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 주일 ]가나에서 당신의 첫기적을 행하셨다(요한 2,1-12)

2013. 1. 20. 오전 6:01:57

글자

[다해]연중 제 2 주일
 

예수께서 갈릴래아의 가나에서 당신의 첫기적을 행하셨다.

제 1 독서 : 이사 62,1-5     응   송 :  시편 96, 1-10

제 2 독서 : 1고린 12,4-11   복   음 :  요한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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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의 혼인잔치의 의미

1. 혼인잔치

혼인잔치라는 배경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혼인이라는 표상이 계약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가끔 사용되었습니다(호세아 2,7이하). 이 표상은 메시아시대에까지 연장됩니다. 메시아 시대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마치 신랑이 신부를 두고 기뻐하듯이 기뻐하실 완성과 확인의 때입니다(이사야 62,2-5). 메시아 시대적 완성을 극화하고, 생생하고 함축성 있는 예는 요한묵시록에 나옵니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느님, 전능하신 분께서 다스리기 시작하셨다. 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 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어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다. ’(묵시 19,6-7)


2. 떨어진 포도주

 혼인잔치는 흥겨운 자리입니다. 잔치는 당시 풍속대로 1주일 이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혼인잔치에서 가장 필요한 음료인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떨어지다.’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더 이상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리스어로 이 말은 ‘열등하다’라는 뜻도 아울러 지닙니다. 이것은 구약의 유다교가 그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 사람들에게 환희와 영감을 주지 못하던 상태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구약의 율법은 하느님 나라의 혼인잔치의 즐거움을 결코 완성시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유다교와 율법을 상징하는 ‘물’이 신약의 그리스도교와 복음을 상징하는 ‘포도주’로 변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가 유다교를 이미 앞질렀다는 사실과 함께 복음이 율법을 갱신했음을 의미합니다.


3. 성모님의 청원과 믿음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을 알리고, 예수님의 거절 속에서도 예수님의 답변을 너무도 잘 이해하셨기에, 오로지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며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창세기에서 파라오와 모든 이집트인들이 요셉에게 순종한 것을 상기시킵니다. 백성이 파라오에게 흉년과 기근이 덮쳐왔을 때 빵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자, 파라오는 백성에게 ‘요셉에게로 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창세 41,55)고 말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기 청을 들어 주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청원을 드려서 거절당한 예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4. 여섯 개의 돌 항아리.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여섯 개’의 돌 항아리가 있었다는 것은 ‘일곱’이라는 완전한 숫자에 미달된 구약의 불안전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여기에 또 하나의 돌 항아리를 추가하시지 않고 이미 있었던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서 그 물을 매우 질 좋은 포도주로 변화 시키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율법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신약의 복음 안으로 흡수되어 완성되었음을 의미합니다.

  

5. 일꾼들의 자세.

 일꾼들의 자세는 신앙인의 자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일꾼들에게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예수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정결예식에 쓰는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시자 일꾼들은 아무 말 없이 물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퍼서 잔치 맡은 사람에게 갖다 주어라 하고 말씀하시자 일꾼들은 그것을 갖다 주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보기에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응답하는 삶. 내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 그것이 바로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들의 자세입니다.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을 통하여 나와 공동체에게 큰 기쁨을 주실 것이고, 마침내 구원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6. 물이 포도주로

 물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즉 율법은 물러나고 은총이 뒤를 이었습니다. 그림자는 지나가고 실재가 현존하게 되며 육적인 것은 영적인 것과 대조를 이루고 구약은 신약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는 복된 사도가 “보라,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 것이 나타났다.”라고 말하는 바와 같습니다. 또한 물동이에 담겨진 물이 과거의 것을 조금도 잃지 않고 이제는 과거의 것이 아닌 새 것이 되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기에 율법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분명해지고 완성되었습니다.


 또한“포도주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시편 104,15)라는 성경 말씀처럼 포도주가 넉넉히 제공된 것은 하느님의 축복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표징이고, 구세주가 가져오실 구원과 행복을 상징합니다(창세 49,11-12; 이사 62,8-9; 65,21 참조). 그러므로 잔치맡은 이의 입을 통해 보증된 “제일 좋은 포도주”는 당신이 가져오신 신약의 은총이 넘치도록 풍부하고, 다른 무엇보다도 뛰어나고 탁월한 것임을 입증하는 동시에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혼인잔치가 더없이 행복하고 값질 것임을 미리 암시하는 것입니다.


