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일 요한 6,60-69 (나) 영원한 생명의 말씀

2012. 8. 26. 오전 8: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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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21주일  요한 6,60-69 (나)
그때에 60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일시 : 2012. 8. 26일(일) 연중 제21주일 교중미사
강론 : 정 월 기 프란치스코 주임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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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결단은 어디에  

강길웅 신부 
 

제1독서 여호 24,1~2a.15~17.18b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제2독서 에페 5,21~32 (참으로 심오한 진리가 담겨져 있는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복 음 요한 6,60~69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사람은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할 때 선택을 잘못하면 평생 후회하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TV의 어떤 광고에서도 "한 번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대단히 일리있는 말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데에도 종자와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하며 사업을 하는 데에도 역시 업종과 분위기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친구를 사귀고 배우자를 고르는 데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한 번의 선택이 자신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1독서에서 여호수아는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면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선택과 결단의 길을 제시해 줍니다.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도 이미 죽었고 그리고 자기까지 죽었을 때 과연 이 백성이 하느님을 끝까지 섬길 것인가에 대해서 지도자로서 큰 걱정을 안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할 때도 하느님의 속을 수없이 썩여 드렸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정착한 가나안에는 본래 이방인 신을 섬겼던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과 함께 살면서 유혹을 받게 될 이스라엘의 운명을 내다볼 때 걱정이 앞섰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래서 백성 모두를 '세겜' 이라는 곳에 모아 놓고 선택의 길을 제시해 줍니다.   

"만일 야훼를 섬기고 싶지 않거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여러분이 오늘 택하시오."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자기 눈으로 꼭 확인하고 싶었으며 그리고 결판을 내고 싶었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 이외에 이 세상에서 누굴 찾아가겠습니까. 그래도 말을 돌려서 여호수아가 속을 떠보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와 백성들이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우리가 야훼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다니 될 법이나 한 말입니까? 우리는 야훼를 섬기겠습니다." 백성들의 약속을 믿고 여호수아는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말씀과 같은 내용이 오늘 복음에도 나옵니다. 
 
 

'생명의 빵'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당신을 가리켜 '빵'이라고 하면서 그 몸을 먹어야 한다고 하자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면서 질겁을 합니다.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사람을 먹어야 하는지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넌지시 물으셨습니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대답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압니다." 
 
 

베드로는 역시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에게 인간적인 약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예수가 누구라는 것은 아주 분명하고 정확하게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바로 거기에 베드로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인간이 신앙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먼저 믿어야 합니다. 어린이들은 부모의 사랑이나 부모의 가르침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커 봐야 압니다. 부모님이니까 안심하게 믿고 존경하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것입니다. 성체는 진정 그리스도의 몸이요 생명의 빵입니다. 그러나 믿음 없이는 그 위대한 신비를 만나지 못합니다. 
 
만일에 우리가 성체를 들고 “이게 살아 계신 예수님입니다."하고 외인들에게 말하면 그들이 믿겠습니까. 그리고 그걸 먹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하면 세상이 또 알아듣겠습니까. 못 알아듣습니다. 아마 웃으며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이 아니면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신앙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육적인 것은 실로 아무 쓸모가 없으며 영적인 것만이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천 번 만 번 옳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우리의 선택과 결단을 예수님 앞에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자주 속입니다. 속지말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올바른 판단과 신앙의 고백을 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가려거든 가시오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늘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저자는 “당신 말씀이 제 혀에 얼마나 감미롭습니까! 그 말씀 제 입에 꿀보다도 답니다.”(시편119,103)“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119,105)하고 고백했습니다.
한 번 그분을 알면 더없이 큰 갈증을 느끼게 되거늘 미처 알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먼저 알고 그분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나서 알게 되는 것이니 이 시간 믿음을 더해 주시길 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끝없는 선택의 여정을 걷게 됩니다. 무엇을 할까? 성당에 갈까? 밭에 일하러 갈까?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아니면 차라리 돌아 갈까?’음식은 뭘 먹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때가 되면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정이 행복과 불행을 드러내게 됩니다. 오래된 얘기지만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도 있었습니다. 물건을 하나 잘못 고르면 10년 동안 마음고생을 할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우리에게는 매 순간의 선택이 영원한 생명, 구원을 좌우합니다. 고달프고 힘들지만 주님을 택하면 생명이요, 육적인 욕망을 택하면 죽음입니다.

