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만찬 성목요일]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요한 13,1-15)

[성유축성]
주교는 관습에 따라, 오늘 아침에 거행하는 고유 미사에서 병자 성유와 예비 신자 성유를 축복하고 축성 성유(크리스마)를 축성한다. 이날 성직자와 교우가 주교와 함께 모이기 어려우면 이 축성은 미리 앞당겨 거행할 수 있다. 다만 파스카와 가까운 날에 이 고유 미사를 거행한다. 이 미사는 주교가 자기 교구 사제단과 함께 공동으로 집전함으로써 주교와 사제들의 일치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모든 사제는 공동 집전을 하지 않더라도 되도록 이 미사에 참여하여 양형 영성체를 하도록 한다. 또한 교구 사제단의 일치를 드러내고자 주교와 공동 집전하는 사제들은 교구의 여러 지역을 대표하는 사제이어야 한다.
◎ 구세주께 정성드려 찬미찬송 노래하세.
○ 싱싱하게 푸른나무 짜서얻은 기름이라 우리모두 부복하여 구세주께 봉헌하세. ◎
○ 후세고향 임금님은 몸소기름 축복하여 마귀세력 물리치는 방패삼아 주옵소서. ◎
○ 성유발라 남녀모두 다시나고 새로워져 상처받은 인간품위 다시높아 지나이다. ◎
○ 세례수로 마음씻어 죄악일랑 물리치고 이마위에 성유발라 천상은사 받으리라. ◎
○ 동정녀께 나신예수 하느님의 성자시라 성유로써 빛을주고 우리죽음 없애소서. ◎
○ 영원무궁 길이길이 이날축제 기념하세. 오랜세월 지나가도 항상다시 기억하세. ◎
[(백) 주님 만찬 성목요일]
교회는 ‘주님 만찬 미사’로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셨다. 이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그들에 대한 크나큰 사랑을 드러내셨다. 제자들과 그 후계자들은 예수님의 당부에 따라 이 만찬을 미사로 재현한다.
[주님 만찬 저녁 미사]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이날은 교우가 참석하지 않는 미사를 드릴 수 없다. 적당한 저녁 시간에, 사제와 봉사자들을 포함한 지역 공동체 전체가 참석하는 가운데 주님 만찬 저녁 미사를 드린다. 성유 축성 미사를 공동으로 집전하였거나 교우들의 형편 때문에 이미 미사를 집전한 사제들도 이 저녁 미사를 다시 공동으로 집전할 수 있다. 사목의 이유로 필요하면 교구장은 성당이나 경당에서 저녁때에 미사를 또 한 번 드리도록 허락할 수 있다. 저녁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신자들만을 위하여 아침 미사 집전도 허락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특수 미사는 어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드릴 수 없으며 주님 만찬 저녁 미사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신자들은 미사 중에만 영성체를 할 수 있고, 병자들은 아무 때라도 할 수 있다. <감실은 미사 전에 완전히 비워 둔다. 이 미사 중에는 오늘과 내일 영성체할 만큼 넉넉히 제병을 축성해 둔다.>
오늘은 주님 만찬 성목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난을 앞두시고 제자들과 함께 나누신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고, 벗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 주신 주님을 기억하는 밤입니다. 성체성사를 세우시어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머물고자 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그분의 식탁에서 주님을 찬미합시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구출된 밤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앞으로 파스카 축제를 지내도록 명하신다. 마지막 재앙이 이집트 땅을 덮칠 때, 이스라엘인들은 문설주와 상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 멸망을 피하고 구원되었다(탈출기 12,1-8.11-14).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에게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시며 당신을 기념하여 이 만찬을 거행하라고 명하셨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성찬례가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계약을 기억하는 것임을 일깨워 준다( 코린토 1서 11,23-26). 예수님께서는 그 마지막 밤에 극진한 사랑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스승이며 주님이신 당신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처럼 그들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요한 13,1-15).
