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2015. 6. 7.)(마르 14,12-16.22-26)

2015. 6. 6. 오후 3: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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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7.)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마르 14,12-16.22-26)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날이다. 이날 교회는 예수님께서 성목요일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과, 사제가 거행하는 성체성사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어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의 현존을 기념하고 묵상한다. 전통적으로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목요일을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로 지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사목적 배려로 주일로 옮겼다. 그리스도의 성체 축일과 성혈 축일이 따로 있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함께 기념해 오고 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다. 이스라엘이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며 약속한 다음, 모세는 제단과 백성에게 제물의 피를 뿌려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다.(탈출24,3-8)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를 구약의 제사들과 비교한다. 예수님께서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닌 당신의 피로 단 한 번 제사를 바치심으로써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셨다. 이로써 우리는 영원한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게 되었다.(히브9,11-15)

수난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 몸과 피를 주셨다. 그 피는 십자가에서 많은 이를 위한 계약의 피로 흘려졌다.(마르 14,12-16.22-26) 

 

 21. 천사의빵 길손음식, 자녀들의 참된음식, 개에게는 주지마라.
22. 이사악과 파스카양, 선조들이 먹은만나, 이성사의 예표로다.
23. 참된음식 착한목자, 주예수님 저희에게, 크신자비 베푸소서.
저희먹여 기르시고, 생명의땅 이끄시어, 영생행복 보이소서.
24. 전지전능 주예수님, 이세상에 죽을인생, 저세상에 들이시어,
하늘시민 되게하고, 주님밥상 함께앉는, 상속자로 만드소서.      -부속가-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마르코14,12-16.22-26)
12 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3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14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15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16 제자들이 떠나 도성 안으로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2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23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2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26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계약의 피>    송영진 모세 신부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마르 14,22)."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르 14,24)." 

'계약의 피' 라는 말에서 '시나이 산의 계약'이 바로 연상됩니다. "모세는 피를 가져다 백성에게 뿌리고 말하였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탈출 24,8)"

하느님께서 십계명을 내려주실 때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이 '구약'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어 주시고,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계명과 율법을 충실하게 지킨다는 것이 계약의 내용입니다. 그 계약을 맺을 때, 계약의 표시로 '소의 피'가 사용되었는데, 이 '계약의 피'는 만일에 계약을 안 지키면 죽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먹고 마시는 일이 이어집니다. "... 그들은 하느님을 뵙고서 먹고 마셨다(탈출 24,11)." 이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계약의 당사자로서 계약에 참여한다는 뜻이고, 계약을 충실하게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과 온 인류가 새롭게 맺은 계약은 '신약'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시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사랑의 계명'을 비롯해서 그분의 가르침과 계명들을 잘 실천한다는 것이 이 계약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신약에 사용된 '계약의 피'는 바로 예수님의 몸과 피입니다. 성체와 성혈이 뜻하는 것은, 또 성체와 성혈을 먹고 마시는 일이 뜻하는 것은 구약과 다르지 않습니다. 만일에 계약을 안 지킨다면 죽는다는(멸망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것은 '신약 - 새로운 계약'에 참여한다는 뜻이고, 동시에 계약의 당사자로서 계약 내용을 충실하게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계약을 새로 맺는 것은 전에 맺은 계약을 폐지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히브 10,9)." 옛 계약 자체는 폐지되었지만,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십계명과 율법들은 폐지되지 않았고, 여전히 유효합니다(마태 5,17).

