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루카 2,22-40) 주님께 바쳤다.

2015. 2. 2. 오전 8:45:21

글자

 

주님 봉헌 축일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22-40)


2011년 2월 2일 수요일 주님 봉헌 축일 복음묵상

 

기다림의 기쁨

반영억신부
   교회는 주님 봉헌축일을 '봉헌생활의 날'로 정하고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수도자의 날로 지냅니다. 수도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많은 젊은이들이 봉헌생활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시메온 이라는 사람은 의롭고 독실한 사람으로서 주님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는 성령의 알림을 받았고 이스라엘에 내려질 위로, 곧 메시아가 가져다 줄 구원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치내 주님을 만났습니다.

많은 예언자들이 메시아가 장차 오리라고 선언하였지만 시메온은 메시아를 직접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한 팔을 걷어붙이시니 땅 끝들이 모두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이사52,10) 한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시메온은 기다림의 열매 앞에서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안히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2,29-32). 하고 고백합니다. 

이로써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49,6).는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시메온은 의롭고 독실하기에 끝까지 기다릴 줄 알았고 마침내 주님을 직접 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옛말에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희망하는 대로 살아감으로써 행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열망이 있다면 열망이 있는 만큼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으로 기다림을 간직해야 합니다.

사람이 하느님에게 바칠 제물은 감사하는 마음이요, 사람이 지킬 것은 지존하신 분에게 서원한 것을 갚는 일.(시편50,14) 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12,1)라고 말합니다.

사실 태를 열고 나온 사내 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되어야 한다는 주님의 율법에 따라 아기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 되었고 만국의 빛이 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 자신의 거룩한 삶을 봉헌함으로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만민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구원을 우리가 전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어떤 기다림이든지 그 간절한 기다림이 하느님 마음에 들어 기쁨이 되고 복이 되시길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2014년도 봉헌초 판매(엠마우스산업)

 

주님 봉헌 축일         조재형(가브리엘)

 

언젠가 서울 시장이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열심한 신자인 시장이라서 그렇게 말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울시가 자신의 것이 아닌데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 맞는 말인지 논란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주님 봉헌축일입니다. 교회는 전통에 따라서 오늘 제단을 밝힐 초를 축성합니다. 초는 예수님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초는 빛을 내서 어둠을 밝혀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어둠 속을 걷지 않고, 더 이상 고통과 좌절 속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는 스스로 타서 빛을 냅니다. 완전히 다 탈 때까지 초는 계속 불을 밝힙니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느님께 순종하셨던 예수님의 희생을 말해 줍니다. 초는 열을 냅니다. 그 열기는 다른 것들에 전해집니다. 주님의 사랑은 넘치고 넘쳐서 제자들에게 전해 졌습니다. 그 사랑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주님의 봉헌 축일에 교회는 초를 축성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초를 축성하면서 우리들 자신도 그렇게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사랑과 나눔으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느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을 때까지 주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혼자만이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주님을 전해야 합니다. 함께하는 삶, 나누는 삶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모님은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면서 제물로 비둘기 한 쌍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서 전해지는 전승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서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진실한 믿음을 보시고 이사악 대신에 숫양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준비해주신 양을 제물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양을 제물로 드리기도 했고,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비둘기를 제물로 드리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님은 부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둘기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본당에 교무금을 책정합니다. 매주 주일 헌금을 준비하고 감사헌금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한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봉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이 가진 재능과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과 우리들의 마음을 주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샘물은 자꾸만 퍼내야만 새로운 샘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가진 재능, 시간, 마음을 주님께 기쁜 마음으로 봉헌하면 주님께서는 더 큰 것들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평화이며, 영원한 생명입니다.

 

주님의 봉헌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봉헌해야 할 것들을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기도 봉헌입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조금이라도 하느님을 찬미하고, 기도하는데 시간을 봉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신앙인은 하느님께로부터 축복을 받고, 힘들고 어려운 일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늘 시간을 내서 따로 기도하셨습니다.

둘째는 선행의 봉헌입니다. 선행은 아주 작은 것부터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것은 커다란 선행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를 하시면서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치유해 주셨고, 누군가 청을 하면 기꺼이 가셔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예전에 어느 식당의 식탁에서 보았던 글이 생각납니다.

 

생각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 놓으십시오. 그것은 힘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읽는 시간을 따로 떼어 놓으십시오. 그것은 지혜의 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는 시간을 따로 떼어 놓으십시오. 그것은 신이 부여한 특권입니다.

웃는 시간을 따로 떼어 놓으십시오. 그것은 영혼의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주는 시간을 따로 떼어 놓으십시오. 그것은 이기적 이기엔 우리의 하루가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 놓으십시오. 그것은 지상 최대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기도와 선행의 봉헌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봉헌초 교황

 

   봉헌초 주교회의, 새 교황 선출을 위한 미사 봉헌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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