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성사(3-1)

(그림: 안 보숙수녀/출처:평화화랑))
1. 성체성사의 명칭
성체는 신약의 성사로서 살아계신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가 빵과 포도주안에 참으로 실재로, 실체적으로 현존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빵과 포도주는 형태에 불과하고
실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그 영혼과 속성, 즉 인성과 천주성까지도 빵과 포도주의 형태 안에 현존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즉 빵과 포도주가 축성되어 성체로 변하여 그리스도를 드러내 주는 표지이기에 성체성사는 가장 핵심적인 성사가 된다.
성체란 말은 희랍어에서 그 유래를 찿을 수 있으며, 그 뜻은 '감사한다'는 것으로서, 이는 예수께서 최후만찬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린데서 연유한다.
2. 구약성경와 성체성사
성체성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의 성사이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몸을 중심으로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삼위일체의 각 위와 관계를 맺게한다. 맺어진 관계는 상징을 통하여 표시되고 이루어진다.
성체성사는 상징으로서 식사를 구조(외형으로)로 하고 구원 전체를 의미한다.
그 의미하는 바를 나열하면
ㅇ 우리를 당신 식탁에 초대하시는 주님의 현존
ㅇ 주님의 몸에 우리를 결합시키는 성령의 선물
ㅇ 우리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재현하는 제사
ㅇ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는 사랑의 봉사
ㅇ 그리스도와 당신 교회가 아버지께 올리는 감사와 구원의 고백등이다.
이러한 풍부한 요소들이 '식사'라는 상징과 관련되어 있는 것인가?
이 요소들은 식사와 거리가 먼 것 같이 보이지만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풍요로운 전통과 성사를 결합시키셨다. 그리고 교회는 유대교의 예식과 성경을 바탕으로하여, 예수께서 남기시고 되풀이하려고 하신 성찬을 이해하고 해석했기 때문에, 성체성사의 풍요로움과 그 일관성이 유지되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으로서 구약의 계시와 유대교 전례의 내용을 이어 받으시면서, 당신의 독특한 '빠스카 신비'를 그 테두리 안에서 전해주셨다.
따라서 예수께서 의도하시고자하는 바를 이해하려면 구약성경으로 돌아가야한다.
1) 구약성경에 나타난 식사의 역할
옛 이스라엘 사람들은 음식과 식사를 귀중히 여겼다.
구약성경은 모진 가뭄과 기근을 묘사하고, 기름진 음식과 포도주가 풍부한 잔치를 꿈꾸는 대목도 전하고 있다.
배불리 먹는다는 것은 그들의 소망이 아닐 수 없었지만, 이스라엘인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식구끼리 나누는 관계에 관심을 갖었다.
식사시간에 대가족의 일치를 느끼고 가족관계를 원활히 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식사를 같이 하게 되면 친구가 되었고 푸짐한 선물을 교환했다.
가족관계를 넘어서는 식사는 또한 정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식탁의 윗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곧 주인이며, 권위를 장악한 사람이었다. 식사는 원수들 사이에 화해를 이루는 기회가 되었고, 식사를 같이 나누는 사람들은 동맹자가 되고 운명을 같이하는 의무를 갖게 되었다.
식사는 사회적인 역활도했다. 식사는 계약을 체결하는 문서와 같은 역활을 하고 있었다.
식사와 음식은 그 음식을 마련해 주신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절대적 의존관계를 상기시켜 준다. 동시에 인간은 음식으로만 살지는 못한다는 원칙을 깨닫게 해준다.
'먹는다'는 말은 음식뿐 아니라, 지식과 말씀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정신적인 행위를 뜻하기도 했다.
구약에서는 '식사'가 일찍부터 제례의식의 역활을 맡게 되었다. 노아(창세8,20)와 아브라함(창세15,9)의 경우에도 음식을 바치는 제사에서 계약이 맺어진다. 아브라함이 신적 손님을 위하여 차려놓은 식사를 비롯하여(창세18장) 주님이 베푸실 식사(묵시 3,14-20)에 이르기 까지 하느님과 인간들의 상봉과 나눔을 상징하는 이 신성한 잔치들이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2) 기념제
구약성경에 의하면 "기억하다"는 현재적 정신활동을 가리키고(시편63,7-9), 기도를 북돋아주며 하느님에 대한 애착심을 굳게한다.
기억한다는 말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되새기면서, 그 구원행위에 참여한다는 뜻을 가진다.(시편78,3-8)
신명기를 보면, 출애굽사건은 단지 과거지사가 아니라, 각 개인이 그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그 사건에 직접 참여하게된다(신명8장 참조). 이미 지나간 사건을 기억하면서 그 사건을 재현하는 것은 "기념제"이다.
전례행사 전체는 하나의 기념제이다. 즉 전례는 기억하는 행사, 참여시키는 행사이다.
이러한 기념제의 목적은 이중적이다.
이스라엘인들은 기념제를 행할 때 하느님께서 기억해달라는 의미로 전례를 행했다.
다른 한편, 기념제는 백성의 기억을 북돋아 주었다. 백성은 하느님이 베푸신 혜택을 기억하고 구원의 연속적인 의미를 상기하였다.(출애12,14; 13,9)
기념제는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을 회상하는 것보다, 그사건의 현재적 의미를 파악하고 그 사건에 참여하는 행위로 이해되었다(출애12,26 : 신명4,9; 6,6-25).
이러한 기념제의 의미와 역활을 이해해야만 "이것을 행함으로써 나를 기억하라"고 명하신 예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3) 이스라엘의 빠스카 예식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과 함께 드시던 고별식사를 이해하려면, 유대인들이 거행하던 빠스카(히브리어의 'Pesah'에서 유래되었고 '넘어가다/건너뛰다'의 뜻이 있슴)를 토대로 이해해야 한다.
초대교회는 최후만찬과 예수의 빠스카 신비를 해석하고 설명할 때, 구약성서가 묘사해 주는 빠스카 사상을 이용했다. 구약성서를 보면 , 빠스카를 묘사해 주는 대목은 출애12,1-10과 신명16,1-8 두 곳에 기록되어 있다.
빠스카 잔치는 성경이 가르치는 그대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느님이 행하신 구원행위를 경축하는 것이다.
그것은 애국적 경축일이나 역사의 교훈이나 사(史)적처럼 기억 속에서 재생시킬 수 있는 과거지사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언제나 충실하신 하느님께서 과거에 시작하신 그 행적을 '현재'의 새 세대가 사는 오늘이라는 시점에 되살려내고 현재화시키는 사건이다.
종교의식을 통하여 출애굽을 거행할 때, 그것은 현재가 되고 사람들은 그 현재 속에 동참하게 된다.
여기서 삶 전체는 하나의 출애굽으로, 그리고 하느님 왕국을 향한 발걸음으로 표출된다. 하느님께서 그 옜날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다면 지금도 그렇게 하실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과거에 대한 기념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간직하게 해 준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나누신 마지막 식사(최후의 만찬)도 유다인들의 빠스카 기념식사와 같은 형식의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예식에 새로운 의미 - 사회적 해방이 아닌 진정한 해방 즉 죄로 부터의 해방 - 를 부여하시고 당신 것으로 택하심으로써 새 빠스카의 표지로 삼으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