'옛 계약'이 폐지된 것은 사람들이 그 계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히브 8,9). 계약대로라면 이스라엘은 구약시대 때에 벌써 멸망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보내셨고, 새로운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런데 만일에 사람들이 '신약 - 새 계약'을 거부하거나, 계약에 참여하더라도 계약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러면 또다시 새로운 계약을 맺게 될까? 그것은 아닙니다. '신약'은 '구약'을 대체하는 '새로운 계약'이면서 동시에 '마지막 계약'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우리 교회의 믿음입니다.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마르 12,6)."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1요한 2,18)."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은 '새로운 계약'이면서 '마지막 계약'인 '신약'에 참여한 사람들이고, 계약대로 충실하게 살겠다고 서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영성체를 할 때마다 그 계약 내용을 새롭게 확인하고, 새롭게 참여하고, 계약 내용대로 충실하게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영성체를 할 수 없습니다. 계약에 참여하겠다는 동의를 먼저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 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1코린 11,27-29)."

'부당하게', 또는 '분별없이' 주님의 몸을 먹는다는 말은 회개하려고 하지도 않고, 사랑도 없이, 죄 속에서 살면서 영성체를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성체를 모독하는 죄이고, 또 계약을 위반하는 일입니다. 심판을 먹고 마신다는 말은 '심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충실하게 살겠다고 서약한 신앙인들이 그 서약을 깨뜨린다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약 - 새로운 계약'에 참여할 때 이미 동의한 내용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점은 '계약'이라는 것은 원래 강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계약을 맺든지 안 맺든지, 또 이미 맺은 계약을 잘 지키든지 깨든지, 그것은 각자의 자유 선택입니다. 동시에 계약을 깼을 때의 결과는 각자의 책임입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계약을 거부하거나, 또는 계약을 맺은 다음에 계약대로 살지 않는 것은 각자의 자유인데, 그렇게 하다가 심판을 받고 멸망하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그쪽을 선택했기 때문에 당하는 일이라는 것.

"그러면 하느님 쪽에서도 계약을 안 지킬 자유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 것이고, "우리가 계약을 지켜도 하느님 쪽에서 안 지키시면 어떻게 하나?" 라고 의심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은 절대적으로 자유로우신 분이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언제나 항상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만, 또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는 일만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항상 완벽하게, 또 충실하게 계약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의심하지 않고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기만 한다면, 구원과 생명을 내놓으라고 하느님께 요구하지 않아도 틀림없이 그것을 받게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성체성혈대축일 [탄방동성당]

사랑하여 부부가 된 사람들도 서로 다툽니다. 작건 크건 다툼이 한 번 일어나면 두 사람을 다시 결합시켜 주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의견이나 입장을 조정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하물며 적대적인 사람들이 화해하는 일은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결단을 내려 크게 양보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처럼 서로의 관계를 건강하고 충실하게 유지하려면 희생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살펴보면 계약을 맺을 때 피를 뿌린 모양입니다. 계약을 깨뜨리면 피라도 흘리겠다 또는 반드시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하면서 피를 흘려서라도 서로의 관계를 지키고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다짐합니다.
이스라엘은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이때 소를 잡아 그 피의 절반을 제단에 뿌렸습니다. 백성에게 피를 뿌린다는 것도, 상상하면 섬뜩할 만큼 장엄한 광경입니다. 이스라엘은 비장한 각오로 하느님과의 관계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약속에 충실하지 못하여 하느님을 거슬러 죄를 짓게 되면, 그들은 다시 하느님께 속죄의 제물을 바침으로써 손상된 관계를 회복해야만 했는데, 히브리서가 고백하듯이, 이 제사는 늘 되풀이되어야만 했습니다. 계약을 파기함으로써 우리 인간이 끊임없이 하느님과 맺은 관계를 파괴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새 계약의 피를 쏟으십니다. 동물을 잡아 그 피를 뿌리시며 계약에 충실할 것을 촉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계약의 피”를 부으십니다. 이제 더 이상 이 계약은 깨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피로 새로운 계약을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희생은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미 다 치르셨습니다.
성체성사는 사랑의 성사, 사랑의 신비입니다.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는 강생하시어 사람이 되셨고 우리 죄를 대신 대속하시는 하느님의 속죄의 어린양이 되셨으며 당신 몸과 피를 몽땅 내어 주시는 생명의 빵, 사랑의 성체성사가 되셨습니다. 이 세 가지 신비가 우리에게 명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으로 압축됩니다. 곧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도 생각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 서로 참고 인내하면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하려면 어쩌면 날마다 죽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거의 늘 아픔을 동반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먹히는 빵, 자신을 떼어 주는 삶, 그래서 하나의 성체성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반영억라파엘 신부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사랑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이러한 사랑의 보증으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으며 성체성사를 통하여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영적양식으로 주십니다. “성체로 그분께서 오시는 이유는 또 하나의 천국, 우리의 영혼을 기쁨으로 채우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우리를 위한 사랑의 양식인 성체로 몸과 마음이 풍요로워지길 희망합니다.


