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어린양(김웅렬 토마스 신부님 연중2주일 강론)

2015. 1. 16. 오전 9: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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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어린양(김웅렬 토마스 신부님 연중2주일 강론)

한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그 다음날, 세례자 요한을 만납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증언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입을 통해서 나온 말은 뭡니까?

‘하느님의 어린양, 그분이 저기 오신다.’


여러분들은 미사 때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것을 언제 듣느냐?

영성체하기 직전에 사제가 성체를 들어 올리면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하는 얘기를 듣습니까? 안 듣습니까?

세례자 요한이 했던 이 이야기를 사제가 미사 때마다 계속해서 반복을 하는 겁니다.


어느 누군가에 대해서 증언을 하고 증거를 하려면

그 사람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만 증거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모르고서는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의 어린양’ 이라고 하는 이 말은

예수님에 대한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사실 요한은 이 말을 하면서 만감이 교차를 합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나는 이분이 누군지 몰랐는데 성령께서 가르쳐주셨다.’

육적으로는 내 사촌동생이지만 이분이 어떤 분인지를 성령이 알려주고 난 다음에는

감히 이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이 없을뿐더러....

이분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될지를 성령께서 알려주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린양’ 

그 안에는 참으로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세례자 요한은 어떤 뜻으로 ‘하느님의 어린양’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증거를 했을까?

그 첫 번째, ‘어린양’ 이라고 했을 때 세례자요한의 머릿속에는

사탄을 쳐부수는 메시아의 모습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세상 심판 날이 되면 그동안 마음대로

인간들을 사로잡았던 사탄이 메시아에 의해서 꼼짝 못하게 될 거라고 늘 믿고 있었습니다.

묵시록에도 보면 ‘어린양이 사탄을 누른다.’고 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보면서 ‘어린양이 온다.’고 하는 그 말뜻 가운데는

이제야말로 정말 사탄이 기를 못 펼 때가 왔구나! 사탄, 너희들이 이제 제삿날이다.

이제껏 아담과 하와 이래로 수많은 사람을 괴롭혀왔건만

이제는 메시아가 와서 니들은 국물도 없다. 꼼짝 못할 것이다.

예수님, 사탄을 좀 물리쳐주십시오.

하는 것이 바로 첫 번째 의미였습니다.


마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악마에 대한 이야기 우리 한 번 묵상해봅시다.

대데레사 성녀는 말씀 하시기를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영성생활에 진보한 이들도

때로는 자기 자신이 유혹에 빠져있다는 것을 새카맣게 모르고 있다> 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악마가 인간에게 끼치는 그 수법이 하도 다양하기 때문에 늘 경계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영성적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제라 하더라도/ 수도자라 하더라도

평신도로 열심히 산다 하더라도/ 항상 마귀의 유혹에 빠져있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산다고 하는 것을 대데레사 성녀는 얘기하고 계십니다.


악마가 활동하는 방법을 보면 첫 번째가 거짓입니다.

악마는 철저하게 위선적이고 거짓의 원흉이라고 요한복음 8장 44절에 나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고린도후서 2장, 11장 14절에

이 마귀라고 하는 놈은 얼마나 교묘한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해서 나타 날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거짓 빛만을 보고 사탄이라는 것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두 번째로 악마의 활동방법은 유혹입니다.

악마는 나의 나쁜 성향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항상 무엇 때문에 걸려 넘어지는 지를 잘 알고 있기에

불같이 성격이 급한 사람은 그 급한 성격을 타고 들어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을 타고 들어옵니다.

욕정이 강한 사람은 욕정을 타고 음란한 생각을 갖고 들어오게 만듭니다.

사탄은 나의 약점을 너무너무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욕망을 부채질하면서 양심의 영역까지 치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6절에 나오는 것처럼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듯이

사과를 먹음직스럽게 보이게 합니다.

그것 먹으면 영리해질 것처럼 만들면서 온갖 유혹을 다 한다는 것이

바로 악마의 활동방법 두 번째 입니다.


세 번째, 악마들은 혼란을 가져옵니다.

완덕을 열망하는 영혼들을 대항하기 위해서 악마는 갈팡질팡하게 만듭니다.