7. 제자들의 믿음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지방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바로 신적인 권능을 지니신 분임을 공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또한 주님의 어머니께서는 단순히 그분 곁에 머무르시는 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시는데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이 첫 번째 기적이 ‘혼인잔치’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혼인잔치는 매우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혼인’(婚姻)은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에 맺은 계약을 상징하는 고유한 표현입니다. 특히 예언자들은 이스라엘과 맺으신 하느님과의 계약을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에 바탕을 둔 한 충실한 부부 사랑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배경으로 예언자들은 당시 이스라엘이 겪어야 했던 멸망과 유배를 그들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충실하지 못한 결과로 보았고(예레 22,9), 이를 마치 부인의 간음 때문에 실패로 돌아간 결혼 생활에 비유하였습니다(호세 2,4; 에제 16,15-43).

 그러나 비록 구약 시대에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이 파괴되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계약’이 있을 것임을 여러 곳에서 예고하셨습니다(예레 31,31-34; 33,20-26). 호세아 예언자는 이것을 신부(新婦)로 하여금 사랑과 정의, 충실을 갖게 하고 인간과 전 피조물 사이에 평화를 회복시킬 수 있는 새로운 약혼의 형태로 묘사하고 있으며(호세 2,20-24), 이사야 예언자는 이러한 계약의 모습을 미래에 맞이하게 될 야훼와 새 예루살렘 사이의 혼인잔치로 표현하였습니다(이사 54장).

 종말에 성취되리라 믿었던 완전하고도 새로운 계약은 드디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수난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완성을 향해 진행되고 있는 이 계약은 장차 천상 예루살렘에서 있을 참다운 신랑이신 ‘어린 양’과 그의 새로운 신부인 교회와의 흥겨운 혼인잔치에서 완성될 것입니다(묵시 21,2.9).


 하느님 나라의 새로움을 가져오신 예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듯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실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부부 관계가 혼인 생활 안에서 서로 부딪치고 용서하고 서로의 깊이에 숨어 있는 진실을 알게 됨으로써 결국 사랑으로 하나가 되듯이,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신부인 교회와의 혼인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실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혼인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상의 질서를 낳는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카나 기적 이야기가 지닌 종말론적 의도는 그 기적 자체의 본질에 의하여 심화됩니다. 술이 넘치게 준비되었습니다. 술은 상징적으로 마지막 때를 묘사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범죄를 일삼는 죄지은 백성을 벌하시러 오셔서 그들로부터 술을 빼앗으십니다(신명기 28,39-아무리 애써서 포도원을 가꾸고 심어도 벌레가 갉아 먹어 마실 포도주도 저장해 둘 포도주도 없으리라). 아모스 예언자에 의하여 파괴와 인과응보의 때로 간주된 주님의 날은 이스라엘 가문이 자기네 차지가 되지 못하고 거기에서 빚은 술을 마시지도 못하고 포도원에서 땅을 치며 통곡할 날이 될 것입니다(참조: 아모5,17).


 또 한편으로는 술이 넘치게 풍성한 것은 행복과 구원의 약속이 됩니다. 아모스가 본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명상은 산에서는 햇포도주가 흘러내리고 언덕마다 무르익은 곡식이 물결치는(9,13) 땅을 봅니다. 이사야는 만백성을 위해서 시온 산위에 차려질 ‘포도주의 잔치’를 선포하였습니다(이사25,6).

 이 같은 배경을 염두에 둘 때, 카나에서 일어나는 기적은 메시아 시대에 일어나기로 되어 있는 포도주의 기적이요, 잔치 맡은 이가 감탄한 것처럼 지금까지 숨겨놓은 좋은 술이요, 종말에 쏟아 부어질 풍성한 술인 것입니다.


