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일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25-28.34-36)

2012. 12. 2. 오전 6:04:17

글자


 

2012 12 2일 대림 제1주일

  (생명수호주일)

 

대림 시기는 예수 성탄 대축일전의 4주간을 말한다. 대림이란 오시기를 기다린다 의미다. 이 용어는 도착을 뜻하는 라틴말 아드벤투스’(Adventus)를 번역한 것이다. 오실 분은 물론 예수님이시다. 하지만 그분은 이천 년 전에 이미 이 세상에 오셨던 분이시다. 그런데도 교회는 전례를 통하여 그분의 탄생을 매년 되풀이하고 있다. 그분께서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새롭게 기념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한 해의 전례 주기는 대림 첫 주일부터 다시 시작된다. 교회 달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올해 대림 시기에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린다.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열망하며 기다렸듯이,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한편 대림 시기는 종말에 오실 예수님도 묵상하게 한다. 이 분위기는 대림 첫 주일부터 12 16일까지의 전례에 많이 나타난다. 성경 말씀도 깨어 기다리는 데역점을 두고 있다. 그러다가 12 17일부터 성탄 전야인 12 24일까지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초점이 모아진다. 이렇듯 대림 시기는 예수님의 오심을 두 부분으로 묵상하게 한다.
대림 시기에는 사순 시기와 마찬가지로 대영광송은 노래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렐루야는 노래한다. 사순 시기는 회개가 강조되는 시기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뜻에서 노래를 생략한다. 하지만 대림 시기는 기다림과 희망의 시기다. 인류 구원의 메시아께서 오시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알렐루야를 노래한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카 21,25-28.34-36)
Be vigilant at all times
and pray that you have the strength
to escape the tribulations that are imminent
and to stand before the Son of Man.”

 

 

말씀의 초대

그날이 오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게 하신 약속을 모두 이루어 주실 것이다. 그날과 그때에는 세상에 공정과 정의가 이루어지며,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될 것이다(제1독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느님 아버지 앞에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끊임없이 배우고 또 배운 대로 살아야 한다(제2독서). 종말의 날에는 해와 달과 별들에 표징이 나타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가까이 다가온 속량을 올바로 맞이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날은 갑작스럽게 덮칠 것인데 그 모든 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해야 한다(복음).

☆☆☆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분께서 계획하신 일은 막을 없다. 아무도 다윗이 왕이 몰랐지만, 주님께서는 그를 선택하셨고 약속을 지키셨다. 이렇게 해서 유다 지파는 왕족이 되었고, 이스라엘의 중심이 되었다. 모두 주님께서 하신 일이다(1독서). 사랑은 축복이다. 이웃을 사랑하면 주님의 위로와 힘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으로 바뀌어 간다. 언제라도 사랑의 길이 정답이다. 믿는 사람이 사랑의 길을 걷지 않으면 신앙은 자라나지 않는다(2독서). 종말의 날에는 해와 달과 별들에 표징이 나타날 것이다. 해와 달과 별들에 해당될 만큼 중요한 것들에 변화가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기에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다. 일상의 기도와 선행에 더욱 충실하라는 말씀이다(복음).

 

 

 

오늘의 묵상

스위스의 정신 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들의 정신 상태를 연구하여 책으로 냈습니다. 그녀는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은 누구나 비슷한 마음의 변화를 겪는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이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라 하며 5단계로 구분하였는데,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의 반응은 ‘부인’입니다. ‘이건 무엇인가 잘못된 거야. 내가 죽는다니, 그럴 수는 없어!’ 하며 사실을 부정하려고 합니다. 2단계의 반응은 ‘분노’입니다. 필사적으로 부인해도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면 분노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왜 나만이 이런 가혹한 운명을 감당해야 하는가?’ 하는 분노입니다. 3단계는 ‘거래’입니다. 대개의 경우 인간을 초월한 절대자와 거래합니다. 예컨대 “목숨만 살려 주시면 착하게 살겠습니다.” 하고 절대자에게 제안합니다. 4단계의 반응은 ‘억울함’입니다. 거래에 대한 제안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슬픔과 낙심에 빠집니다. 이때에는 어떤 위로의 말도 들리지 않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수용’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억울함이나 분노가 사라지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이때에는 그 사람이 지니고 있던 본래의 좋은 성품이 나타나고 주위 사람들도 감동하게 된다고 합니다. 퀴블러 로스는 이 마지막 단계를 ‘긴 여행을 앞둔 최후의 휴식’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종말의 여러 표징들이 나타나더라도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하고 당부하십니다. 믿음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해 줍니다. 이러한 믿음을 성숙시키는 길은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늘 깨어 기도해 온 사람은 불시에 찾아온 죽음도 의연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