주님께서는“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이행되고 있는 최상의 방식이 성체성사입니다. 성체는 사랑자체이며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말로서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결코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성체를 통하여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 가까이에 있기로 결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 가까이에 아무것도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성 베드로 알칸다라)

따라서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는 사랑을 체험해야 합니다. 사실 성체성사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을 희생하시며 당신의 몸과 피를 주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 가운데 머무십니다. 그리고 “성체는 우리의 보약입니다”(성필립보 네리). “영성체는 우리가 매일 겪게 되는 우리의 나약함을 치료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매일의 빵입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우리의 육신에 영양을 주기 위하여 빵을 먹어야 하듯이 우리는 영혼을 위하여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가롤로 보르메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빵과 포도주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빵과 포도주가 그분의 몸과 피가 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일이 없으시고 우리는 이미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 지체입니다 (1코린12,27). 그러므로 우리에게는‘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에 ‘아멘’(예, 그렇습니다)이라고 대답하고 그 동의가 진실한 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체를 단순한 빵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분명히 그분의 살이기 때문입니다. 감각적으로 확신이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믿으십시오! 그리고 맛에 의해 판단하지 말고 그분의‘사랑의 신비’를 의심 없이 믿으십시오”(성 치릴로). 그리고 “성체를 모시기 전에 잠시 동안 당신이 받아 모시는 성체가 하느님이라는 진리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하느님의 양식을 받아 모셔도 효과가 없는 것은 하느님을 직접 모신다는 중대한 사실에 별로 주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파시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따라서 준비된 마음 없이 습관적으로 성체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깊은 믿음을 가지고 모셔야 하겠습니다.


