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일미사. 레위 13,1-46; 1고린 10,31-11,1; 마르 1,40-45
벌써 시간이 흘렀습니다. 2년을 여러분과 함께하며 주어진 시간은 이렇게 가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 여러분께 드린 3가지 약속이 있었습니다. ① 기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② 강론 준비를 잘하겠습니다. ③ 신부다운 신부가 되겠습니다. 라고요. 물론 기도나 강론 모두 지금에 와서 보면, 부족하기 그지 없었구요. 신부다운 신부라는 것도 제가 여긴 것과 여러분이 바라는 것과 차이가 있기에, 그 약속이 어떤 결과를 맺었는지는 여러분이 판단하시면 되겠습니다. 사실 제가 여기 올 때부터 알고 있던 것이 있었습니다. 동네의 재개발로 인해 ‘여기서는 내가 예상한 어떠한 열매도 맺지 못하겠구나’ 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사실을 알고 있어도, 저는 사목을 하러 왔기에 마냥 놀지도 않았고, 놀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내부적, 외부적 영향은 무시 못할 것이었습니다. 물론 예상보다 개발이 더디게 진행되었기에 아직은 교우분들이 찾아오시지만, 올해가 더 힘들 수도 있는데요. 저야 이제 다른 곳으로 간다지만, 사실 남아 계신 분들의 아픔이 더 클 수 밖에 없음을 압니다. 누구는 떠나야만 하고, 설사 남는 분들도 새로 만나게 될 이들과 적응하며 살아야 하니까요. 그러기에 저는, 여러분의 아픔을 저보다 더 나은, 제2의 그리스도이신 주임신부님과 새로 오실 신부님들과 함께 잘 극복해 가시길 기도드릴 뿐입니다.
오늘은 연중 6주일이면서 세계병자의 날입니다. 그래서 1독서는 질병에 대한 대처를 설명합니다. 악성 피부병이라 일컫는 전염병은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당연히 두렵습니다. 마치 예전 메르스 파동처럼, 교회 가르침과는 다르게, 주일이 되었지만 자체적으로 알아서 성당에 나오지 않으려 했던 분위기처럼 그렇게 사람을 공포에 떨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고쳐주신 복음처럼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라면서, “사제에게 네 몸을 보이라” 하신 것은 ‘공동체에 가서 너의 상태가 완쾌되었음을 확인받아라’ 는 뜻처럼, 공포에 떨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서로를 살리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데요.
솔직히 우리 안에는 남들과 다르게 조금씩 결핍된 부분들이 있습니다. 누구는 몸의 건강이, 누구는 모난 성격이, 누구는 정신상태가, 안 좋은 면들이 조금씩 있습니다. 좀 심하게 얘기하자면, 우린 어떤 면에서는 조금씩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사실 이런 부족하고 결핍된 상태가 자랑꺼리는 아닙니다. 남들도 무어라 지적질 하기도 하고요. 이 불편한 진실을 나도 인정하고 있고요. 또 어떤 분들은 아예 무시하기도 합니다. 부족한 면이 별로 사랑스럽지 않기에 괴로워 하십니다. 마치 고해성사를 받기를 꺼리는 것처럼, 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것을 털어놓고, 인정하는게 쉽지 않기에, 피하고, 입을 닫아버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됩니까? 오히려 상처를 내보이면서, 나의 현 상태를 여러 각도로 다시금 바라보고, 확인받고, 이미 알고 있지만 왜 되풀이 되는 지, 내가 어떤 면에 멈춰있는 지를 알아야,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데요. 우리가 주님을 찾는 이유도 그렇지 않습니까? 나 홀로 다 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대단한 오만이거나, 혹은 완벽한 착각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는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는데요.
사랑하는 개포동 본당 교우 여러분
자기를 숨길수록 자기 안에 갇혀 살게 됩니다. 부끄럽지만 내 보일 때, 우린 살아날 기회가 열립니다. 신부님들이 왜 여러분의 동네에서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아파하고, 치유하기 위해서지요. 그러기에 열러분께 안건을 제시합니다. 신부님께 손을 내미십시오. 그분들은 뭔가 방도를 찾을 것입니다. 조르십시오. 그분들은 본인이 귀찮더라도, 본인보다 더 나은 전문가를 소개시켜 줄 것입니다. 낙담하지 마십시오. 그 기회가 지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구해줘야 할지, 2독서의 말씀에 잘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나의 영광만을 바랄 때, 우린 쪼그라듭니다. 남들 걱정할 여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관심을 가질 때, 모두를 위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린 내가 얻지 못하더라도, 보지 못하더라도 계속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