 혼인잔치에서 흥겨움을 더해 줄 수 없었던 돌 항아리 속의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께서는 이 표징을 통해 앞으로 이루실 당신의 사명을 드러내십니다. 그 사명이란 이 세상에 구원을 가져오지 못하면서도 사람들을 옭아매고 구속하였던 구약의 율법을 참된 자유와 생명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사랑의 법’으로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의 보다 더 깊은 뜻은 이 기적을 통해서 당신 안에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실 능력을 있다는 것을 제자들이 믿음으로써 당신의 사명을 이해하고 받아들도록 하는 데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자신들이 떠간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을 알고 있는 일꾼들을 포함하여 그 잔치에 함께 있었던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건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그분을 믿게 되었다는 것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잔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영광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영광은 단지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물독에 물을 채우라고 하시는 당신의 말씀과 함께 물은 힘을 얻고, 색깔을 취하며, 좋은 향기를 퍼뜨리며 맛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물은 완전히 변해서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창조주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한 처음에 세상을 만드신 분의 능력입니다. 이것을 보고 제자들은 믿음을 얻었습니다. 제자들은 단순히 눈앞에 펼쳐진 일만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믿은 것은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외아들이라는 점입니다.


더욱 가까워진 하느님 나라

이기양 신부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동안에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는데 그 중 첫 번째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입니다. 바로 오늘의 복음이지요.

혼인잔치의 주인공은 당연히 신랑과 신부여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예수님과 성모님이 중심입니다. 어찌 보면 공무를 집행하는 예수님과 사적인 청탁을 하는 어머니의 대화처럼도 비춰지지만 오늘 복음은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결혼잔치에서의 첫 번째 기적은 가정의 중요성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이스라엘, 하느님과 신약의 교회의 새로운 관계를 말합니다. 또한 물이 포도주로 변한 기적은 이제 물로 세례를 주던 세례자 요한의 시대, 물로 깨끗이 하던 구약의 시대는 지나고, 포도주가 의미하듯이 우리 죄를 씻어줄 성체성혈의 시대를 예고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는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역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어머니의 청에 의해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성모님의 협력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천주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천주교를 "마리아교다", "천주교 신자들은 왜 마리아께 기도하느냐 예수님께 기도하지"하며 비난의 수위를 높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이 비판하는 대로 마리아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하지요. 저희를 위하여 빌어 달라고 청하는 것이지 저희 기도를 들어달라고 비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 직접 기도하지 왜 굳이 성모님을 통해서 청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이 그 답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당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성모님의 거듭된 청으로 첫 번째 기적을 가나에서 일으키셨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해 볼까요?

가끔 저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신자분들이 계십니다.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걸려 큰 수술을 받게 되면 불안하고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찾아와 "신부님,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축복하여 주십시오,"하고 청합니다.

이때 대부분의 사제는 왜 하느님께 기도하지 나에게 부탁하느냐고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제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힘을 얻는데 하물며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마리아께 기도를 청할 수 있다는 것은 영광이요, 은총입니다.

저 역시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큰 은총을 입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저는 어릴 때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겼다고 합니다. 그중 뇌진탕 사건이 의미심장합니다. 누이 등에 업힌 채로 심하게 장난을 치며 움직이다가 부뚜막 위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뇌진탕으로 사경을 헤매던 저를 업고 어머니께서는 매일 치료를 받으러 다니셔야 했는데 어느 날 홍수로 물이 불어 갈 수 없는 길 앞에서 어머니는 간절히 묵주기도를 드리며 약속을 하셨다고 합니다.

"주님, 살려주시기만 하면 이 자식을 주님께 봉헌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성모님, 부디 전구해 주십시오." 저는 살아났고 어머니께서 그 약속을 하신지 30여년이 지나서 사제가 되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성모님을 통해서 예수님께 기도하시기를 권합니다.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어머니의 청을 들어주셨듯이 성모님을 통한 우리 기도를 예수님께서는 더 잘 들어 주실 것입니다.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첫 번째 기적은 새로운 구원자의 시대, 신약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무한하신 하느님 사랑에 감사드리며, 자비로우신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모신 특은을 받은 신자답게 살아야 함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신명나는 공동체

교구 주보
 

1. 복음 이야기(요한 2,1-11) 