성 안토니오 클라라렛은 “우리가 영성체에 임할 때 모두 같은 주 예수님을 모십니다. 그러나 다 같은 은총을 받고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차이는 준비된 마음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영성체에 임하는 사람과 예수님 사이에 더 많은 유사성이 있을수록 영성체의 결실도 더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맛있는 음식을 제대로 먹기 위해서는 먼저 속을 비워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영성체를 통하여 그분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분 안에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이번기회에 미사참례회수를 늘리십시오! 왜냐하면 “모든 선행을 한데 모아도 미사 한 번의 가치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선행은 사람의 행위지만, 미사는 하느님의 役事이기 때문입니다”(아르스의 비안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합니다. “미사성제에 참례하러가기 위하여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를 천사가 세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와 영원에서 큰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그러므로 너무 바쁘다는 말은 하지 말고 하루일과 중에 미사참례를 첫 자리에 놓으시기 바랍니다.“미사는 지상의 천국입니다”(성녀 막달레나 소피아바라). “미사는 종합영양제입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영세한지 얼마 되지 않으신 분이었는데 반모임 미사참례를 하셨는데 영성체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정중하게 말씀 드렸습니다. ‘혹 잘못한 것이 있으시면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하십시오. 잔칫집에 오셨으면 기쁘게 음식을 나눠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양식을 나누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신부님, 실은 저희 부부가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담당 선생님께서 ‘밀가루 음식은 절대로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성체를 단순히 밀가루 음식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하느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겠습니까? 설사 큰 은총으로 역사하신다 해도 어찌 하느님의 손길로 느낄 수가 있겠습니까? 성체송가를 보면 “선인 악인 모시지만, 운명만은 서로 달라, 삶과 죽음 갈라진다. 악인 죽고 선인 사니 함께 먹은 사람운명, 다르고도 다르도다.”고 했습니다. 준비된 마음 안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제대로 모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위대한 총리 토마스 모어는 매일 미사참례를 하였고 영성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수많은 국정의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은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과 함께할 때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습니다. 하느님을 거스르게 될 기회도 많지만 나는 매일 예수님께로부터 힘을 얻어서 그 악의 기회들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매우 어려운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빛과 지혜가 필요한데 매일 영성체를 통해 예수님과 그것을 상의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난의 위대한 스승이십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모심으로써 그 안에 빛과 지혜를 얻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성 요한크리소스토모는 생명의 빵을 먹는 영성체의 기쁨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여인을 부러워하겠지요? 그리고 눈물로써 그분의 발을 씻겨드렸던 죄 많은 여인과, 그분의 여정에 동행하면서 시중을 들었던 갈릴래아 여인들, 그분과 친밀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사도들과 제자들, 그분의 입술로부터 솟아나오는 은총과 구원의 말씀들을 들을 수 있었던 그 당시의 사람들을 부러워하겠지요? 제대 가까이 오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그분을 볼 수 없습니다. 영성체로써 그분을 느낄 수 있으며,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 하셨던 것처럼 여러분도 그분을 여러분 안에 모시고 다닐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사랑의 성사입니다.“성체성사는 사랑을 의미하며, 사랑을 생산한다.”고 토마스 데 아퀴노는 말합니다. 사랑에로 이끄는 구체적 성체의 기적은 이탈리아 란치아노에서 일어난 기적을 많이 얘기합니다. 약 1,200년 전 성 바실리오회 소속의 한 수사신부가 미사를 드리면서 성체성사에 예수님께서 실제로 현존하시는가 의심을 품게 되었는데 그 신부가 막 빵과 포도주의 성 변화를 위한 축성을 마친 순간 빵이 살아있는 살로, 포도주가 살아있는 피로 변하게 된 사건입니다. 12세기가 지난 지금도 살 모양으로 변한 성체는 불그스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오래된 수정 성작 안에 담겨 있는 성혈은 다섯 개의 핏덩이로 되어 있습니다. 1970년과 71년에 기적의 성체와 성혈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조사를 시행하였는데 그 결론은 이 기적의 피는 ‘진짜 피와 진짜 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살은 심장 근육이며 그 살과 피를 보존하기 위하여 화학적인 방부처리를 한 흔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패되지 않고 보존된 것은 절대적으로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합니다. 1973년에 세계보건 기구에 검사결과를 제출하여 다시금 핵 의학등 최첨단 기술이 동원되어 연구했지만 결국은 성체의 기적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신비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음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곳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적의 성체와 대면할 때 믿는 이뿐 아니라 깊은 편견을 갖고 있던 사람도 경외심과 존경을 갖게 되는 것은 그분이 살아계심을 말해 준다고 할 것입니다. 성체기적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신비의 보이는 표징입니다. 우리 믿음의 상태를 돌아보라는 권고이기도 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보고라도 믿으라는 부르심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체께 대한 믿음이 더욱 깊어지길 소망합니다.


란치아노 성지 방명록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추기경 시절에 기록한 기도가 있다고 합니다.“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더욱 더 당신을 믿고, 당신 안에서 희망하고,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 오늘 그 기도를 함께 올립니다. 사랑합니다. 

 

 @보건복지부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자가 14명 추가돼 전체 환자 수가 64명으로 늘었다고 7일 밝혔습니다.  메르스로 인한 국내 사망자 수는 5명으로 늘었다. 치사율은 7.8%(64명 중 5명 사망)이랍니다. 더 확산 되지 않고 빨리 안정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치료받고 있는 이들에게 쾌유를, 불안해 하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마르 14,22)

미사 때

성체를 경건하게 받아모시지만
사실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표시로 식사 때 먹던 빵을 떼어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 식으로 다시 해석한다면 밥을 함께 나누어 먹은 것이지요.