 1독서를 보면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결단을 촉구합니다. “만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너희 눈에 거슬리면,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 아니면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족의 신들이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도 다짐했습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숭배를 멀리하고 주님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구원이 주어졌습니다.

 오늘 복음도 같은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빵 두개, 물고기 다섯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을 행하시고 배를 이용해 한적한 곳으로 떠나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쫓아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쫓아온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하고 속을 콕 찔렀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6,2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하며 영원한 생명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살과 피를 먹는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오히려 냉혹하고 잔인하게 들렸습니다. 그래서 충격을 받고 사람들이 떠나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열두 제자들만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6,68-69)
베드로는 오직 주님만을 선택하고 따르겠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하느님이냐? 세상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의 것과 영원한 것을 동시에 누릴 수는 없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가16,1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선택의 결단은 삶의 매순간 이루어집니다. 오늘도 확실한 선택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어영부영, 우물쭈물, 할까 말까? 망설여서는 안 됩니다.
더군다나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묵시록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버리겠다.”(3,15-16)
그런 의미에서 미사참례에 함께하신 여러분은 하느님을 택하셨으니 복됩니다. 행복하십니다.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길을 물었습니다. “이 길은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길이 어딜 가다니요? 길은 여기 있고 당신이 어디론가 가고 있지 않소?”길은 이미 있고 그 길을 우리가 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구원의 길이 열려있습니다. 그리고 영생의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천상,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집이기 때문에 가야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그 집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그 길이 험하고 굴곡이 있어도 목적지에 닿아있다면 묵묵히 가야합니다.
아무리 멋있고 아름다운 길이라도 목적지에 연결되지 않았다면 가던 길을 멈춰야 합니다.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능력을 체험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자세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수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하셨지만 많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거북해 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근심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누가 믿음이 있고 누가 믿음이 없는지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오셔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하셨다면 우리도 매우 당황했을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떠난다고 나도 떠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다수가 옳다고 해서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남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친구 따라 강남가지 말며 매 순간 하느님과의 관계를 잘 지키는 용기 있는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은 착각합니다. 알고 나서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지식의 검증일 뿐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이 ‘그렇다’고 하면 일단 선생님을 신뢰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를 알게 됩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먼저 알고 싶어 한다면, 우리는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게 됩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 했을 때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습니다. 따름으로써 알게 되었고, 그 믿음을 견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믿어야 합니다. 믿음에 능력이 따르고 치유가 따르며 위안도 평화도 기쁨도 함께 합니다. 그러나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은총은 이미 주어졌고 역사하고 있으며 앞으로 열매를 맺게 될 것이지만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결단을 내리십시오. 떠나든지, 주님 안에 머물던지….. 가려거든 가시오!

 성 안나 할머니를 기억합니다. 눈이 나빠서 고생을 하셨지만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눈이 더 나빠지면 성경을 읽을 수 없다고 하시며 틈만 나면 성당에 오셔서 큰 소리로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영적인 눈과 함께 육적인 눈도 밝아졌습니다. 놀라운 역사입니다. 주님 말씀을 갈망한 믿음이 그의 눈을 뜨게 하였습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 주님은 언제나 역사하시고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으십시오. 주님의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하느님 앞에 있는 나’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소크라 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습니다.
수학선생님이 말한다면 ‘네 분수를 알아라’고 했을 것입니다.
국어선생님께서 말하면 ‘네 주제를 알라’
그리고 지리 선생님은 ‘네 자리를 알라’ 고 하십니다.
미술 선생님은 ‘네 꼬라지를 알라’ 고 했을 것이랍니다.

나는 과연 믿음의 사람인가? 주님의 사람인가? 생각하는 가운데 주님의 은혜를 입길 바랍니다.
내가 바라는 주님을 만들지 말고, 그분의 마음에 드는 나를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떠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저에게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시오. 저는 저의 뜻을 버리고 당신의 뜻에 저의 뜻을 맞추겠습니다.”(성 알퐁소)  사랑합니다.




 


자기 머리를 보석이라고 자랑하지 말라.

누가 떼어가면 어쩌나.


자기 머리를 돌이라 비관하지 말라.

갈고 다듬어 수석으로 만들면 되니까.

 
아름답고 귀한 보석을 탐내지 말고

자신이 보석이 되려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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