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일/은혜에 감사할줄 아는(루가17,11-19)
▦ 오늘은 연중 제28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를 ‘감사’에 대한 묵상으로 초대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감사할 일이 많음에도 불평을 늘어놓는 삶은 아니었는지 돌아봅시다. 아울러 우리의 삶을 지켜 주시고 풍요롭게 해 주시는 주님과 여러 은인을 기억하며 찬미와 감사의 제사를 드립시다
오늘 복음에서 열 명의 나병 환자가 예수님의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태도를 보인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사마리아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만이 구원의 은총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일상 안에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까?
‘감사’에 대한 이러한 내용의 강의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만일 제가 이 본당에 오다가 자동차 사고가 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자동차가 완전히 부서져 폐차를 해야 하는데, 저는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아마도 ‘정말 기적이네요.’, ‘그나마 다행이군요.’ ‘정말 감사할 일이네요.’ 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곳에 올 때까지 다치지도 않았고, 제 자동차도 멀쩡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더 큰 기적일까요? 자동차 사고가 났지만 조금만 다친 것이 더 큰 기적일까요, 아니면 자동차 사고도 나지 않고, 다치지도 않은 것이 더 큰 기적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일상 안에는 감사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하루 24시간 동안 1초도 쉬지 않고 산소를 공급하는 데에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생 일분일초도 거르지 않고 이 산소를 거저 받아먹으며 숨을 쉽니다. 이 역시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유럽 대륙을 정복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은 “내가 행복했던 날은 엿새도 되지 않는다.”고 한 반면, 극심한 신체장애자로 태어나 장애를 극복하며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었던 미국의 헬렌 켈러는 “내 인생에서 행복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구에 더 가깝습니까?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할 수도 없는 법입니다.
미안해 ,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 이 세 마디는 세상의 수많은 말 중 가장 단순하고도 , 중요한 것이다. 일상적으로 필요할 뿐더러 마지막 순간에 가장 절실한 , 흔하고도 귀한 말이다. 하지만 그 말들을 꼭 필요할 때 하지 못하고, 하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고마움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고맙지 않음이 아니라 '당연함'이다. 타인이 내게 베푸는 것이 시간과 마음의 나눔이라는 것을 잊고 당연히 배려받고 당연히 무임승차 하려는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안함의 반대말을 무엇일까?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깨닫지 못하는, 혹은 깨닫고도 반성하지 않는 '뻔뻔함"이 아닐까?
한편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다. 미움은 한 때의 사랑이 남긴 마음의 찌꺼기다. 그래서 사랑의 반대말은 그 찌꺼기마저 말끔하게 사라진 '무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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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결국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따라서 무리하게 베풀 필요가 없고 공치사를 듣지 않는다고 섭섭할 필요도 없다.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분개하는 내 마음의 밑바탕에는 선심과 호의보다는 욕망과 허영이 더 두텁게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일상적으로 우리를 잠식하는 조그만 분노들의 반대말은 어쩌면 용서 그리고 이해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반대말이 나를 돌아보게 하고 돌보게 한다. 제대로 분노하려면 진정으로 감사하려면,사랑하려면,살아가려면,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아름다운 성찰의 시어가 뜨거운 석탄을 움켜쥐고 쩔쩔매는 나를 흔든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요즘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말들을 하지만 정말로 살기가 어려운 것은 경제적
으로 보다 정신적으로 더 피폐해졌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듭니다.
주변에서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 “안 되면 조상 탓, 잘 되면 제 탓”
이라는 말이 새삼 실감이 납니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평생의 공을 들여 키운 자식이 부모를 외면 하고, 어려울 때
도와주었던 친구를 자기가 잘 살게 된 후에는 모르는 사람 대하듯 하는 이야기
들을 심심찮게 듣습니다.
형은 동생의 공부를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취직해서 뒷바라지를
했는데, 번듯한 대학 나왔다고 형을 무시하여 의절 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모두가 다른 이의 은덕에 감사할 줄 모르고 제가 잘나서 그런 결과를 얻은 줄로
착각하는 배은망덕 한 처사에서 오는 결과들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병환자들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자기 병이 나은 것을 알았다면 그들은 뛸 듯이 기뻤을
것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그리운 가족들을 만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은총을 베풀어 주신 예수님께 감사해야 하는 도리는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감사를 드리러 돌아왔던 사마리아 사람 외에는
영적인 은총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더 큰 은혜를 입게 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양승국 스테파노신부-
95세 되신 전직 대통령께서 위중하다는 소식에 전 국민과 그리고 전 세계가 안타까워하면서 그의 쾌유를 비는 모습에 정말이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병실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켜들고 릴레이 기도를 했습니다. 눈물어린 감사의 편지가 줄을 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현존해계신 여러 ‘전직 대통령’들과 너무 비교가 되어 조금은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오랜 숙원이었던 흑백갈등을 해소한 넬슨 만델라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세기 위대한 영혼으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있었다면, 이 시대에는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은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위대하고 고결한 영혼의 숨결이 좀 더 지속되기를...