여러분은 잊지 못하는
식사에 대한 기억이 있나요?
언제였나요?
누구와 함께한 자리였나요?
어디에서 무엇을 드셨나요?

우리는 가족을 식구라 부릅니다.
같이 밥먹는 사람이란 뜻이지요.
주님 안에 우리 모두 한가족이라함은
같이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식구라는 뜻이겠지요.

오늘날 사랑하는 식구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기가 참으로 힘들지요?
오늘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 어떨까요?

성체성혈대축일을 경축함은
예수님이 우리의 빵이 되어주셨듯이
우리도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밥이 되어주겠다는 다짐입니다.

오늘 밥을 먹으면서
우리의 밥이 되어주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국을 먹고 물을 마시면서 예수님을 생각합시다.

사실 우리 어머니들은
항상 우리의 밥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밥
난 어머니 먹고 살았네~~"

어느 시인의 노랫말을
흥얼거려보는 오늘입니다.

[출처] 2015.06.07.|작성자 알타반

 

 

오늘은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체성사의 가장 큰 의미는 내어줌입니다. 사제는 미사 때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재현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이것을 받아먹으십시오. 이는 여러분을 위해서 내어 줄 나의 몸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이것을 받아 마시십시오.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입니다. 죄를 사하여 주려고 여러분 모두를 위해서 흘릴 피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십시오.’

 

내어주고 나누는 것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요즘 너무나 빨리 자신의 것을 내어 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메르스입니다. 분명 몸에 열이 나고, 기침을 하는 독한 감기입니다. 잘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는 병입니다. 하지만 이 메르스는 또 다른 것들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걱정, 근심, 불안, 두려움, 공포입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면서 너무나 쉽게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험담입니다. 험담은 돌고 돌아서 결국은 험담을 한 사람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 험담의 대상이 됩니다. 인터넷은 험담을 생산하는 공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불평입니다. 돌 틈에 핀 꽃은 불평하지 않습니다. 바닷가 절벽 위에 핀 꽃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어렵게 꽃을 피운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불평과 불만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 불평과 불만이 퍼지면 우리 사회는 깊은 병에 걸리게 됩니다. 원망과 분노입니다. 원망과 분노로 해결되는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원망과 분노는 오히려 내면에 깊은 상처를 주기 마련입니다. 이웃에서 보내는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공평하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느님께서는 공평하시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키가 크고, 어떤 사람은 키가 작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잘 생긴 얼굴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평범한 얼굴로 태어납니다. 부자의 자녀로 태어나는 아이도 있고, 아프리카의 아주 가난한 집의 아이로 태어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세상은 이렇게 공평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흐름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공평하지 않게 만드신 것도 세상은 흐름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강약, 고저, 장단이 있습니다. 물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공기도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흘러갑니다. 구름도 비가 되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립니다. 사람의 피도 끊임없이 흘러야 생명이 유지됩니다. 세상은 이렇게 흘러야 하고, 그렇게 흐르는 세상은 공평해 지는 것입니다. 돈도 흘러야 경제가 살아납니다.