하느님에 대한 열정을 멈추게 하거나 주저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립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악마가 활동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악마가 왜 이렇게 활동해야 되느냐?

악마가 활동하는 목적은 아주 자명합니다.

우리 영혼을 영원히 파멸시키기 위한 겁니다.


지금 나와 내 가정과 공동체가 파멸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결과로써 드러나는데 그 첫 번째 결과가 뭐냐?

분열입니다.

사탄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인간 상호간에 분열이 일어납니다.

너와 나 사이의 관계가 깨집니다.

부부지간의 관계가 깨집니다.

가족들끼리 서로가 믿지를 못합니다.

같은 신앙공동체 안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살아갑니다.

사탄이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 그 증거의 제일 첫 번째가 분열입니다.

어떤 작은 공동체라고 하더라도 분열이 일어날 때는 그것은 마귀의 짓입니다.


두 번째로는 불안을 가져옵니다.

항상 불안하기 때문에 뭔가 평화와 관계가 없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세 번째로는 공포와 근심을 가져옵니다.


네 번째로는 영안을 흐리게 합니다.

영안이라고 하는 것은 영적인 눈을 뜻합니다.

영적인 눈을 흐리게 해서 판단력과 분별력을 흐리게 합니다.


다섯 번째로는 소란함을 가져옵니다.

마음속에 잠잠함이 없고, 고요함이 없으며 항상 시끄럽습니다.

시끄러운 데를 찾아다녀야 뭔가 편안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여섯 번째로는 절망을 가져옵니다.

절망 속에 빠져있는 사람은 현재 내가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절망이야말로 사탄이 영혼을 사로잡는 지표가 됩니다.

절망의 끝에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악마의 먹잇감들이냐?

첫 번째가 기도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들은 주일미사만 달랑달랑 나온다 하더라도

평상시에 매일같이 일상적인 기도를 하지 않기에 일주일 내내 사탄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계시진리에 무관심한 자들/ 쉽게 얘기하면 성서 읽지 않는 자들

사탄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 쓸데없는 상상에 도취하고 있는 자

현실적으로 무언가 잘 해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허망한 생각, 허황된 생각에 상상에 도취되어 있는 자들은 사탄의 먹잇감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의지가 허약한 자/ 병약자/ 소심증에 빠져있는 자/ 우울한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

이성의 조절에 약한 영혼/ 하느님과 재물에 양다리를  걸치고 사는 자/ 위선자/

가짜 겸손들/ 불순종자들/ 바로 이런 자들이

사탄이 좋아하는 먹잇감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이러한 악마의 장난에 대처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 첫 번째 방법은, 지나친 걱정 근심에 빠지면 안 됩니다.

두 번째로는 자주자주 준성사를 사용해야 됩니다.


준성사는 뭡니까?

성수를 자주 뿌리는 겁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구마경을 하는 겁니다.

뭔가 내가 자주 분심이 있고 뭔가 악한 마음이 들 때는

분명히 지금 사탄이 나를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에게 스스로 구마경을 하십시오.

‘내 영혼을 괴롭히는 사탄아! 당장 물러가라! 예수그리스도에게로 가거라!’

욕정이 일어나서 그것이 죄로 이어지려고 할 때는 자기 스스로에게 구마기도를 해야 됩니다.

"욕정의 마귀야! 당장 물러가라! 예수그리스도에게로 가거라!

내 정결한 영혼을 너는 건드릴 수가 없다."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길 때에는

‘재물에 대한 마귀야! 당장 물러가라!’

구마기도도 사탄을 물리치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성패를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성패가 뭔 줄 아십니까?

스카폴라 같은 겁니다.

스카폴라 같은 것은 바로 마귀를 쫓아내 줍니다.


또한 무기들은 뭐냐?

첫 번째는 기도와 경계입니다.

묵상기도를 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해야 됩니다.

두 번째로는 자주 단식을 하셔야 됩니다.

육이 기름지면 절대로 영이 맑을 수가 없습니다.

영이 맑지 못하면 나에게 지금 일어나는 일이 사탄의 장난인지

아니면 하느님의 섭리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과 지혜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수많은 종교들이 자기 영혼을 맑게 하는 첫 번째 방법으로써 단식을 합니다.