넬슨 만델라, 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 한 인간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사람입니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지는 리처드 스텐절이라는 한 기자의 증언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타임지의 편집장으로 재직하던 그는 넬슨 만델라에 매료된 나머지 3년간 넬슨 만델라와 동고동락하면서 그의 자서전 집필에 참여합니다. 3년간의 기간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지요.
“만델라를 만나면서 제 자신이 좀 더 커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를 떠나오자 제 삶에서 태양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정녕 태양 같은 존재, 큰 산 같은 존재였습니다. 얼마나 관대하고 넉넉한 인품의 소유자였는지 모릅니다.
그가 남긴 어록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역사에 길이 남을 내용들이었습니다. 출옥 후 대통령에 당선된 그가 백인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들끓는 흑인들을 향해 던진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용서하되 잊지 말자(Forgive without Forgetting).”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가 첫 번째로 시도한 작업이 있습니다. 복수와 응징이 아니었습니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진실을 고백하라. 그러면 용서하겠다.” 이것이 만델라가 풀어낸 ‘사랑과 정의의 방정식’이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솔직히 고백하고 참회하는 백인들에게 대사면을 선포한 것입니다.
유엔은 넬슨 만델라의 생일인 7월 18일을 ‘만델라의 날’로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만델라가 67년 동안 사회에 공헌한 점을 기려 국제사회가 이날 하루만큼은 67분 동안 개인 시간을 할애해 지역사회나 불우 이웃, 장애인을 돕는 등의 봉사활동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바다처럼 관대하고 산처럼 든든한 넬슨 만델라, 항상 여유 있는 미소를 잃지 않은 만델라였지만 젊은 시절 그의 생애는 참으로 혹독했습니다.
백인 정부는 될성부른 떡잎이었던 젊은 만델라를 어떻게 알아보고 그를 일찌감치 투옥시킵니다. 그리고 28년 동안이나 가둬놓았습니다. 군대생활 2년, 혹은 3년 얼마나 길었습니까? 10년 징역 살고 밖으로 나오면 거의 폐인처럼 됩니다.
무엇보다도 아무런 죄도 없이 똑똑한 인재라는 이유로, 흑인이라는 이유로 투옥되었습니다. 투옥기간 동안 가족들도 모진 박해를 받으며 뿔뿔이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 와중에 사랑하는 아버지를 비롯해 여러 식구들이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드디어 그 역사적인 날, 1990년 2월 11일 넬슨 만델라는 자유의 몸이 됩니다. 1962년 평화시위를 주도한 죄목으로 수감되었다가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해오던 중 28년 만에 출옥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일제히 넬슨 만델라의 얼굴에 쏠렸습니다. 그리고 많이들 궁금해 했습니다. 장장 28년 동안이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가 풀려났으니 분노와 화로 암에라도 걸리지 않았을까? 혹시라도 폐인처럼 되지 않았을까? 휠체어나 구급차를 타고 출감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 모든 걱정들은 기우였습니다. 그는 아주 밝고 건강한 얼굴로 당당히 교도소 문을 걸어 나왔습니다.
취재기자들이 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5년만 수감생활해도 폐인이 되어서 나오는데 28년 동안이나 그 안에 사셨는데, 어찌 이렇게 건강하십니까?”
환한 머금은 넬슨 만델라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교도소에서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물을 마시며 감사하고,
음식을 먹으며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제게 있어 교도소는 저주의 장소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소중한 장소였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감사입니다. 치유 받은 열 명의 나병환자 가운데 한명만 예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러 달려왔습니다. 우리 인간들 대체로 그런 것 같습니다. 절박할 때는 한없이 졸라대지만 문제가 해소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배은망덕합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들의 모습 앞에 많이 서글프고 쓸쓸하셨을 예수님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하느님 앞에 선 한 인간 존재가 취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감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원래 아무 것도 아닌 존재, 티끌이요 먼지 같은 존재들이었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크신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주셔서 이 땅위에 두 발로 서 있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지속적인 은총이 아니라면 단 한순간도 스스로 설 수 없는 나약한 우리 인간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분 앞에 취해야 할 태도는 지속적인 감사와 찬미, 영광을 드리는 일입니다.
그 오랜 고통 속에서도 늘 감사꺼리를 찾았던 넬슨 만델라였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도 열심히 감사꺼리를 찾아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