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너희가 믿음이 있다면(루카17,5-10)

2013. 10. 6. 오전 7:00:58

글자

 

 

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  너희가 믿음이 있다면

 

제1독서 하바 1,2-3; 2,2-4  제2독서 2티모 1,6-8.13-14  복음 루카 17,5-10

 

  

오늘 복음에서‘믿음과 종’이라는 두 단어를 가지고 묵상해 보도록 하겠다.

첫째, 믿음에 대해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주십시오”라고 믿음을 청하였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같이 저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루가11,1) 하고 청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라고 청하고 있다.
이들이 청하고 있는 ‘기도하는 법과 믿음’은 영성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것이다. 청하는 것도 각자의 영적 수준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영적 수준에 따라 어떤 사람은 물질적인 것을,어떤 사람은 영적인
것을 청할 것이다.

예수께서“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마태 5,6)라고 말씀하셨듯이 ‘옳은 일에 목마른 사람’만이 영적인 것, 곧 ‘기도하는 법과 믿음’을 청한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는다.’는 말을 라틴어로 Credere라고 하는데, 이 말은 cor(마음·심장)와
dare(주다·넘겨주다)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믿는다는 것은 내가 믿는 대상에게 내 마음(심장)을 넘겨주는 것이다.
‘내 마음을 넘겨준다’는 것은 내 전부를 넘겨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께 나의 모든 것을 넘겨준다는
것이다. 넘겨주지 못한다는 것은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나를 하느님께 넘겨줄 수 있을까?
나를 하느님께 넘겨준다는 것은 몸을 넘겨준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첫 번째로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고 선포하셨다.

믿음을 청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란 바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믿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복음을 믿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한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행동으로 보여
주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 생각으로 살아왔고, 내
능력으로 모든 것을 했고, 내가 모든 것을 판단했지만 이제부터는 복음에
입각해서 생각하고 말하고 가르치고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를 하느님께 넘겨주는 것이다. 이 믿음이 처음에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은 겨자씨와 같은 믿음이겠지만 복음으로 점점 성숙해 지면 어떤 푸성귀
보다도 더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

이런 믿음의 대표적인 모델이 바오로 사도이다.
이방인이었고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 엿 지만 다마스커스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 “나에게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는 것입니다.”
(필립 3,8)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갈라 2,20)라고 말할 수 있었다. 바오로야 말로 나를 완전히 하느님께 넘겨준
믿음의 모델이다.

믿음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믿음은 얼마나 오랫동안 믿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진실 된 믿음으로 성숙되었
느냐가 중요하다. 믿음의 근본이 잘못되어 있으면, 곧 복음을 믿지 않는 믿음,
복음에 근본을 두지 않는 믿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둘째,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사도들은 누구인가? 사도들은 보잘것없는 종이다.
종이 곧 그들의 신원이다. 올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이미 자기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넘겨 드렸기 때문이다.
아직도 자기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하느님께 넘겨주지 못한 것이다.
바오로가 서간 첫머리에 항상 “그리스도의 종 나 바오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라고 적었듯이 자신이 하느님의 종임임을 분명히 밝혔다.

성경에서 말하는 ‘종’이란 무슨 의미인가?
종이란 주인에게 예속되어 있는 몸이다.
따라서 자기 인생이 없는 사람이요, 자기주장이나 자기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이다. 종은 주인에게 매여 있는 몸으로 오직 주인이 하라는 일만 하는
사람이다. 과거에 우리나라에도 머슴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머슴은 온종일 주인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자신이 주님의 종임을 고백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우선 구약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이 ‘당신의 종’(시편 105,42;다니 3,35)이라고
했고, 모세도 ‘당신의 종’(민수 12,7)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윗도 ‘주님의 종’(2사무 7,5)이라고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마리아도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가 1,38)라고 하였다. ‘믿음’과 ‘종’이라는 두 단어는 사도들의 특성이며
영성생활을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단어이다.

‘사도란 어떤 사람들인가?’라는 질문에 사도는 믿음의 사람이요,
하느님의 종이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도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다.‘믿음’은 복음을 전하는 이로서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바탕이고 ‘종’이라는 신분은 믿음에 근거한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 하는 사도들의 자세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런 기본적인 자세로 성숙해질 때 바오로처럼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여 있지 않는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다같이 복음의 축복을 나누려는 것입니다”(1고린 9,19.23)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유 광수 신부 -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

