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간 목요일

2018. 2. 28. 오후 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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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2주간 목요일. 예레 17,5-10; 루카 16,19-31

 예전 보아온 중국 무협 영화들의 주제는 하나같이 비슷했습니다. ‘권선징악, 사필귀정, 인과응보의 문구로 적합한 주제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심리가 훨씬 복잡다단하면서 무 자르듯, 한 마디로 언급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습니다. 악당인 줄 알았는데 가족을 먹고 살리기 위해 그랬다던가, 비윤리적인 삶이지만, 하나의 예술꽃을 피우기 위해 그랬다는 이유 등이 나옵니다. 그러면 이런 행동에 대해 그러한 이유로 눈감아주고, 용서해주고, 넘어가야 할까요? 그건 아닙니다. 복잡다단하게 보이지만 오히려 그 안에는 단순한 것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욕심, 탐욕입니다. 그리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는 무의식입니다. 자기가 원한 그 무언가를 위해 정의와 사랑을 외면하고, 집착에 가까운 더러움은 지금의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고요. 그리고 무슨 문제점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냥 생각이 없는거죠.

  복음에 나온 부자가 실제 라자로를 해코지 했었다는 기록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아무 짓도 안 했기에, 부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억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점이 있었을까요? 짧게 지나가는 한 대목이 눈에 띱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자기가 가진 돈으로 잘 살았다는데 뭐가 문제일까요? 그렇습니다. 그는 주위에서 벌어지는 현실에 눈을 감고 살았습니다. 독서에 나온 것처럼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처럼, 그는 그가 지닌 힘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그 힘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었음에도, 옆에 있던 종기투성이 라자로를 알았음에도, 그는 무엇 하나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비슷한 환경은 우리 주위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힘과 능력이 있어도 그냥 눈을 감는 거죠. 그게 편하니까요. 복음의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 곁에는 목소리를 내어주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라자로의 복음을 강론한 요한 금구 성인은 말합니다. 청중이 우리 말에 호의를 보이지 않고 무시하더라도 결코 침묵하지 말라우리 눈에는 별거 없어 보이고, 존재감 없고,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여길 지라도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돕는 손길을 계속 내미는 삶이 될 때, 우린 그 부자와 다른 삶을 살 수 있는데요. 포기하지 않는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시길 빕니다. 우리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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