사람이 사는 이 세상도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약한 곳에서 강한 곳으로 흐르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강대국에서 약한 나라로 흘러가야 하는데 약한 나라의 것들이 강한 나라로 흡수됩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의 것들이 부유한 사람들에게로 흘러갑니다. 우리가 잘 아는 ‘IMF’ 때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20%의 이자를 내면서 돈을 빌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가난해 졌습니다. 하지만 부유한 사람들은 20%의 이자를 받았기 때문에 더욱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사건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흐름을 바로 잡기 위해서 였습니다. 세상의 흐름이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긴 곳에서 짧은 곳으로 흘러간다면 세상은 공평해지고 아름다워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상은 예수님이 꿈꾸던 하느님 나라입니다. 사자와 어린아이가 함께 있는 나라,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있는 나라, 사막에도 샘이 흘러 꽃이 피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공부해서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출세해서 자기만 잘 살고, 잘 먹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하나는 출세해서 세상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혼자서 5000명의 것을 빼앗아 먹을 수도 있지만, 혼자서 5000명을 먹여 살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혼자서 5000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 오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드리시면서 어떻게 해야 공평한 세상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교인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교회가 없어서 대학교의 강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인들이 늘어나서 대학교의 강당에서는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공동체는 교회를 신축하기 위해서 200억을 모금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눈에 보이는 성전을 짓기 위해서 200억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늘어난 신자들은 4곳의 교회로 나누었고, 다른 강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짓기 위해서 마련한 200억 원을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짓는데 사용하였습니다. 탈북자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고, 베트남, 러시아에 있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공장을 세웠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 교회의 공동체는 바로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를 알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그대로 이웃들의 발을 씻겨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잘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체 성혈 대축일의 진정한 의미는 남을 잘 살게 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도, 예수님께서 성체와 성혈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것도 모두 우리가 잘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또한 우리도 이웃을 잘 살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조재형가브리엘 신부

 

기억하라, 선포하라, 나누어라 -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강론

송용민 신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 번쯤은 진지하게 물어본 사람은 자신을 살게 하는 근원적인 힘에 대한 물음을 피할 수 없다. 당장 살기 위해서는 먹을 것, 입을 것, 머물 곳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런 물질적인 풍요나 만족이 인간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아님은 분명하다.

아무리 물질적 풍요가 많은 것을 보장해준다고 해도 인간이 겪는 궁극적인 영혼의 목마름이란 것이 있기 마련이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 그것은 사랑 받고 싶고, 사랑할 사람이 필요하고, 인정 받고 싶고,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살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영혼의 갈증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왔기에 그분을 벗어나서 참된 행복이 없음을 강조한다. 흙으로 사람을 빚어 코에 당신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주신 하느님의 창조 행위로부터 인간은 비록 세상에 얽매여 살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육신의 존재이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생명의 숨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영적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인간이기에 인간은 본성상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벗어나 살 수 없다. 삼위일체 신앙의 핵심이 하느님이 인간을 향한 사랑의 신비임을 분명히 안다면 그 사랑이 역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되고 전달되어 왔으며 지금 여기서 생생한 현실이 될 수 있는 지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특히 가톨릭 신자는 하느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통하여 확실하게 드러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향해 자신의 전 존재를 내어주시는 온전한 사랑이 성체 성사의 신비를 통하여 교회에서 지속되고 있음도 고백한다.

성사(聖事)란 본래 하느님의 거룩함이 드러나는 사건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거룩함은 인간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가시적 표징들을 통해서 전달된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를 인간은 언제나 가시적 현실 속에서만 체험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시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는 놀라운 사랑의 신비가 제자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성체성사의 신앙과 삶을 강조하는 가톨릭 교회의 정신을 올바로 깨닫는 의미이기도 하다.

1. 성체성사는 먼저 기억하는 성사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인간이 지닌 가장 큰 은사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은 과거에 발생한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그 사건의 의미에 동참하고, 그 사건에서 나타나는 표징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을 수 있는 영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유대인들이라면 누구나 참여해온 민족적 축제인 파스카 축제를 여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광야에서의 40년을 보내면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시간들을 기억하기 위한 파스카 축제는 이제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찬 자리에서 그들이 익숙하게 먹고 마시던 빵과 포도주를 전혀 다른 의미로 바꾸신다.

그것은 곧 당신이 골고타 언덕에서 흘리고 찢겨질 피와 살을 표징해주는 살아있는 실재로서의 빵과 포도주였다. "이는 나의 몸이다. 이는 나의 피다. 너희는 받아 먹고 마셔라."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빵이 더 이상 먹기 위한 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거룩한 몸이 된다. 포도주는 단순히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니라 당신이 흘리시는 피가 되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속죄의 피가 된다.