어느새 대림 시기가 되었습니다. 성탄 준비가 시작된 것입니다. 역사 안에 오셨던 예수님을 현실에서 한 번 더 만나려는노력이 대림 시기의 준비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복음의 내용입니다. 대림 첫 주일에 이 말씀을 들려주는 이유는 무엇일는지요?
대림 시기 동안, ‘지상의 것에 매달리지 않는 훈련을 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해와 달과 별들에 해당될 만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에 변화를 가져가 보라는 말씀입니다. 목숨만큼 소중해도 언젠가는 두고 갈것들입니다. 아무리 붙잡고 싶어도 주님께서 부르시면 두고 가야 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라는 것이 대림 시기의 교훈입니다.
하늘의 힘은 기도와 성사 생활을 통하여 주어집니다. 일상의 기도가 매일 취하는 영적 에너지이며, 그로 인해 내면 세계는 풍요로워집니다. 대림 시기 동안 하루라도 기도를 빠뜨리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은혜로운 성탄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울러, 매일 한 가지씩 선행을 실천한다면, ‘지상의 것에서 그만큼 자유로워짐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기다림을 안고 살아갑니다. 영혼을 깨우는 기다림은 주님께서 주셔야 가능합니다.

 12/2 대림 제1주일 (생명수호주일) 강론

 2013년 사목교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 -신앙의 해-

<자작나무처럼>

-양승국신부-

 인적이 드믄 첩첩산중 오지에서도 환한 얼굴로 서있는 자작나무들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자작나무는 나무껍질로 아주 유명합니다. 탄성이 터져 나올 만큼 하얗고 윤이 나는 수피, 그 껍질은 마치 종이처럼 얇게 벗겨집니다. 해질 무렵 강 건너편에 키 큰 자작나무 군락이 무리지어 서 있는 모습은 장관입니다.
자작나무는 누구나 한번이라도 보면 잊지 못할 매력을 지녔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이 나무를 ‘나의 어머니’라고 부른답니다.
자작나무들은 마치 그 세월이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표정으로 그렇게들 서있었습니다.

전례시기가 돌고 돌아 또다시 기다림의 계절, ‘대림시기’가 돌아왔습니다. 돌아보니 우리는 참으로 많은 기다림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이 어려움이 제발 빨리 좀 물러가줬으면 하는 기다림, 지금 나를 힘들게 하고 있는 이 고통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기다림, 내가 꿈꾸고 있는 목표점에 어서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기다림, 살림살이 좀 나아질 미래의 어느 순간에 대한 기다림...

한 열흘 국제회의에 다녀왔습니다. 낯선 땅, 적응하기 쉽지 않은 음식, 빡빡한 스케줄, 많은 숙제들...제 마음 속에는 어서 빨리 회의가 끝났으면 하는 기다림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네 삶에서 기다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들에게 보다 품격 높은 기다림, 순도 높은 기다림, 수준 높은 기다림을 요구하시리라 저는 믿습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깨우침을 하나 한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묘한 분이십니다. 간절히 염원하고 기다릴 때, 너무나 절박해서 울부짖을 때, 많은 경우 바로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뜸을 좀 들이신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좀 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미칠 것 같은 순간’인데 하느님께서는 즉각적으로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일정한 여백, 공간, 여유를 두시면서 우리의 신앙과 삶, 의지의 정화를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들의 모든 인간적 노력이 다 수포로 돌아가 체념의 밑바닥에 퍼질러 않아있을 때, 내 삶에서 모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버려 더 이상 그 어떤 기쁨도 낙관도 희망도 기대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그 때, 하느님께서 등장하십니다.

인간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구나, 인간은 정말 의지할 대상이 아니로구나, 철저히 깨닫는 순간 하느님께서 다가오십니다. 하느님의 힘이 부서진 내 삶 위로 건너오십니다.
결국 정답은 기다림입니다. 괴로워도 기다려야 합니다. 외로워도 기다려야 합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지라도 기다려야 합니다. 미칠 것 같아도 기다려야 합니다.
길고 긴 기다림만이 하느님의 손길을 몰고 옵니다. 오랜 기다림만이 기적을 낳게 합니다. 끝도 없는 기다림만이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과 축복, 새로운 삶을 불러옵니다.

다시 돌아온 대림시기 자작나무로부터 기다림의 미학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자작나무들은 어떤 한 사람을 기다리는 자세는 꼭 이래야 된다는 듯이 그렇게들 서있습니다.
삶의 비참함도 인생의 비루함도 그저 묵묵히 수용하면서, 때로 불쑥불쑥 표출되는 분노도 그저 담담히 다스리면서 자작나무처럼 그렇게 서 있어 봐야겠습니다


기다림의 자세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 9절에서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는 은총이 충만하기를 기도하며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가운데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대림1주일 입니다. 대림이란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자로 오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한편으로는 이 세상 끝 날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먼저 대림환을 보면서 그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초가 4개 꽂혀 있는 데 이는 4주간을 뜻합니다.

