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간 화요일. 다니엘 3,25-43; 마태 18,21-35
저희 집안에는 사고뭉치 사촌형이 있습니다. 당연히 집안도 빚더미로 만들었고요. 예전 어릴 땐 서로 친하게 잘 지냈지만 어른이 되면서 제게도 피해를 입혔습니다. 사연은 이러합니다. 제가 신학교 2학년일 무렵, 갑자기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카드빚만 200만원이 넘었답니다. 그 당시 신학생이었기에 제 이름으로 만든 카드도 없고요. 학교에서 외출도 나가지 못했기에 쓸 수도 없던 상황입니다. 자초지종을 알기 위해 특별 외출로 카드본사에 들어갔더니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가족 누군가가 신분증을 도용해 카드를 만든 것 같다’ 고요. 조금 캐보니 여지없이 그 사촌형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잠시 의료보험증을 빌려주었는데 그걸 가지고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십몇 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사과 한마디 없음에 괘씸했고요. 어릴 때를 떠올리면 배신감에 치가 떨렸습니다. 간혹 마주치다보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하는 태도에 더 화가 났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에도 연락이 왔습니다. 하는 말과 행동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내가 왜 이러는 지 모르겠냐?’ 고 물었고요. 진짜 모른다길래 그동안 사연을 말했더니 ‘자기가 많이 달라졌다면서 이제 와서 사과한다’ 고 했지만, 사람의 마음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것이 아니기에 영 불편했습니다. 그러다 어제 전화가 왔고요. “왜 사과를 왜 안 받아들이냐? 그래도 네가 신부냐?” 고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자기에게 불리하면 ‘신부’ 라는 호칭을 들먹이며 그렇게 말하지요. 그래서 저도 대꾸를 했습니다. ‘나는 형과 신부로 만난 사이 이전에, 가족으로 만났다. 그리고 내 감정을 다스려야 하니 기다려라’ 로 대화를 끝냈습니다. 그렇게 씩씩거리는 차에 만난 복음이 오늘의 내용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용서를 비는 사람은 참으로 겸손한 자세를 보입니다. 독서는 “당신의 이름을 생각하시어, 저희를 끝까지 저버리지 마시고 당신의 계약을 폐기하지 마소서”라며 자신을 낮추고 있고요. 복음에도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며 간절하게 애원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감동을 부르는 간절한 매달림의 자세로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는 지를요. 그리고 이제는 용서해야만 하는 사람의 차례입니다. 그건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는 자세” 입니다. 사랑, 용서, 말로는 참 쉽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굳어버리면 하기 힘든 것이 됩니다. 게다가 내가 자발적으로 하기 어렵기에, 주님의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우리 또한 빌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자존심 뿐 아니라 그동안 가지고 있던 것을 내려놓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필요한 것은 단순해지는 자세입니다. 당신이 가르쳐주신 사랑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내 행동이 변화될 수 있도록 기도를 통해 잘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