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력자

2012. 1. 26. 오후 3:5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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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력자...

  칠층산(단테의 ‘신곡’ 연옥편에서 기인한 제목, 자서전 형태의 글로 미국의 주교이며 저술가인 풀톤 쉰 주교님은 이 책을 가리켜 20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이라고까지 극찬함)의 작가 토마스 머튼은 자신의 일기(‘영적일기’ 오지영 신부 역. p293)에서 -자신이 서품 받기 2일 전- 이렇게 적고 있다.

  “적어도 사제가 된다는 것은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며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내 안에 사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욕심은 죽는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아야 한다. 관상가와 사목활동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은 우리의 철저한 가난에 도움이 되며 더욱 완전하고 영적이게 한다. 그 말은 우리가 아무리 강론과 지도를 잘 하고 재능을 발휘하며 격려한다 해도 사람들에게 실제로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가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모든 선교 활동을 우리는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 안으로 자취를 감춘다. 하느님은 세상의 약한 사람들을 택하셨다고 하신 성 바오로의 말씀을 기억하며 나는 제단에 설 것이다.”

 다음 달 2월 10일이면 서품식이 있단다. 그러고 보니 사제로 산 지도 햇수로 8년차에 들어선 내가 요사이 자꾸 느끼는 것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세상 사람은 자신의 스펙을 내세우려 바쁘지만, 나는 그 반대로 그동안 한 것은 있었다만 뭘 했는지 꼽기에는 창피하고 부족하고 실속도 없었다는 것이라는 판단이다.

신학교에 다니면서 내가 여러 재능이 있는 줄 알았고, 이것을 통하여 봉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움직이신다는 느낌... 당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는 느낌... 이런 무능력은 나를 그분께 점진적으로 젖어들게 만든다..

오히려 이런 어깨에 힘 빼는 작업이 나를 채워주시면서 내가 예전에 보지 못한 방향으로 인도하신다. 뭔가 하고자 했다면, 욕심이 들어 움직였다면 그로 인하여 다른 이들이 분명 좋지 않게 보았거나 뭔가를 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허나 조용히 있으면서 그분께 집중했을 때 내가 생각한 방향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심을 몇 번이나 목격한다. 겉보기로는 무능력자요, 금치산자요 마치 거세된 인물로 보일 지 모르지만 실은 엄청난 활력의 에너지가 숨 쉬면서 적절한 때에 그것이 발휘되었음 깨닫는다.

 이런 체험이 나를 좀 놔두게 만든다. 기도를 하면서, 차를 마시면서, 가만히 있다보면 살랑대는 바람이 어디로 부는가? 를 느낀다. 그리고 그 바람에 나를 얹는다. 그러면 억지로 시도했던 예전보다 더 나아져 있다. 묵상할 때 메시지가 오는 것도 그렇고, 예비자 교리 때 예비자들이 뭘 바라는 지도 서서히 보인다. 면담 때에도 진정 그 교우가 뭘 바라는 지도 보인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내 욕심이 나와서 그르칠 때도 있다. 그러기에 분별이 요구될 수 밖에 없다. 예전보다 관찰의 속도는 더뎌졌지만 판단에 따른 활동은 훨씬 빨라져 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무능력해야 한다. 그래야 당신이 어디로 이끄시는 지 무얼 하시려는 지 보일 것이다.

 

댓글 1

  • 2012년 1월 26일 오후 6:59

    주님! 여기 스스로 무능력을 간구하는 가난한 사제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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