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싸고 보니... 왜 이리 많은 것인지.. 4계절이라 하니 옷도 필요하고, 잠을 자니 이불도 있어야 하고, 강의, 강론을 하니 책과 공부할 것들이 있어야 하고, 차(茶)를 마시며 심신을 달래야 하니 다기류와 찻잎이 있어야겠고, 악기도 다루니 악보나 부수기자재도 있어야 하고, 그 외 품위를 위한 화장실 용품도 있어야 하고....
으아~~~
버리는 삶을 택한 삶이라지만... 나는 아직 멀었나보다...
사실 우리 엄니가 부엉이 살림이다... 뭐 버리는 것이 별로 없다..
뭘 그리 쌓고 사시는 지... 게다가 맘대로 버리면 혼났던 기억으로 볼 때
이것도 유전인가 싶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짐을 싸고 한참을 들여다보니... 내 짐의 실상이 보인다...
실상 필요가 없는 것도 있었다는 사실을...
이미 테이핑 해 버려 뒤질려면 좀 힘들겠지만
이제 새 본당에 가면 다시 살피고 버려야겠다...
그동안 버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버릴 때... 이상하게 쾌감이 들기도 한다.. 묵은 때를 벗기는 듯한..
그리고 자유롭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내일 새로운 본당으로 들어간다..
새롭게 또 뭔가를 시작하는 것은 솔직히 두려운 일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믿을 분은 오직 그 분 뿐이다.
그 분의 이야기를 하며 그 분의 삶을 살 때 나는 전혀 알 지 못했던
교우들과 친해진다. 내가 잘 나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분 덕택으로 관계가 이어짐을 보며 분명 이 삶은 주님으로 인해 삶의 공통분모가 생긴다는 사실은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나에게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간혹 이미 이사를 가서 멀리서 사는 데 교적도 옮기지 않고 예전 본당을 계속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이해가 간다.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지 않아서.. 하지만 오히려 새로운 사람이라는 사람은 다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내가 모르던, 알지 못하던 하느님의 새로운 영역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저 지금의 편안함에 눌러 살다가 진정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다시 시작하는 삶.... 분명 인간적으로 두려움이 있지만 그만큼 당신과 함께 있기에 나는 예전의 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다. 그 기회를 다시 주심에 감사하며 다시 잘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