요한 복음작가는 일곱가지 기적 이야기(2,1-11; 4,46-54; 5,2-9; 6,1-15; 6,16-21; 9,1-12; 11,1-44)를 썼는데, 그 중 첫 번째가 가나의 혼인잔치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어느 날 갈릴래아의 가나에서 벌어진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잔치가 계속되고 있는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이 딱한 사정을 알게된 성모님은 걱정하면서 예수께 해결해 줄 것을 청했습니다. 난처한 청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부인, 제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제 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당시 이스라엘이나 지중해 문화권에서 어머니를 '부인'이라고 부르는 법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부인'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상징입니다. 그리고 '아직 제 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는 말씀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부께로 옮겨가시어 영광을 누리실 시간(요한 12,23 ; 13,1 ; 17,1), 곧 구원의 시간이 도래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4절의 말씀은 예수께서 죽음과 부활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시간이 되기 전에 예수께 구원을 강요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어머니는 시중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여러분에게 이르시는 대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거기에는 마침 돌로 만든 물독 여섯 개가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시중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우시오' 하고 이르고는 그 물을 모두 포도주로 변하게 하셨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참석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어머니와 제자들과 함께 가파르나움으로 내려 가셔서 며칠동안 머무르셨습니다. 

 

2. 우리의 이해 

요한 복음서는 복음서 작가의 명상록인데다 상징적인 의미를 많이 담고 있어서 그 뜻을 파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 역시 그러합니다. 예수께서 공적으로 하느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기 직전에 맨 처음으로 행한 사건이 잔치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이었다는 요한 복음작가의 보도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유다인들의 혼인잔치는 일주일 동안 계속됩니다. 잔치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술'일 것입니다. 술은 잔치집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면서 신명나게 축제를 벌이는 데 도움을 주는 매개체입니다. 예수님은 아마도 잔치판의 흥이 깨지지 않도록 물을 술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행하셨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평소에 주로 죄인들과 어울리면서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기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벗이로구나'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루가 7,34). 

가톨릭 교회 생활의 중심은 미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미사에는 잔치보다는 제사의 의미가 더 강하게 담겨 있기 때문에 즐겁고 기쁜 표정을 짓거나 축제라는 기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드리는 미사는 축제이고 잔치입니다. 물론 미사 드리는 자세는 항상 경건하고 진지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가나의 혼인잔치처럼 매일 드리는 미사가 흥겹고 신명나는 잔치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술에 취해 주정뱅이가 되거나 가끔씩 공동체의 유익을 해치는 면에서는 술의 역기능이 있다 하겠으나 인간미와 인정이 넘치는 공동체를 이루고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는 술의 순기능이 있다 하겠습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복음따라 신명나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함께 노력하도록 합시다.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 

 강길웅 신부  

 제1독서 이사 62,1~5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 하시리라) 
 제2독서 Ⅰ고린 12,4~11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주십니다)  

복 음 요한 2,1~11 (이렇게 예수께서는 첫번째 기적을 갈릴래아 지 방 가나에서 행하셨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 잔치는 그 의미가 대단히 큽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신랑도 아니고 신부도 아닙니다. 엉뚱하게도 예수님이 주인공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가나의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계약 관계만도 아닙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하느님과 교회, 그리고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합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백성이 계약을 깨뜨림으로써, 그 혼인 관계는 파기되었습니다. 아주 끝장이 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서 새 계약이 체결되며 새로운 혼인 관계가 성립이 됩니다. 이것이 오늘 성서의 주요 내용입니다.
 

잔치에서의 술은 생명입니다. 술이 있어야 흥겹고 좋은 술이 있어야 그 잔치가 성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잔치에 술이 떨어졌다면 그 잔치는 파장입니다. 이제 끝장입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잔치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더 흥겹게 됩니다. 마리아가 도와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잔치는 많은 손님 탓인지 너무도 일찍 술이 바닥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은 큰 낭패였고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때 마리아가 눈치를 채시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개입하심으로써 다 끝장이 난 잔치를 더 흥겹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과 이스라엘, 그리고 하느님과 인류와의 관계입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하느님의 계명을 저버림으로써 하느님과의 단절된 생활을 해 왔습니다. 성서에 보면 하느님은 신랑인 남편이요 이스라엘은 신부인 아내입니다. 여기서 신랑은 계약에 늘 충실하지 만 아내인 이스라엘은 항상 바람만 피우고 못된 짓만 골라서 합니다. 이제 혼인 관계는 깨졌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대가로서 실로 엄청난 고난을 체험하게 됩니다. 노예로 끌려가서 수십 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으며 나중에 고국에 돌아왔으나 다 파괴되고 무너진 도시와 성벽 앞에서 그들은 허탈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하느님을 거스렸던 자신들의 죄 앞에서 그들은 회한만이 가득했습니다.

