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4일 부활 제3주일(요한 21,1-14)

2013. 4. 14. 오후 7:32:15

글자

2013년 4월 14일 부활 제3주일

 

복음
<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19<또는 21,1-14>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 보아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요한 21,1-14)

 

"Cast the net over the right side of the boat
and you will find something."

 

 말씀의 초대

 베 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부활을 내세우며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자 이를 믿지 않는 자들이 불쾌히 여기며 두 사도를 붙잡아 최고 의회에 세운다.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부활과 그분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담대하게 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로 시몬 베드로와 몇몇 제자들은 다시 어부 생활로 돌아간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했던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고기가 많이 잡히게 해 주시고 손수 아침까지 차려 주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베드로는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벗고 있던 겉옷을 두르고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베드로의 이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오 늘 복음과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과 베드로가 처음 만났을 때입니다(루카 5,1-11 참조). 그때도 오늘 복음의 내용처럼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했으나 한 마리도 낚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하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그대로 따랐더니 과연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 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 엎드려 말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심을 느꼈습니다. 그분 앞에서 부족하고 약하기만 한 자기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 그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보다도 죄책감이 더 컸던 베드로였습니다.
오 늘 복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때는 첫 만남이었고, 이번에는 마지막 만남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드로의 반응이 전혀 다릅니다. 그는 오늘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겉옷을 두르고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첫 만남 때의 죄책감보다도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더 간절했습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그분을 뵙고자 하는 마음이 더 절실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도 압니다. 죄인인 자신까지도 예수님께서 받아 주시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죄보다도 사람들 자체를 보시며 그들과 만나시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눈이 열렸다

 반영억 라파엘 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아주 구체적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식탁에서 빵을 들어 제자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이 시간 사랑이신 주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을 입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으시다.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다, 주님께서는 모든 능력을 지니셨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믿는 이들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대개는 머리로는 전능하신 하느님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가슴으로 새기고 손발로 움직여서 열매를 맺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머리에서 머무는 믿음은 삶에서 아무런 역사도 일으키지 못합니다. 결국 그런 사람은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앞날만 걱정합니다. 그렇지만 참된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는 문제는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입니다. 환난은 두려움으로 다가오지만 믿음의 눈은 기회로 포착합니다. 그야말로 문제는 최선을 다할 기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후 제자들은 실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었습니다. 철석같이 믿었던 구세주께서 힘없이,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으니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시쳇말로 끈이 떨어졌으니 앞날이 막막합니다. 이제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체념한 듯 다른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고기 잡으러가네.”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소.”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제 동거 동락하던 예수님과의 생활을 내려놓고 고단한 일상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고기를 잡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경황이 없는 그날 고기가 눈에 보였겠습니까?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힘들고 지친 상태인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못 잡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못잡았다.’는 것은 자기들의 먹을 양식조차 구하기 힘든 무력함과 고단함이 느껴지는 자리입니다. 바로 이 절망의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하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서 그대로 하였더니 감히 생각지도 못한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시키는 대로 하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은 순명을 낳고, 순명은 기적을 낳는 법입니다. 또한 순명은 눈을 뜨게 해 줍니다. 말씀대로 배 오른쪽에 그물을 던지고 놀라운 결과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 받던 제자가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의 눈이 뜨인 것입니다. 사실 그때까지는 옆에 계신 분이 예수님인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눈을 떠야 합니다. 지금 육적인 눈을 뜨고 있지만 주님을 만나 뵐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의 눈을 떠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눈 뜨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명함으로써 비로소 눈을 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먼저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졌듯이 여러분도 말씀에 순명하시기 바랍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모든 더러움과 그 넘치는 악을 다 벗어 버리고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1,21-22). 우리를 구원할 힘이 하느님 말씀에 있는데 왜 말씀대로 실천하기를 주저하십니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렇게 했을 때 정말 축복이 주어질까? 하는 의심 때문입니다. 지금당장 불이익을 당하고 손해 보는 것 같은 마음이 나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귀한 말씀이 주어져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은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고 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사도5,41)하였습니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말씀을 실천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14,23).하고 말씀을 지키는 사람과 함께 사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좋아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진심으로 실행하십시오(에페6,6). 거기서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고기를 구워주고 빵을 주시는 행위는 바로 우리에 대한 극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이 고기를 끌어올리기 전에 이미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수고로 잡은 고기를 보태서 나누어 주셨습니다. “무얼 좀 잡았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은 ‘내가 아침상을 준비해 놨는데 너희가 보탤 것이 뭐 좀 있느냐?’ ‘내가 나눌 음식을 준비했으니 너희도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주님의 은총에 우리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협력을 통해 더욱 풍요롭게 해 주십니다. 기운을 북돋아 주시고 원기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그분을 보고 누구도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고 난 후 입니다. 이른 아침 왠 젊은이가 나타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했는데 그들이 어부라는 자기의 자존심을 내세워 그대로 행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들은 여전히 주님을 알아 뵙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순명을 한 것입니다.

순명은 비합리적이고 상식에 어긋나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이고 지극히 마땅하고 옳은 일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순명이라 하지 않습니다. 선원들이 선장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갑니다. 지휘관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군대는 오합지졸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무늬만 신앙인이 되고 맙니다.