시편 116(115),12-13.15와 16ㄷㄹ.17-18(◎ 1코린 10,16 참조)
◎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네.
○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구원의 잔 받들고, 주님의 이름 부르리라. ◎
○ 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 주님 눈에는 참으로 소중하네. 저는 당신의 종, 당신 여종의 아들. 당신이 제 사슬을 풀어 주셨나이다. ◎
○ 주님께 감사 제물 바치며, 주님 이름 부르나이다.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1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2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6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7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8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11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14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 참사랑이 있는 곳에 주님 계시네.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한데 모으니
○ 주님 안에 춤을 추며 모두 즐기세. ● 살아 계신 주 하느님 경외하세.
○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하세 ● 참사랑이 있는 곳에 주님 계시네.
○ 우리 모두 함께 모여 하나 되니 ● 우리 마음 갈라질까 조심하세.
○ 이웃의 허물 탓하여 다투지 마세. ●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 주님 계시네.
○ 참사랑이 있는 곳에 주님 계시네. ● 성인들과 우리 함께 주님 뵈오리.
○ 그리스도 주님, 영광스러운 주님의 얼굴 ● 한없는 우리의 기쁨 여기 있네.
○ 우리 기쁨 영원무궁 이어지리. ◎ 아멘.
[성체를 옮겨 모심]
1.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치고, 사제는 제대 앞에 서서 향로에 향을 넣은 다음 성체께 세 번 분향하고 어깨보(humerale)로 성합을 감싸 든다.
[성체 조배]
영성체 후 기도가 끝난 다음 임시로 만든 감실로 성체를 옮기고, 다음 날 주님 수난 예식이 있을 때까지 성체 조배를 계속한다. 성체를 모셔 두는 장소는 기도와 묵상의 분위기가 이루어지도록 마련하되, 지나치게 화려한 장식은 하지 않는다. 성체는 감실이나 성합에 모시고 문을 잠가야 하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성체를 성광에 모시어 내보이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금요일 오후에 숨을 거두셨기 때문에 이 감실은 ‘무덤’이 될 수 없으므로 ‘무덤’이라는 표현도 해서는 안 된다. 수난 감실은 ‘주님의 묻히심’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성금요일의 성체 분배와 병자들을 위하여 성체를 모셔 두고,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마태 26,40)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 앞에 머물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교우들은 주님 만찬 저녁 미사 다음에 성대하게 모셔진 성체 앞에서 밤 동안 적당한 시간에 조배하며, 자정이 지나면 외적인 장식 없이 조배한다. 주님 수난의 날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
○ 엎디어 절하나이다. 눈으로 보아 알 수 없는 하느님, 두 가지 형상 안에 분명히 계시오나, 우러러 뵈올수록 전혀 알 길 없삽기에, 제 마음은 오직 믿을 뿐이옵니다.
●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 길 없고, 다만 들음으로써 믿음 든든해지오니, 믿나이다, 천주 성자 말씀하신 모든 것을. 주님의 말씀보다 더 참된 진리 없나이다.
○ 십자가 위에서는 신성을 감추시고, 여기서는 인성마저 아니 보이시나, 저는 신성, 인성을 둘 다 믿어 고백하며, 뉘우치던 저 강도의 기도 올리나이다.
● 토마스처럼 그 상처를 보지는 못하여도, 저의 하느님이심을 믿어 의심 않사오니, 언제나 주님을 더욱더 믿고 바라고 사랑하게 하소서.
○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사여, 사람에게 생명 주는 살아 있는 빵이여, 제 영혼 당신으로 살아가고, 언제나 그 단맛을 느끼게 하소서.
● 사랑 깊은 펠리칸, 주 예수님, 더러운 저, 당신 피로 씻어 주소서. 그 한 방울만으로도 온 세상을 모든 죄악에서 구해 내시리이다.
○ 예수님, 지금은 가려져 계시오나 이렇듯 애타게 간구하오니, 언젠가 드러내실 주님 얼굴 마주 뵙고, 주님 영광 바라보며 기뻐하게 하소서.