반영억 라파엘 신부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심오합니다. 어미가 어찌 젖먹이를 잊으랴. 어미는 혹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하신 사랑입니다. 이시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굳건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입니다. 아무리 작아보여도 살아있는 믿음에는 그만한 힘이 있습니다. 믿음은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되게 믿으면, 하느님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 믿으면 하느님의 모든 것을 받게 됩니다. 믿기 위해 이해하려 하지 말고 먼저 그냥 믿으십시오. 믿으면 이해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일을 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일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공로와 바람보다 훨씬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제가 가평 꽃동네에 있을 때 한 신자분이 남편을 위해 기도하러 오셨습니다. 그 남편은 방지거 형제인데 간암으로 고통을 받고 계셨습니다. 병원에서 이제 90% 이상 퍼졌기 때문에 임종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소리를 듣고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하필이면 저는 미사지향의 권고와 강론에서 고통의 의미에 대해 말씀을 하였습니다. 고통도 은총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을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 고통을 체험할 수 있다면 분명 은총입니다. 따라서 나의 고통을 없이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나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나의 가족과 친척을 위해 먼저 기도하기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들의 고통과 죽음까지도 대신하겠다는 마음으로 진정으로 기도하십시오.라는 내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방지거씨 아내는 마음의 갈등을 느꼈습니다. “나는 남편을 위해 기도하러 왔는데 신부님은 왜 나의 가족보다 남을 위해 먼저 기도하라고 하시는가? 내게 당장 필요한 것은 나의 남편이 일어서는 것인데 그 기도에 함께하시지 않고 엉뚱한 소리를 하시는가? 그러나 신부님의 말씀이니 오늘 만큼은 다른 사람을 먼저 기억하자.”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자기 기도의 우선순위를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으로 가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을 위해 온전히 봉헌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사 안에서 신부님의 말씀대로 따랐으니 주님께서 이런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시겠지 하고 위로를 삼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그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날부터 배에 가득 찼던 물이 빠지고 음식을 먹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만에 퇴원하여 저에게 왔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남편을 비롯해서 시부모님, 자녀들 다 왔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정말 큰 은총을 입으셨습니다. 이제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용서 청할 것이 있으면 용서를 청하고 용서해 주어야 할 것이 있으면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화해하는 가운데 기쁨과 평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가족 전체가 고해성사를 보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잊고 살았는데 어느날 기도회에 미사를 봉헌하고 제의실에 있는데 한 여인이 쫓아와서는 덥석 껴안는 겁니다. 그러면서 신부님 저 아세요? 알긴 뭘 알아! 갑자기 놀라게 해 놓고는. 실은 좋으면서! 남편은요? , 2년 만에 하느님께로 갔습니다. 저는 얼마나 기쁜 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을 완전히 알고 떠났습니다. 이웃과 화해하고 가정 안에 화목함을 만끽하다가 갔습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나 세상을 떠납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입니다. 불노초를 찾고 아무리 좋은 보약을 먹어도 언제가 하느님 앞에 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상태로 그분 앞에 서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가운데 임종을 맞이하면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아니하면 천상복락을 누릴 수 없습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순명이 따릅니다. 방지거씨 부인은 미사 안에서 나보다 더 큰 고통을 받는 이들을 기억하기로 기도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 그 안에서 하느님의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믿음은 순명을 낳고, 순명은 기적을 낳는 법입니다. 우리는 어떤 기적이나 표징을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의 자리를 기적의 자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어둠 속에 있어도 믿음과 희망 안에 사십시오. 어둠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지켜 주십니다. 걱정일랑 하느님께 떠맡기십시오. 당신은 그분의 것이고 그분은 당신을 잊지 않으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고 희망하며 기뻐해야겠습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구리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을 할 때 하느님께서는 불 뱀을 보내시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모세에게 와서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치워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하고 간청합니다. 모세가 백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그리하여 주님께서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놓았습니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습니다. 쳐다봐라 했을 때 그냥 보는 것입니다. 두말없이 보는 것이지요. 이것이 믿음입니다. 결과는 살았습니다. 그러나 보지 않은 사람은 죽었습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소돔의 멸망과 롯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습니다. 롯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였는데 그가 천사였습니다. 그 천사는 소돔땅이 곧 파멸될 것이니 롯의 아들 딸, 가족과 사위 될 사람들을 데리고 그 성읍을 빠져나가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딸을 데려갈 사위에게 말하였습니다. “자, 이곳을 빠져 나가게. 주님께서 곧 성읍을 파멸시키실 것이네.” 그러나 사위들은 롯이 우스갯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롯과 아내, 두 딸을 데리고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되오. 이 들판 어디에서도 멈추어서지 마시오. 휩쓸려가지 않으려거든 산으로 달아나시오.” 부탁을 하였습니다. 롯이 초아르(작은지역)에 다다르자 해가 땅 위로 솟아오르고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이 퍼부어졌습니다. 그리하여 그 성읍들과 온 들판과 그 성읍의 모든 주민, 그리고 땅 위에 자란 것들이 모두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된다” 했는데 돌아본 것이 문제였습니다. 사위들도 장인을 통해 주어진 하느님의 자비를 우스갯소리로 지나쳐 버린 것이 죽음을 자초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반드시 순명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믿음에 따르는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백살, 그리고 아내가 91살에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자식을 주겠다고 했을 때 너무도 기가 막힌 일이라 아브라함이 얼굴을 땅에 땅에 대고 픽 웃었습니다. 나이 백살 된 자에게서 아이가 태어난다고? 그리고 아흔 살이 된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이사악(웃다)으로 약속 받았습니다. 마침내 아이를 낳고 사라가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웃음을 가져다 주셨구나. 이 소식을 듣는 이마다 나한테 기쁘게 웃어주겠지. 사라가 자식들에게 젖을 먹이리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었으랴? 그렇지만 내가 늙은 그에게 아들을 낳아 주지 않았는가?(창세21,1-7) 이렇게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일이 하느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믿으면 믿는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것을 체험한 사람은 그에 따르는 믿음의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늦게 얻은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모리야 땅으로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번제물을 사를 장작과 불과 칼을 들고 가는데 아들 이사악이 묻습니다.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그러자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창세22,7-8)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얻어놓고 아들을 죽이려고 했을 때 천사가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네가 너의 아들,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눈을 들어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어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습니다. 그야말로 야훼이레 주님께서 마련하신다 입니다. 믿음은 자식까지도 서슴없이 바치는 순명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순명하게 되면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흘러 넘치도록 은총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대로 행하십시오. 놀라운 역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돌무화과 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17,6)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머리로 아는 믿음인지 아니면 삶으로 행하는 믿음인지 살펴보고 참된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단순하게 전적으로 따르는 순명의 믿음, 행동으로 옮기는 믿음을 간직하기 바랍니다. “믿음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야고보 사도의 말씀으로 마무리 합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베드로 대성전의 피에타상. 로사리오성월에 성모님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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