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에 아흔 명 이상은 '강론 쓰기' 라 답할 것이다. 그래서 골똘히 생각해봤다. 왜 강론쓰는 것이 어려운 지 말이다. 문제는 매일 정해주는 복음과 독서를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때문이다.
개신교처럼 내가 오늘 feel 에 끌려 성구를 정하면 아무 상관이 없지만 우린 전례력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기분 상태가 좋지 않고 그 관련 성구가 별로 와 닿지 않는 날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날 인연 없던 성구를 보게되면 그야말로 난감하다. 책을 찾아도 모르겠고, 기도를 해도 벽 보는 순간일때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우릴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완전히 벽처럼 느껴졌던 순간이 순식간에 뻥~~ 뚫리는 때가 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미사 시간에 다 되었을 무렵에.... 나도 모르게 신이 난다. 그리고 미사도 열심히 드린다.
여기서 순간 간과할 사항이 나온다.
"강론이 잘 나오고 있다는 것은 신부가 잘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사에 참례하는 교우들을 하느님이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죽을 똥 살똥 십자고상을 쳐다보고 성경을 봐도 몰랐던 것이 하나하나 풀려가는 것은 그 미사에 올 신자들을 사랑하시기에 그렇다는 점이다. .....
언젠가부터 그 사실을 체험하면서..........
'난 역시 당신의 도구이구나'.....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구나. 뼈저리게 느낀다...
살다보면 자기 잘난 맛으로 살 때가 있다. 또 그래야 살 맛을 챙긴다. 하지만 우린 그런 삶에 안주하면 안된다. 자기만을 바라본 자세를 차츰 남을 향해 가고 있을 때 나도 모르는 힘을 그분이 주신다. 그것을 알아갈 때 우린 변화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