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모든 성사는 과거를 불러오고, 또한 현재의 소리이며, 미래의 나타나심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진리를 상징을 통하여 선포하는 성사는 하늘과 땅을 포용하고, 시간과 영원을 품고 있다. 성사는 이 시간의 은총의 선물인 동시에 거룩한 역사의 모든 영적 세계를 나타내주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시오"(1고린11,26)
사도 바울로는 성사를 통하여 나타나는 의미-변화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내가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깨닫고, 그분 수난에 동참함을 깨닫기 위함이니 곧 나는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습이 되려는 것입니다."(필립3,10)
교회의 생활은 근본적으로 성사적생활인데 이는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의 몸이 신비체를 이루어 교회를 형성하심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이다. 물론 우리는 아직 부활하지 못했지만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부활하셨으므로 이 생명을 먹고 자라는 우리도 때가 되면 부활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도 이미 부활을 살고 있는 것이다. 미사 영성체 후 기도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였음을 일깨워 준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미사에서도 성부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주례사제이며 제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사에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와 공동으로 제사를 지낸다. 교회는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합쳐서 봉헌하기 때문에 사제와 제물의 역활을 동시에 한다. 따라서 미사에서는 사제만이 아니라 사제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과 함께 자신을 봉헌한다는 것이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바칠 내 몸이니라."이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봉헌하시는 말씀임과 동시에 그것을 말하는 우리들 자신의 봉헌약속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성찬이라는 것은 집전하는 사제가 거기서 무엇인가를 하고 그것으로 부터 내가 어떤 은혜를 입는다는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주관하는 사제의 선도에 따라서 다같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 가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느님 백성 모두가 다함께 결합하는 것이고, 참여하는 것이고, 다함께 이루는 일이다. 전례의 힘은 참여자들이 얼마나 능동적으로 참여하느냐, 그렇게 함으로써 얼마나 변화되느냐 하는데 달려있다.
사제는 산 이와 즉은 이를 위하여, 만인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 백성의 여러가지 요구를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 안에서 성부께 미사성제를 봉헌한다. 미사는 최상의 예배행위이므로 하느님께만 봉헌될 수 있다.
개인의 필요를 위하여 미사가 봉헌될 수 있지만, 그런 제한된 의향만을 위해서 미사를
이해해서는 안되며. 모든 미사제헌의 주례자는 그리스도이므로, 그의 대리자인 사제는 그리스도의 보편적 구원목표에 참여하게 된다. 미사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만인을 구원하며 그리스도의 무제한한 은총을 나누어주기 위하여 지내는 것이다.
때로는 신자들이 자기들의 특별한 지향, 죽은 이의 영원한 안식, 어떤 영신적인 또는 현세적 필요, 하느님에게 감사의 표시등을 위하여 미사를 드려달라고 청한다. 이런 청을 할 때에 보통으로 금전적 기부를 한다. 특별한 지향을 위해서 미사를드려달라고 미사예물을 바치는 것은 미사의결실 일부가 그리스도 안에 사랑받던 사람에게 돌아가기를 청할 뿐이다. 미사예물은 그것을 바치는 사람이 미사성제에 좀더 깊이 참여하고자 한다는 원의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미사예물의 봉헌자는 미사성제에 자신의 제물을 첨부하면서 교회의 요구와 특히 사제들의 생활에 특별히 공헌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