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한다면서 우린 자기 식대로 한다..
자기 마음속에 뭔가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진정한 갈 길이 아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가기를 바라면서..
그러기에 그 사람이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 아파한다.
오늘 어떤 수녀님의 친동생과 전화를 하다가
자기 누나가 몇 주 전에 수녀원을 나왔다는 이야기를 전하였다..
이제 두 달 후면 종신서원이었는데..
동생은 담담하게 '자기 길이 아닌 것 같았다..' 고만 전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같은 본당 출신인데다가 만나면 기도 부탁한다는 얘길 꼬박 들었었고
그 부탁으로 인해 기쁘게 미사 때마다 지향을 넣었고 묵주를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도자가 공동체를 나왔다는 이야기는 사실 그동안 여러 번 들었기에 새로울 것도 없다.
다 자기 길이니까..
허나 그것이 가까운 사람이었기에 짠~한 마음도 사실이다.
자신이 쫓겨난 경우가 아니라 자진하여 나오는 경우, 너무 착해서 그럴 수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10여년동안 자기를 돌아보고 이제 마지막 서원을 하기 앞서
자기를 바라보면... 기도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도망가고 싶을만큼 부족한 자신을 보게 된다..
그래서 이래서는 도저히 서원을 할 수 없다고 여기며 나오는 경우를 본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깨끗하지 못하므로, 수도원에도 도움이 안된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럼... 남아있는 우리는 완벽하냐? 물론 아니다.
그럼 얼굴이 두꺼워서 남아있나? 그것도 아니다.
부족하지만 당신의 도움을 바라면서 나아가기를 바라기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부족한 이들이라야 은총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자신이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면... 여기서 교만이 생기게 된다.
부족하다는 느낌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런데 대다수는, 특히 젊은 경우라면...
어느 정도 자신이 생각한 치수 정도에 올라 있어야 된다고 여긴다.
그러면서 자기를 궁지로 몰아간다.
이 정도 되면 슬그머니 자신의 상태를 여쭈었을 것이다.
물론 담당 멘토 신부님이나 수녀님은 타일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자기 판단을 더 우위에 둔다....
자기 판단을 더 상급으로 놓을 때 이미 적신호는 켜진 것이다.....
멘토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아무리 주님이 오셔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동체는 장상의 말에 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로 신부를 하다가 관둔 이들... 수녀 생활을 하다가 관둔 이들은 사회 적응이 힘들다.
왜냐하면 깨끗하고 올바르게 참 사랑을 배운 이들이
사회와 부딪히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택시 기사를 많이 하는 것도 그나마 피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소식을 내게 전하지 않은 것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일 지 모른다..
미안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서로 소원한 관계를 만드는 것은 더 복음적이지 못하리라..
그 선택마저도 받아주는 것이 참 사랑을 아는 우리들이 해야 할 몫이니까...
이제 기도의 지향도 바뀌어야겠다
앞으로의 삶을 잘 살아가기를...힘들겠지만 잘 이겨나가길 빌어본다...
서로의 갈 길을 여겨봐주길 바라며...
2011. 12. 30. 오후 8: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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