순명은 주님을 알아보는 눈을 뜨게 했고, 많은 고기를 낚는 기적을 낳기도 했습니다. 순명은 이성과 판단의 희생입니다. 어부의 자존심을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이 희생은 다른 어느 것보다 주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었습니다. 삶이 우리 뜻대로만 되지 않는데서 오는 포기의 순간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말씀에 순명하는 가운데 주님을 차지하시길 바랍니다. 말씀대로 행하는 곳에 주 하느님께서 함께 하십니다.“너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의 종, 내가 너를 선택하였고 너를 내치지 않았다.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 내가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 내 의로운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이사41,9-10).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하시며 길을 알려주시는 주님, 말씀 그대로 행하여 그물을 가득 채워서 당신의 말씀이 곧 진리임을 가르치신 주님, 몸소 생선과 빵을 들어 나누어 허기진 배를 채워주시는 생명의 주님께 대한 믿음이 더해지길 기도합니다. 마무리 하겠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 믿음의 순명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10년째 강의 노트를 바꾸지 않는 교수에게 학생이 물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어찌 10년이 넘도록 똑 같은 강의 노트를 그대로 사용하십니까?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당당히 말씀하셨습니다.
자네는 그것도 모르나? 진리는 영원한 거야! 하느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모든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가르침은 진리입니다.
진리이신 주님을 만나는 한주간 되기 바랍니다.


 
신부님 두 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과속을 하셨습니다.
교통경찰이 웬만하면 봐 주려고
아실만한 분이 왜 그러십니까? 천천히 다니십시오. 사고 납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신부님께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함께 타고 계십니다.
그 말은 들은 경찰은
그럼 스티카를 끊겠습니다. 3명이 타면 위법입니다.
예수님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부활 제3주일   요한 21,1-19 (다)  여러분 무얼 좀 잡았습니까

함세웅 신부
 



 

오늘의 복음 말씀은, 갈릴래아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복음의 내용은, 평범하여 무슨 별다른 주석을 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밤새 고기를 못 잡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이, 그물을 오른쪽으로 던지라 해서 153마리의 고기를 잡고, 이어서 같이 식사를 하시고(성체 성사) 생선을 같이 잡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우선 사도들의 소명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부들을 맨 처음에 부르신 예수님은, 그들을 모두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드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지상 사명을 마치시고, 다시금 호숫가에서 고기 잡는 그 어부들에게 나타나셔서 맨 처음에 약속하셨던 '천상 어부'의 사명을 일깨워 주시고 재확인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께 부름을 받았던 사도들이지만, 예수님과 관계를 맺지 않을 때, 예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없다면 그들의 작업은 모두 헛것이며, 헛수고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영세한 우리이지만, 그 자체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항상 예수님과 관계를 맺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을 때만, 영세의 효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호숫가에서 시작한 서론이 다시금 고기잡는 호숫가에서 종결되는 성경 말씀은, 이러한 의미에서, 사람과 하느님의 힘이 합해져야만 결실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은 어부와 바다(그 안의 물고기)입니다. 잡은 물고기의 숫자 153은 여러 가지의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예로니모는, 옛 동물학자들에 의하면 153이란 숫자 모양이 물고기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해석은 1에서 17까지의 합계가 153이기 때문에, 153은 17과 관계되고, 17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17은 7과 10의 합인데 성서에서 7과 10이란, 숫자의 완전성과 모두 즉, 무한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도로부터 이어져 오는 공번된, 보편적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라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153의 상징적 해석은 다분히 주관적인 해석이기에 단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두번째 장면은, 알몸으로 있다가 물 속으로 뛰어드는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인간성을 묘사한 장면 그대로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꾸밈없고 가식 없는 기술입니다.
 

세번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준비를 다 해 놓으시고,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를 가지고 오라 하시어서, 빵과 물고기를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음식까지도 모두 다 준비하실 수 있는 기적의 예수님이었지만, 인간의 협조를 꼭 필요로 하시었기에, 물고기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구원사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필요 불가결의 관계를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의미는, 음식(영성체)을 받고는 모두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고, 더 이상 의심하거나 묻거나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미사 중의 영성체로써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고, 체험한다는 것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복음 내용을 요약하면, 어부와 바다, 인간의 헛수고, 예수님의 부르심과 권고와 명령, 그에 따른 수많은 수확, 그리고 우리의 수확으로 기뻐하시며 그것을 축복하여 주시는 예수님, 그래서 부활한 예수님을 뵐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묻고 계십니다. “무얼 좀 잡았습니까?"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연구실에서, 사무실에서, 무슨 활동에서 무얼 좀 얻었습니까? 하느님과 관계를 맺지 않을 때 ‘무엇'은 무의미합니다. 어쨌든 우리의 노력, 수고로 얻은 이 결실을 다시 예수님은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필요하시기 때문만은 아니고, 우리의 결실을 축복하셔서 다시금 우리 각자에게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막 잡은 물고기 몇 마리 좀 가져오시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미사 봉헌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드립니다. “온 누리의 주 천주여, 찬미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땅을 가꾸어 얻은 이 빵과 포도주를 주께 드리오니,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음식과 음료수가 되게 하소서. 천주여, 세세에 찬미 받으소서"라고 하면서, 자신을 봉헌한다는 것은, 곧 하느님께로부터 받는 것이며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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