이 놀라운 신비는 그야말로 믿음의 신비이다. 제자들은 비록 그 순간에 예수님의 행위가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성령강림 이후 비로소 그 만찬이 예수님의 생생한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놀라운 신비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늘 그 만찬 때에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같은 빵과 포도주를 나누면서 그리스도의 생생한 현존을 고백하고 체험했던 것이다.

2. 성체성사는 선포하는 성사이다.

선포한다는 것은 이 놀라운 신비는 신앙의 신비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인류의 죄와 죽음을 대신한 구원의 성사임을 세상에 선포하고, 자신들이 스스로 그 신앙을 살아가는 사람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만찬에서 세워진 새로운 계약의 의미를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성령강림 이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은 두려워 닫았던 다락방의 문을 박차고 나와 놀라운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선포는 믿는 이들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이었다. 성체성사의 놀라운 신비는 믿음으로만 깨달을 수 있는 신비임을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고백한다. 사제가 축성된 성체와 성혈을 들어올린 이후 외치는 말은 바로 "신앙의 신비여"이다. 신앙 만이 이 신비를 깨닫게 해주는 길이란 뜻이다. 모든 신자들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단순히 신적 존재에 대한 칭송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 인류를 위해 내어주시고, 흘리신 살과 피의 의미를 선포하라는 것이다.

 

3. 성체성사는 나누는 성사이다.

예수님은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당신의 생생한 현존을 약속하셨다. 믿음 안에서 성체를 받아모신 우리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확신을 갖고, 사도 바오로 말씀대로 내 몸은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다. 이제 미사가 끝나고 파견되면 우리는 각자의 가정과 사회, 직장으로 돌아가 그들에게 몸과 피를 내어준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렇게 사람들에게 먹히는 빵과 포도주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나누어지는 내 삶이 되기도 한다. 현대인에게 목숨보다 더 소중한 시간을 나누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나의 재산의 일부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눌 수도 있다. 어렵고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공감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최근에는 더 구체적으로 나를 나누는 삶으로 생명운동본부에서 하는 헌혈이나 장기기증과 같은 직접적인 나눔을 실천하는 방법도 있다. 중요한 점은 성체성사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나눔의 삶을 통해서만 우리가 온전히 하느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어떤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엄마가 갑자기 쓰러져 긴급히 수혈이 필요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 엄마와 가장 잘 맞는 피를 어린 아이에게서 찾았고, 그 아이에게 엄마에게 피를 나눠줄 수 있느냐는 말에 한참을 망설이던 아이는 용기를 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기특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 조용히 떨리는 목소리로 그 아이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선생님, 그런데 제가 엄마에게 피를 나눠주면 저는 죽는거죠?" 아이는 어리지만 자기가 죽어서라도 엄마를 살릴 수 있다면 죽을 수 있다는 용감한 결단을 한 셈이다.

 

성체성사는 이렇게 기억하고, 선포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된 은총의 삶이다. 표징으로 가득찬 세상 속에서 그 표징의 참된 가치를 찾아서 읽어내고, 해석해주는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다. 사람들에게 별 의미없이 주어진 삶의 표징들을 하느님의 사랑의 표징으로 읽어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시대가 이기적인 욕망과 지배의 탐욕으로 가득찰 수록 그리스도인은 더욱 세상의 악의 표징들에 맞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징들을 선포할 책임과 의무를 갖는다. 날마다 성체를 모시는 특권을 받은 신앙인으로서 가톨릭 신자라면 성체의 참된 맛을 들이고, 그분의 현존 앞에서 자주 이야기하며, 이 세상에서 어떤 것도 채울 수 없는 하느님을 향한 참된 기쁨을 미사와 성체성사 안에서 찾을 수 있길 소망해 본다.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남북의 갈등이 해소와 치유는 같은 빵을 나눠먹는

하나됨의 체험이 주어질 때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날이 평화롭게 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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