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일”어제는 죄인 오늘은 성인

2013. 6. 16. 오전 5:52:32

글자


"연중 제1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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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주제] 어제는 죄인 오늘은 성인
 

두 사람이 사막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여행 중에 문제가 생겨 서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뺨을 때렸습니다.
뺨을 맞은 사람은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래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뺨을 때렸다.”
그들은 오아시스가 나올 때까지 말없이 걸었습니다.
마침내 오아시스에 도착한 두 친구는 그 곳에서 목욕을 하기로 했습니다.
뺨을 맞았던 사람이 목욕을 하러 들어가다 늪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 때 뺨을 때렸던 친구가 그를 구해 주었습니다.

늪에서 빠져 나왔을 때 이번에는 돌에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
그를 때렸고 또한 구해 준 친구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내가 너를 때렸을 때는 모래에다 적었는데 왜 너를 구해 준 후에는 돌에다 적었지?”

친구는 대답했습니다.
“누군가가 잘못했을 때는 그 사실을 모래에 적어야 해. 용서의 바람이 불어와
그것을 지워 버릴 수 있도록….
그러나 누군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였을 때는 그 사실을 돌에 기록해야 해.
그래야 바람이 불어와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떼니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예화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이름도 성도 모르고 단지 죄인으로 유명한 ‘여인 한 사람’
(요한 7,37)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죄 많은 이 여인이 ‘믿음 안에서
아름다운 일을 한 여인’으 로 2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성경에 기록되어 기억되고
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죄 많은 이 여인이 구원의 역사 안에서 지워지지 않고 영원히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없는 이 여인은 말도 없이 오직 행위로써 자신의 진심을 예수님께 보여 줍니다.

예수님 앞에 나서지 못하고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더니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바릅니다.
이 모습에서 여인은 자기 자신의 잘못과 죄를 ‘용서’ 청하는
가장 겸허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하느님 안에서 우리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할 때 주님은
우리의 잘못을 모래 위에 기록하시고,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좋은 일을 하였을
때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모퉁이의 머릿돌이 될 것임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나는 죄인이며 당신의 자비와 은총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겸허 히 고백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성덕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제의 죄인이 진심 어린 참회로써 오늘의 의인이 되는 교회입니다.
과거 행실이 좋지 못했던 한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오늘 성녀가 되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강도가 마지막 순간에 진심으로 뉘우침으로 천국으로 초대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입니다.

오늘 이 순간 하느님의 놀라운 자비와 은총을 받은 우리가 이제,
그 사랑과 자비를 가족과 이웃 안에서 나누어야 할 때입니다.........◆


말씀자료 : 김지영 신부(서울교구)




용서와 사랑

 

-이기양신부-

 


 

오늘 복음은 신약성경 중 가장 스캔들이 될 만한 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점잖은 식사 자리에 갑자기 죄 많은 여인이 나타나 흐느껴 울며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더니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며 향유까지 발라 드립니다. 갑작스런 상황에 사람들이 당황한 것은 물론 집주인 시몬은 왜 예수님께서 더러운 여인을 가까이 하시는지, 더구나 그녀를 용서하고 따뜻한 사랑의 말까지 건네시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시몬의 속내를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빚진 두 사람의 예를 들어 그녀의 마음을 전하며 시몬에게도 더 큰 사랑의 삶을 제안하십니다.
 
그러나 자기는 의롭고 깨끗하다고 생각한 바리사이 시몬은 부정한 여인을 받아들이신 예수님의 큰 사랑을 이해 못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처사를 못마땅해 하며 자기중심적인 세계에 갇혀 버리고 맙니다. 속 좁은 사내 시몬은 식사에 초대하고도 참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신뢰와 용기를 드러낸 죄 많은 여인은 과거를 깨끗이 씻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합니다.
 
도대체 이렇게 용감한 행동을 서슴없이 행한 이 여인은 누구일까요? 루카복음 저자는 이어서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줄곧 따라다녔던 여인들을 소개하는데 그들 중에는 막달레나가 있습니다. 이 여인은 간음하다가 들켜서 돌에 맞아 죽을 뻔 했을 때 예수님의 개입으로 극적으로 살아난 여인으로 알려져 있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있었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제일 먼저 목격한 여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오늘 복음의 죄인이 동일 인물인지는 학자들 간의 토론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큰 사랑을 입고 죄의 구렁텅이를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여인이었음은 사실입니다. 역시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는 용서와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됩니다. 이렇게 큰 사랑은 예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나 가능하며 바로 그곳에서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청년은 교통사고를 당해 두 눈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청년은 깊은 절망에 빠져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은 채 마음의 문까지 닫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그의 어머니는 말 못할 큰 슬픔에 빠져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청년에게 아주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누군가가 청년에게 한쪽 눈을 기증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년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하였습니다. 한쪽 눈만으로 살아가는 것조차 싫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붙들고 간곡히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애원을 하고 간청하며 매달렸지요. 마침내 마지못해 수술을 하게 된 아들은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때가 되어 눈에 감긴 붕대를 풀고 앞을 보게 되었습니다. 붕대를 푼 순간 아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바로 눈앞에 한 쪽 눈이 없는 어鍛構?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머니는 아들을 품에 안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내 두 눈을 다 주고 싶었지만 장님이 된 내가 네게 짐이 될 것 같아 한쪽 눈만 줄 수밖에 없었단다."
 