이때 예언자가 나타나서 말합니다. 너희는 이제 더 이상 버림받은 여자가 아니다. 절대로 소박데기가 아니다. 하느님은 너희를 사랑받는 귀여운 각시로 다시 맞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내용이 오늘 1독서에 나왔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어떤 최악의 경우에라도 희망이 있습니다. 절대로 포기되지 않습니다. 바로 예수님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인류와 의 다 깨진 혼인 잔치에 예수님이 개입하심으로써 새로운 사랑의 관계가 성립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처지에서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생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형제가 세례받은지 2년만에 냉담을 했습니다. 왠지 신앙 이 식어져서 성당에 나오는 것이 귀찮게 되었고 한두 번 안나온 것이 그럭저럭 3년을 주저앉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 동안에 돈은 제법 잘 벌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이 아무리 풍요로워도 마음은 항상 메마르고 허전했습니다. 마치 잔치에 안주는 풍성하지만 술이 없어서 흥이 나지 않는 그런 혼인 잔치와도 같았습니다. 잘먹고 잘살아도 주님이 거기 계시지 않으니 인생의 잔치는 파장이었습니다. 마음에는 항상 쓰레기만 날리는 황량한 거리 같았습니다.

이 형제가 어느 날 은행을 나서다가 발에 밟히는 것이 있어 주 워 보니 반지묵주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밟았던 묵주를 보면서 어떤 깊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묵주가 버려져 밟혀 있듯이 자기가 신앙 을 버리고 하느님을 밟아 온 나날을 반성하고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 길로 성당으로 찾아가서 기도를 했고 신부님을 뵙고 고해성사를 봄으로써 새 포도주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그날부터 그는 생의 참 의미를 찾게 되었으며 돈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삶의 고귀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거기서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거기 계시지 않으면 세상은 황무지라는 것을.

우리는 신앙의 은혜를 소중하게 간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거기 계시지 않으면 인생은 술 없는 잔칫상입니다. 아무리 잘살아도 주인 공 없는 혼인 잔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도움을 기억합시다. 오늘 주님은 원치 않으셨으나 그러나 마리아의 청을 거절치 못 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올해가 축복으로 열렸지만 그러나 그 축복의 한 해 속에는 고달프고 힘든 일이 숨겨져 있으며 외롭고 슬픈 일들이 우리를 괴롭힐지 모릅니다. 또는 해도해도 무너지고 실패하는 아픔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때 예수님을 찾읍시다. 그때 성모님께 달려갑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흥겹게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기념성당 내부

표징을 보아야 한다.

 반영억라파엘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원의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원하시는 때에 당신께서 원하시는 방법을 통해 풍요롭게 해 주십니다. 이 시간 기도에 관해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의 바람을 넉넉히 채워주시는 주님과, 늘 옆에 계시는 성모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갈릴래아의 카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 계셨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혼인잔치를 아주 장엄하게 치렀습니다. 일반적으로 일주일간 계속됩니다.
그런데 마침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치 중에 필수품인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큰 망신입니다. 요즘 같으면 시장에서 금방 사서 대체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미리 예측하여 술을 담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술이 떨어졌음을 눈치 채고 아들에게 포도주가 없구나 하고 알리셨습니다.
여기서 “포도주가 떨어졌구나” 하지 않고 “포도주가 없구나!” 한 것은 성모님의 시선은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보다 난감한 처지에 빠진 신혼부부에게 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려 깊고 섬세한 어머니이십니다.
문제가 발생 되었을 때 사랑이 있으면 해결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누군가를 원망하고 핑계를 찾게 되는 법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문제만 더 커지고 시끄러워집니다.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모님처럼 접근해야 합니다. 사실 성모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처지도 알고 계시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 사정을 말씀드리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처지를 어머님께 있는 그대로 알려주십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2,5)하시며 아들 예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를 보이며 주님의 뜻에 순명하도록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기적을 베풀어 달라고 청하지 않고 다만 처지를 말씀드릴 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주님께서 알아서 할 일입니다. 주도권은 언제나 주님께 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시고 다시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시며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지 않으셨다고 하면서도 어머니의 말씀을 흘려보내지 않으시고 잔칫집의 곤란함을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어려운 상황의 처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말씀 드리는 어머니의 배려, 당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시며 기다리시는 어머니의 사려 깊은 모습에서 우리가 기도해야 할 바가 무엇이며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기적을 낳습니다. 사랑이 가득 차 있을수록 그만큼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나의 모든 것, 모든 움직임이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모든 사물, 모든 행위 속에 존재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관심과 사랑이 없었더라면 포도주가 떨어진 것에 마음을 둘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있기에 아들에게 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은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어떤 기도든지 생명력이 있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가 온 삶이 되어야 하고, 삶이 또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한 동안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복지관 관장이든, 매괴성모성당이든 둘 중 하나의 소임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런데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신 수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들어줄 기도를 하십시오. 지향이 애초부터 잘못되었습니다.” 저의 청원을 들어주지 않으셨지만 하느님의 뜻은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래서 제 뜻을 고집하지 말고 불평 불만하지 말자 다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함부로 쓰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시든지 당신 혼자서 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협력을 바라시며 우리를 도구 삼아 이루십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시는 기적을 이루실 때 물독에 물을 채우고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그것을 거부하면 우리를 위한 은총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은총의 협력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손과 발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영적갈증도 점검해야 합니다. 일꾼들이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항아리에 물을 붓자 비로소 기적을 이루신 것처럼 우리도 삶의 무기력과 우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영혼의 항아리에 물을 부어야 합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주님의 말씀에 순명하고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려 애쓸 때 틀림없이 새로운 변화를 주실 것입니다.