◎ 아멘.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창세 22,7)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고 길을 떠날 때에 이사악이 던진 질문입니다. 그러나 제물로 바칠 양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사악 자신이 바로 그 제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파스카도 그러했습니다. 죽음을 피하시려고 다른 양의 피를 흘리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몸을 내어 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써 새 계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요한 13,1)하신 방식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까지 받아들이시고 사랑으로 목숨을 내어 주시는 것에 비하면, 어쩌면 발을 씻어 주시는 복음의 장면은 상대적으로 작은 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하시는 일은 그렇게 발을 씻어 주시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복음 환호송) 하고 말씀하시면서 새로운 사랑의 계명을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명하신 것은 아주 단순한 바로 그것,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곧 목숨을 내어 주신 그 사랑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발을 씻어 주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발을 씻어 주는 종의 위치가 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작아져서 내 자리를 양보하거나 내어 줄 상황은 누구에게나 일어납니다. 그렇게 작은 ‘내어 줌’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분명 우리가 실천하는 사랑은 새로운 필요성과 새로운 가능성과 새로운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사랑은 같아지는 것> 송영진 모세 신부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4-15)."
이 말씀은 '새 계명'에 관한 말씀과 연결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는 "서로 사랑하여라."에 연결되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에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일은 제자들을 사랑하신 일이기도 하고(요한 13,1), 서로 사랑하라고 본을 보여 주신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여라."는 예수님의 계명(명령)입니다. 따라서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도 예수님의 계명(명령)입니다. 그러니 제자라면, 또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실천해야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사랑'을 '발을 씻어 주시는 일'로 표현하셨을까? 그것은 "사랑이란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에게로 내려가 주는 일" 이라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입니다. 자기는 자기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상대방에게만 올라오라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더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자기의 것을 조금 주는 일도 아니고,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약간의 혜택을 베풀어 주는 일도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진심으로 행한다면 선행이 되긴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보면, 사랑이라고 말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 사랑'은, 없는 사람의 '없음'을 내가 갖고, 나의 '있음'을 그에게 모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모두 같아지는 것입니다. 내가 위에 있다면 아래에 있는 사람 위치로 내려가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같은 위치에 나란히 서는 것입니다. (단순히 낮추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같아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결코 공산주의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루카복음을 보면 사도들이 최후의 만찬 때,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 라는 문제로 다투었다는 말이 나옵니다(루카 22,24). 이것은 제자들 사이에 서열을 정하는 문제로 다투었다는 뜻인데, 만찬이 시작되기 전에 자리를 배치하는 문제로 다투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서로 자기를 낮추어서 같아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 같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민족들을 지배하는 임금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민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자신을 은인이라고 부르게 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루카 22,25-26)."
이 말씀에서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은, 사실은 "어린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입니다. 흉내 내지 말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임금들은 군림하고 권세가들은 자신을 은인이라고 부르게 하지만,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임금들과 권세가들은 그렇게 해도 되고, 너희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누구든지 그렇게 하면 안 된다."입니다. 이 말은, 세속 사람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따라 하면 안 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세속의 정치 지도자가 백성 위에 군림하고 백성들을 권력으로 억압하면서 권세를 부리는 일은 악입니다. 그런 일은 독재이고, 그런 사람은 그냥 독재자입니다.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백성을 섬기면서 봉사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실 때 배반자 유다의 발도 씻어 주셨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이미 산상 설교 때에 가르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마태 5,45-46)"
그런 점에서 "서로 발을 씻어 주어라.", 또는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명령은 교회 안에 있는 신앙인들끼리만 서로 실천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즉 모든 사람에게 실천하라는 명령입니다.