성모님의 메시지 가운데서도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을 하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육이 기름지고 그리고 육이 살찌면 늘어나는 것은 성욕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단식도 마귀를 몰아내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무엇보다도 악마가 겁내는 가장 무서운 영혼은 뭐냐?

하느님께 온전히 바쳐진 영혼입니다.

묵상기도를 놓지 않는 영혼입니다.

이런 영혼들한테는 마귀는 장난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명심할게 한 가지 있다고 한다면

사탄은 우리들이 죄에 떨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을 뿐이지

절대로 우리의 자유의지를 건드리지는 못합니다.

죄는 지가 짓고서는 탓은 사탄에게 합니다.

마귀가 나를 유혹해서 죄에 떨어졌다고 하는데 악마는 유혹할 수 있는 분위기는 만들어놓지만....

그 죄에 떨어지느냐? 안 떨어지느냐는 내 자유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그런 분위기 속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써야 됩니다.

그런 분위기가 있는 곳에 안 가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술 먹기 전에는 참 멀쩡한데 술만 먹었다하면 절제가 안 된다. 이거 내 큰 악습이다.

그것 때문에 성사 본 것이 수십 번이다.’ 한다면 아예 술자리에 안가면 됩니다.

‘나는 내 욕망 때문에 자꾸 바람을 피우게 된다.’

술 먹으면 바람과 연결이 됩니다.

바로 끊어야 됩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놓는 마귀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세례자요한이 증거한대로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할 때는

사탄을 쳐부수는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사탄이 여러분들을 잡아먹으려고 으르렁거릴 때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의 이름으로 사탄을 물리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그 의미의 첫 번째 뜻은

사탄을 이기시는 권능의 하느님 을 뜻합니다.

여러분들은 바로 그런 하느님의 자식들입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구마기도 하십시오.


두 번째로 세례자요한이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을 때 무슨 뜻이었느냐?
거기에는
속죄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죄를 대신 걸머지고 제단 앞에 피를 뿌려주고 가는 어린양을

<하느님의 종으로써의 어린양>을 생각했던 겁니다.


세례자요한은 자기 앞에 오시는 예수님의 삶이 앞으로 얼마나 고달프실지를 미리 내다봤습니다.

지금 저분은 얼마나 많은 누명을 쓰고 고통을 당하며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 돌아가실 거라고 하는 것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속죄하실 하느님이라고 하는 것을 세례자요한은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시려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셨듯이

우리들도 성체성사 때마다 세상과 이웃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어놓겠다는 다짐을 해야 됩니다.

사제들은 신자들이 성체를 영하기전에 성체를 들어 올리면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성체를 영한 여러분들도 예수님이 사셨던 것처럼~~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속죄의 삶을 살라고 하는~~

그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세 번째로 ‘하느님의 어린양’ 이라고 하는 그 말뜻은 해방을 의미합니다.

무엇으로부터 해방이냐?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욕심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은 해방이 될 때 행복해집니다.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하지만 죽음이라고 하는 말 앞에 항상 오만상을 찌푸립니다.

죽음에서 해방 되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그런 파스카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죽음을 통해서 알아야합니다.


예수님의 삶이 십자가 위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성부오른편에 앉으셨다고 하는 것

영원한 세상을 잘 살기 위해서 지금 세상에서 비록 단것이 입으로 들어와도

과감하게 용감하게 뱉어야 될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

저 세상에서 잘살기 위해서 지금은 비록 쓰고 고달프게 산다고 하더라도

기쁘게 살아가다보면 영원한 세상을 약속받을 수 있다고 하는 내세에 대한 믿음

죽음으로 부터의 해방을 의미했습니다.

이렇게 세례자요한은 예수님 앞에 나타나서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도 보면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거 한다고 나와 있고

성령이 알려주시기 전에는 세례자요한은 그분이 누구인지를 못 알아봤다고 나와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겁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을 증거 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도 세례자 요한처럼 겸손과 인내심을 가지고 주님을 정확히 알아서

세상에 나가 주님을 증거 할 수 있는 삶을 열심히 살도록 합시다. 아멘

 

 

 

연중 2주일(요한1,29-34)

 

  하느님의 어린양 : 반영억라파엘신부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해 주십니다. 그 사랑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이 시간 사랑이신 주님의 희생에 관해 묵상하는 가운데 은총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어린양에 관해 생각해 봅니다.