데레사 성녀의 기도를 상기합니다.

“그리스도는 손이 없다.

하지만 우리 손으로 그분이 하실 일을 한다.

그리스도는 발이 없다.

하지만 우리 발로 사람들을 그분이 계신 곳으로 인도한다.

그리스도는 목소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 목소리로

그분이 죽으신 까닭을 말한다.”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의 풍요로움은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 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 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두셨군요(요한2,10) 하고 말한 과방장의 말을 통해서 잘 드러납니다.
양에 있어서 풍부할 뿐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최고입니다. 차고 넘치도록 베푸시는 주님이십니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주실 것이다”(루카6,38).

포도주의 기적은 단순한 기적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위한 표징의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그분께 온전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사실 요한 복음에서는 기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표징을 말합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을 통해 무엇을 전해 주고자 하는가를 알려주는 것이 표징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적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그 기적이 전달하려는 핵심메시지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쳐다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면 낭패입니다.’
카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에서 잊지 말 것은 6개의 물 항아리를 가득 채우시는 완성된 구원을 갖고 오시는 예수님의 신적 정체성입니다. 그리고 물이 포도주로 변해 잔치의 풍성함을 유지 시킨 것은 성체성사의 표징이기도 합니다. 그 풍요로움은 또한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우리의 삶을 꾸준히 엮어 나갈 때(갈라2,5) 우리의 삶은 또 하나의 표징이 되어 세상을 풍성한 잔치 장소로 변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 진리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성모님께서 교회의 어머니임을 깨닫고 그분이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하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자리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표징의자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잔칫집에서 예수님의 어머니를 초대하였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요? 어머니께서 그 자리에 계셨기에 그 곤란함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 안에도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겠습니다.
기도하되 성모님의 모범으로 성모님을 통하여 은총을 구하십시오. 성모님을 통하여 반드시 얻을 것입니다.(성 베르나르도) 성모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거기에 견주어 마음을 성찰하고 그분을 담지 않은 것이면 무엇이나 마음에서 몰아내십시오. 그리고 어머니처럼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모님은 예수님처럼 하느님과 인간의 중재자가 아니라 예수님과 인간사이의 중재자라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특별한 방법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단순한 말로 청하십시오. 무엇인가 다른 것을 청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것을 찾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단순하게 바라는 것을 청하고 다만 내 뜻대로 가 아니고 당신 뜻대로 라고 말하십시오.(샤를로 푸코)
예수님의 어머니가 하신 말씀은
포도주가 없구나 하신 것이 다 입니다. 사랑이 담긴 그 한마디가 기적을 낳았습니다. 결국 기도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많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 사랑하는 삶의 기도를 통해 기적을 많이 낳으시길 바랍니다.

야고보 사도의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조금도 의심을 품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의심을 품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흔들리는 바다 물결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예 주님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야고1,6-7) 사랑합니다. 많이 사랑합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신학과목 시험문제는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이 내포하는 영적의미를 서술하라” 였습니다.

한 학생의 답입니다. “물이 주인을 만나자 얼굴이 붉어졌다.”

이 학생은 영국최고의 시인이 된 바이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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