에 대해서는 생각하기 어려워합니다. 가지고 있는 해석의 틀이 협소해지기에 막상 돈이 생겨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이는 교육계도 모습도 한 몫을 합니다. 즉 요즘 시험은 대학교에서조차 교수의 말을 그대로 베껴 쓴 사람이 좋은 점수를 얻습니다. 즉 사람이 생각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불안하게 조장하는 이들이 돈을 벌면서, 불안할수록 이득을 얻는 집단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삶의 다른 분야들이 연결되어 있지 못합니다. 쉽게 말해 종교와 삶을 구분시킵니다. 사람들도 말합니다.종교는 종교의 역할만 하라고..’ 그러면 이렇게 묻겠습니다. 종교와 종교 아닌 것의 기준을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까? 나의 생명은 누가 만들어 냈습니까? 내가 돈 내고 태어났습니까? 매일 마시는 공기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흐르는 물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인데, 구분하느라고 더 큰 것을 잃으면서 서 파편의 조각을 진리라고 믿기에 갖고 있는 것마저 가치를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내적 생활의 빈곤입니다. 직장과 돈이 삶의 모든 것인 양 여기기에 막상 일자리를 잃으면 본인 스스로 사람 구실을 못하는 것처럼 여깁니다. 그러면서 모든 판단 기준을 내가 경제적으로 가치가 있는가?’ 라고 물으며, 여기에 답을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여깁니다. 우리는 돈이 없어도 살아야 하고, 돈이 없어도 사는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데, 우리는 마치 속빈 강정처럼 매일을 쳇바퀴 돌 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는 말에 사람들은 광분합니다. 사람이 보이는 현상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인데요. 독서에도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십니다. 나는 가나안 땅 전체를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고 그들에게 하느님이 되어주겠다.” 하시며 약속을 맺으십니다. 물론 어느 것 하나 이뤄진 것 없습니다. 자기 아들마저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분과의 신뢰가 나중에 기적이 이뤄짐을 알게 되는데요. 이 시간을 보내며 나의 상태를 잘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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