본래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세주 오심을 기다린 세월이 4,000년입니다. 4,000년을 4주간으로 상징화 해서 네 개의 초에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또한 4개의 초는 예수님께서 동서남북 온 세상의 구세주 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둥근 원형은 바로 온 우주를 상징합니다. 바탕을 이루는 녹색은 생명의 푸르름을 나타내고 초의 색깔도 어두운 자색으로 시작해서 점점 밝은 색의 초에 불이 당겨지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가까이 다가 오시는 기쁨을 표현 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우리의 마음도 맑고 또 밝아져야 합니다. 맑고 밝아진다는 것은 우리의 허물을 벗는 것이요, 죄와 악으로부터 벗어남을 말합니다. 오늘 제의 색깔과 초의 색깔이 자색인데 이 색깔은 회개와 보속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을 기다리며 기다림에 걸 맞는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준비는 무엇보다도 거룩함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테살3,13)하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히브리 12,14-15에서는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무도 하느님의 은총을 놓쳐 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 하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으로, 하느님의 숨을 받은 사람이요, 특별히 세례성사를 통해서 거룩한 사람으로 축성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그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삽니다. 그러므로 이번 대림절은 그 거룩함을 회복하는 기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여러분 이 그림이 보이십니까? 많이 보신 그림입니다. 제목을 아시는 분 계십니까? . 그저 좋은 그림이구나 생각만 하신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은 요한 묵시록 3 20절을 묵상하고서 그린 그림입니다. 제목은 세상의 빛 또는 마음의 문, 그리스도 라고 합니다. 성경 내용을 보면 들어라. 내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면 문의 손잡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안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문은 누구도 열 수 없고 본인만이 열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지만 내가 열어드리지 않으면 그분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빛을 주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려고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건만 내가 문을 걸어 잠근 채 열어드리지 않으면 그분의 풍부한 은총을 누릴 수가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특별히 고해성사를 통해 마음의 거룩함을 회복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허물 때문에 실망과 좌절로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둠에 있기 때문에 밝게 비추러 오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의 약속을 믿으며 다가오는 성탄을 철저히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1독서 예레미야서를 보면 보라, 그날이 온다.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주겠다(33,14)고 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약속을 꼭 지키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잊어버리거나 저버리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부르시고 꼭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 1테살4,1)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일상 안에서 철저히 준비하면 종말이 오더라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준비된 사람에게는 종말이 영원한 상급이 주어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이 나타나고,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고 사람들은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루카21,26).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루카21,27)라고 했듯이 두려움과 공포 중에도 준비된 사람은 영광의 모습 안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욕심이 많은 노인이 죽음을 앞두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저는 굉장한 구두쇠입니다. 가난한 이웃을 돕기는커녕 너무 악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정말 천당에 갈 자격도 없는 못난 사람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제발 이 세상에 그대로 살게 해 주십시오! 이런 기도를 하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바로 나 자신입니다.
사실 마음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내가 바뀌면 세상이 아름답고, 모든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내가 바뀌지 않은 채 남이 바뀌기를 바라면 설사 남이 바뀌어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변할 생각을 하지 않고 내 남편, 내 아내가 바뀌기를 바라고 내 자녀가 혹은 부모가 바뀌기를 바라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떤 얘기를 들으면
저 얘기는 내 남편, 내 아내가 들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 저 얘기는 누구를 두고 하는 얘기구나 하면서 자신은 쏙 빼놓고 남의 탓만 하고 있으니 가슴이 아픕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마음의 문은 꼭꼭 닫아 둔 채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분은 제발 남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주님께 내 마음을 변화 시켜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시기를 권합니다.

오늘 복음 끝부분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21,36) 고 하셨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것을 왜 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주님의 마음에 들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사연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많지만 내색도 못하고 살아갑니다.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고달프고 어려울 때가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기도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기도하십시오.
일을 하면서도 주님께 마음을 여십시오.
지금 제가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 시간을 제대로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루를 당신께 드리니 받아주십시오 하고 일하면 그 날 하루의 일이 주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일하면 내일을 하는 것입니다. 똑 같은 일을 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주님의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일에 급급해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기왕이면 주님의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의 인생은 무척 힘이 듭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힘든 게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과 다른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삶에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부끄러워 숨었을 때
너 어디 있느냐?(창세3,9) 찾아 나서시던 분이 우리의 하느님 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하고자 모세를 선택하시고(탈출3)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탈출13,22) 으로 이끄시며 물도 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부르게 먹게 하신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여인이 자기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이사 49,15)하셨습니다.
바로 그 하느님께서 오늘 우리의 처지와 여건 안에서 함께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실망과 좌절에서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니 마음의 문을 열고 그분 품에 안겨야겠습니다.
한 주간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기에 앞서 우리보다 먼저 애타게 기다리며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빛으로 오시는 그분이 우리 마음의 어두움을 환히 비춰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어둠 속에 감추어진 것을 밝혀 내시고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 때에는 각 사람이 하느님께로부터 응분의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1코린 4,5). 그러므로 행복하여라, 그분을 기다리는 이들 모두!(이사30,18). 사랑합니다.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가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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