 

첫째로 구약성경에서 보면, 어린양은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제사 때 제물로 사용된 동물입니다. 제물로서의 어린양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제단에 올려졌고, 그때 제물의 피는 속죄의 수단으로 여겨졌습니다. 죄의 용서를 청한 것입니다.

 

둘째는 파스카의 어린양(탈출12,3-13)이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때 이집트 왕 파라오가 완고하게 말을 듣지 않자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는데 마지막 재앙이 이집트에 있는 모든 맏이의 죽음이었습니다.

 

“왕좌에 앉은 파라오의 맏아들부터 맺돌 앞에 앉은 여종의 맏아들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들이 모조리 죽을 것이다.”(탈출11,5)

 

이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하여 살리기 위하여 한 집에 한 마리씩 새끼 양을 잡아 제사 지내고 그 피를 집의 좌우 문설주와 문 상인방에 바르도록 하여 이스라엘이 죽음의 재앙이라는 심판을 면하고 노예생활에서 자유롭게 되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에게 어린양은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건너뛰다.”라는 의미의 파스카 축제가 지속되고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은 희생양을 파스카의 어린양이라고 합니다.

 

셋째는 어린양의 모습으로 주님의 종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깍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53,7).을 얘기합니다. 여기서는 다른 이들을 대신하여 고난을 받음으로써 그들에게 해방을 가져다주실 주님의 종이 도살자의 칼 아래 죽음을 당하는 어린 양의 모습으로 비유됩니다. 오늘 1독서에서 예언되신 주님의 종이 바로 그분입니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49,3.6)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분의 죽음이 지닌 속죄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는 속죄의 양이자 파스카의 양, 곧 희생양이 되셨습니다. 인간의 죄를 없애시는 참된 어린양이십니다. 예수님은 사실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씻기 위한 속죄의 제물로 세상에 보내신 분이십니다(1요한4,10).

 

미사 안에서도 우리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찾습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사제가 축성된 빵을 나누는 동안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평화를 주소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간절한 청원과 평화를 갈망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성체를 영하기 직전 사제는 성체를 높이 들어 외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그리고 우리는 응답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이 말씀 안에 담긴 의미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한 죄의 용서와 평화의 선물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영성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희생의 삶을 오늘 여기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 속죄와 희생양이 되신 어린양을 모시는 우리의 행위에는 우리도 어린양이 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양식을 받아 모셔도 효과가 없는 것은 하느님을 직접 모신다는 중대한 사실에 별로 주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그러므로 “준비된 마음 없이 습관적으로 성체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깊은 신심을 가지고 모시도록 하십시오.”

 

어떻게 보면 우리를 위해 밥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이웃의 밥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너는 내 밥이야! ’하면서 남을 무시하고 깔보며 내 뜻대로 움직이려 합니다. 내가 “네 밥이 되어 줄께!”한다면 그야말로 바보천치가 되는 세상입니다. 자기 이익과 권리만 주장하고 남의 권리는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적인 마음이 팽배해 있습니다. 이웃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똑똑한 사람은 넘쳐나고 갈수록 각박하고 메마른 사회가 되어갑니다. 참고 인내하며 기다려 주는 마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느님의 어린양의 삶이 필요합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주님, 저는 황홀한 환시보다도 숨은 희생의 단조로움을 선택하렵니다. 희생과 사랑으로 작은 핀 한 개를 줍는 것이 한 영혼을 구하고 회개시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희생은 핀 한 개를 줍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희생은 주님 사랑의 징표입니다. 지금 삶의 자리에서 다가오는 희생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주님만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그분의 삶을 따르는 길만이 세상을 바로잡아 줄 수 있음을 믿고 희생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 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아야 합니다.”(1요한3,16)

 

어린양의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서 자주 주님 앞에 무릎 굻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구원자이시며 희생제물이 되신 주님은 살아있는 성교회의 심장인 감실 안의 성체로 현존”(교황 바오로 6세)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결코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하루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바오로 사도를 봅니다.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3,8-9).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 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에페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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