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주일. 역대하 36,14-23; 에페 2,4-10; 요한 3,14-21
혹시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이른바 내가 예상하고 계획한 데에서만 행복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을 통해서도 올 수 있다는 뜻인데요. 이 말을 우리 쪽에서 보도록 알아듣기 쉬운 내용이 있습니다. 먼저 마태오 복음 1장입니다. 그 유명한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의 이름이 쭉 나오기 때문에 별 재미가 없을 수 있겠습니다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가 순수한 이스라엘 혈통의 사람이 아닙니다. 4명의 이방인 여자가 끼어있습니다. 타마르,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입니다. 이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이방인이지만, 이스라엘인과 결혼을 통해서 주님의 구원이 자기네 순수혈통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가 무시했던 이방인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가 이뤄졌음을 보여주는데요. 그리고 오늘 여러분이 들으신 말씀도 그러한데요. 이제 질문은 이러합니다. ‘여러분의 예상과 생각과 범위와는 다르게 다가올 때, 나는 어떻게 이것을 받아들이실 것입니까?’
1독서에는 페르시아 임금인 키루스가 나옵니다. 예전 공동번역 성경에는 이 왕의 이름을 고레스라고 불렀는데요. 그가 칙령을 반포합니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쉽게 말해서 자기에게 잡혀있는 포로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줄테니, 예루살렘에 가서 주님의 성전을 지으라고 명령합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페르시아 임금이 하느님을 믿는 신자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포로들을 풀어주며 성전을 지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나중에 알게 되지요. ‘예레미아 예언자가 예언한 것이 이렇게 이뤄지는구나’ 라고요.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세주를 보낼 것이라고, 구약성경을 통해 수 없이 예언이 되면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원한 방식의 스타일의 구원이 아니었으니까요. 현재 자기네는 로마의 압제 하에 있기에 힘있는 구세주를 원했습니다. 헌데 예수라는 분은 약해보입니다. 군사력이나 정치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니, 과연 되겠냐? 싶었겠지요. 하지만 하느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며 십자가를 통해 그 구원이 이뤄질 것이라 알려주시는데요. 여기에서 이런 성경구절이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이사야서 55장 8절에 나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 그 분이 내 생각처럼 하지 않으시기에 구원이 올 수 있었다는데요. 그렇다면 이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무엇을요? ‘하느님은 크신 분이구나...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분이시구나.. 우리가 미워한 사람을 통해서도... 우리가 거부한 사람을 통해서도 기적을 일으키시니 말이다..’ 라고요. 그래서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선입견, 우리의 짧은 생각을 벗어나 계시기에 더 엄청난 일도 하실 수 있는 분인데요. 우리가 그런 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내 예상과 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이제 어떻게 받아들이시렵니까?
사랑하는 상도동 본당 교우 여러분.
현재 세계는 작지만 큰 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숨죽이며 참아왔던 시간들을, 이제는 그 아픔을 퍼뜨리며 공유하며 남녀가 서로를 사람으로 대하면서 욕심내지 않는 미투(me too)운동입니다. 물론 이 운동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불편해하고 쉽게 끝내고 싶어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합니다. 하지만 복음에도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우린 점차 빛으로 나아가야 하는데요. 물론 이 운동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직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지금의 현장은, 예전 우리가 보아왔던 상황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데요. 주님께서 더 참된 것을 향한 선택을 해오셨듯이, 우리도 나의 차원을 넘는 선택을 통해 더 큰 것을 만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