따라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라는 말씀은, "너희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나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는 신앙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로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에 신앙인들이 세상과 담을 쌓고 자기들끼리만 사랑을 주고받는다면,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기는커녕 교회를 이기적인 집단으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성목요일의 세족례는 단순한 전례가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계명을 행동으로 실천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사실 세족례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목요일 세족례가 아니라, 일 년 내내 항상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고, 또 모든 사람이 똑같은 위치에서 나란히 설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입니다. (높은 곳에 있다면 낮추고, 동시에 낮은 곳에 있는 이는 끌어올려 주고...)


더 큰 사랑으로 반영억 신부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께서 우리도 ‘끝까지 사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신 다음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발을 씻겨주는 일은 그 당시 하인들이나 하던 일인데 스스로 종이 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요한3,16)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는데 바로 그 사랑을 주셨습니다.
발은 가장 더러운 부분입니다. 사랑이 큰 만큼 그곳을 닦아 주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더러운 곳을 깨끗이 씻어주는 구체적 행위입니다. 말로나 혀가 아니라 손발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낮은 자의 모습으로 허리를 굽혀 섬기고 봉사하는 아름다운 겸손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물로 씻어 주심으로 정화와 생명을 일깨워주셨습니다. 더러운 발뿐만이 아니라 오염된 우리의 마음과 영, 추악한 죄를 씻어 주심으로 멸망하지 않고 생명을 얻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13,15)하시며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겸손과 사랑,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 수 있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십 자가의 성 요한은 “사랑은 사랑하는 이들끼리 서로 닮아가서 상대방의 모습으로 바뀌기까지는 결코 완전한 것일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고 말하였습니다. 주님의 모습으로 바뀐 나의 모습을 살펴 부족함이 있다면 속히 채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성 목요일에 애틋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사랑의 절정인 성체성사를 통해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내 주셨음을 기뻐합니다. 주님께서는 그토록 사랑했던 제자들과 양떼를 남겨두고 떠나기에 앞서 가장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미사 안에서 그 선물을 받고 있습니다. 성체는 주님의 사랑자체입니다. 그 사랑을 먹는 사람은 영적으로 풍요케 되고 또하나의 사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체를 모실 때마다 주님의 사랑이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성체성사와 더불어 성품성사를 기억합니다. 주님의 온갖 은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성품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사제는 주님의 도구입니다. 당신의 살가운 사랑의 전달을 위해 사제를 선택하셨습니다. 허물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성격의 소유자를 뽑아 당신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연약한 인간을 도구삼아 일하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능력이 더 간절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제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제는 영적인 아버지라고 합니다. 과연 여러분은 사제를 영적인 아버지로 생각하십니까? 저는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생각합니다. 권위만 내세우고, 무작정 따라오라는 식의 독선적인 아버지, 자기중심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열린 아버지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예수님처럼 허리를 굽혀 자녀의 발을 씻겨주는 겸손의 아버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배반자까지도 품에 안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가슴이 넓은 아버지가 되기를 다짐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모두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시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입었으면 더 바람이 없겠습니다.
요한복음13장 3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만큼 주님의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스승이 사랑의 길을 걸으셨으니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더 많이 사랑하는데 뒤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사랑에 바탕을 두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있을 수 없다.”는 가르침을 확인하는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사랑에 사랑을 더하여'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마음을 다해!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요한 13,14-15)
여러분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만찬을 누구와 함께 하고 싶습니까?
그리고 그 식탁에서 마지막으로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습니까?
아마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나와 인생살이에서 가장 가까운 벗들을
초대하고 싶을 겁니다.
예수님은
극진히 사랑하셨던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네요.
식사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꼭 당부하고 싶었던 것은
제자들끼리 서로 누가 잘났니 하며 싸우지 말고
서로서로 발을 씻겨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말로만 하면 금방 까먹을까봐
몸소 제자들의 발을 하나씩 차례로 씻어주십니다.
황송하옵게도...
그러니 어찌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 당부말씀을 잊어버릴 수가 있었겠습니까?
오늘 저녁
우리도 가족끼리도
좀 쑥스러울지 몰라도 서로 발을 씻겨주면 어떨까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이보다 더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줄 예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 발 씻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