우리가 살아야 할 길이 보입니다. 역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랑과 용서입니다. 바오로 사도 말씀처럼 그리스도 신자 생활에서 제한이 없는 유일한 임무는 사랑입니다.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로마 13,8).
 
오늘 예수님께서는 죄로 죽어가던 여인을 살려 주시고 용서로써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큰 은총을 입은 여인들은 완전히 새로 태어났으며 예수님의 적극적인 추종자로 변화됐습니다.
 
사람에게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은 처벌이 아니라 용서이며, 회개의 길로 돌아서는 순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사랑을 체험했을 때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 같이 자기는 깨끗하니 부정한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고 죄가 많은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멀리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살리는 자여야 함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바리사이들처럼 자신의 잣대에 맞춰 이웃을 판단하고 처벌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법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다윗처럼 회개하고, 죄녀 같이 고백하며 살아가자

 

-조순창신부-

 


인생이 연극이라면, 희극인가 비극인가? 각박하고 메마른 인생보다는, 부드럽고 따사롭고 정 있는 삶이 좋고, 죽고 사는 아귀다툼보다는 여유 있고 아량 있고 양보하는 삶이 좋고, 무관심과 이기적인 사회보다는 보은하고(은혜 갚고) 협동하는 삶이 좋은데, 이상과 현실은 왜 다른가요? 누구의 탓입니까? 마귀의 피가 흘러서일까요?

오늘의 제 1독서를 보면, 이스라엘 왕조의 전성 시대에 다윗 왕이 하느님을 업신여기고 죄를 지었습니다. 요합 장군 휘하의 장병들이 한창 전쟁 중에 있을 때에, 다윗 왕은 일선에 나가 싸우는 우리야의 아내 바쎄바를 탐하여 정을 통하고, 끝내는 우리야를 가장 전투가 심한 곳에 앞세워 내보내어 죽게 하고 나서는 우리야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 때에 예언자 나단이, 비유를 들어 다윗 왕을 몹시 꾸짖습니다.

“어떤 성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가난한 이가 품삯으로 얻은 암새끼양 한 마리를 애지중지 길렀습니다. 하루는 부잣집에 손님이 하나 찾아왔는데, 그 부자는 자기가 기르는 소나 양도 많건마는 잡기가 아까워서 가난한 집에서 기르는 한 마리뿐인 새끼 양을 빼앗아다가 잡아, 손님 대접을 했었습니다.” 이 얘기를 듣고 난 다윗은 몹시 괘씸한 생각이 들어서, 나단에게 소리쳤습니다. “저런 죽일 놈!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런 인정머리 없는 짓을 한 놈을 그냥 둘 수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단이 다윗에게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왕으로 갖출 것을 모두 넉넉하게 주셨으나, 욕심이 한이 없어, 남의 아내를 탐하여 죄를 지었으니, 집안에 칼부림이 가실 날이 없을 것입니다.”고 예언합니다. 그러자, 다윗 왕은 “내가 야훼께 죄를 지었소.”하며, 죄를 고백하고, 깊이 참회하여 용서받고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것이 옛날의 남의 얘기입니까?

자기는 넉넉한데도 불만하고, 자기 것은 털끝 하나 꼼짝 못하게 하면서도 남의 것은 무시하여 마구 짓밟아 버리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마음이 있다’면, 남의 얘기일 수 없습니다. 내 것이 중하면 남의 것도 중한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죄많은 여인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뭇사람에게 짓밟히고, 웃고 울다 버림받아, 상처투성이가 된 여인! 그것이 그 여인만의 죄입니까? 돈과 쾌락과 폭력의 사회 풍토가 문제입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을 예언자로 믿었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도 남을 넓으신 아량과 폭넓은 사랑을 믿었으며, 새인생의 길을 열어 구원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자기 죄를 시인하고 깊이 참회하였으며, 그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다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새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횡포를 뉘우쳐 봉사 생활을 시작했고, 죄지은 여인은 죄를 뉘우쳐 열심히 예수를 돕는 봉헌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야훼의 종의 첫째 노래에 메시아

“그는 나의 영을 받아 뭇민족에게 바른 인생길을 펴 주리라. 그는 소리치거나 고함을 지르지 않아, 밖에서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 버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 버리지 아니하며, 성실하게 바른 인생길만 펴리라!“(이사42,1d-3c)고 하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나단의 꾸지람을 듣고 회개한 다윗처럼,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을 믿고 참회하여 구원 얻은 죄인처럼, 내 죄를 인정하고 참회 고백하여 용서받고, 나로 인하여 상처받은 이를 낫게 해 주시고,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여 화합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멋있게 삽시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한 행복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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