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일 /살아 있는 빵이다(요한 6,41-51)

2012. 8. 12. 오전 9:08:06

글자
연중 제19주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요한 6,41-51




말씀의 초대 
엘리야는 낙담과 피로에 지쳐 차라리 죽기를 간청한다.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시키시어 그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 엘리야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 계약의 산 호렙에 도착한다(제1독서 열상 19,4-8).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은 성령을 슬프게 한다.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서로 용서하며 사랑 안에서 살아가라고 권고한다(제2독서 에페 4,30─5,2).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신다. 생명의 빵인 예수님의 몸을 먹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린다. 예수님의 몸 안에는 사람을 살리는 무한한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6,41-51).

오늘의 묵상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사막을 유랑하던 시절 굶주림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 불평하며 떠나온 이집트 생활을 그리워하였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만나를 내려 주시어 그들의 배를 채워 주셨습니다. 유다인들은 사막을 헤매면서 만나로 배고픔을 달랜 옛 시절을 잊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사막에서 먹었던 만나와 당신 자신을 비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배고픔을 달래 주는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만나를 먹은 이스라엘 백성은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인 당신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주장은 유다인들을 무척 자극하게 됩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빵의 기적으로 많은 군중을 먹이신 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빵의 기적을 표징으로 보지 않고 육신의 굶주린 배를 채운 것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순전히 물질적인 차원으로만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육신의 배고픔이 채워지면 그것을 구원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이러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시려고 하셨지만 그들은 귀를 막았습니다.
지상의 양식에만 관심을 두면 하느님의 생명과 단절됩니다. 유한한 것의 노예로 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천상의 양식을 바라고 그것을 먹고 살면 비록 유한한 시간 속에서 살더라도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생명을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허무하게 살아갈 수도 있고, 영원히 살 수도 있습니다. 허무와 영원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매일 마지막 미사처럼>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함께 살아가는 예비 수사님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 교육하는 것 한가지가 있습니다.
저도 잘 안되면서 자주 강조하다보니 때로 속보이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우리 살레시오 회원들은 하루 온 종일 아이들 사이에서 숨 가쁘게 움직여야 하는 활동수도자들입니다. 영성생활에서 특별한 그 무엇을 찾지 마십시오. 짜릿한 그 무엇도 기대하지 마십시오.   대신 매일 봉헌하는 성체성사 안에 들어있는 값진 보화를 찾으십시오. 미사 때 제발 졸지 마십시오. 금쪽같은 시간 제발 허송세월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해서든 깨어있으십시오. 집중하고 몰입하십시오. 몸과 마음, 눈과 귀, 외적 태도 등 모든 기능을 총동원해서 미사에 푹 잠겨 드십시오. 미사의 동작 하나 하나, 경문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의미에 온 신경을 집중하십시오.

매일의 성체성사야말로 기적 중 기적이요, 표징 중 표징입니다. 매일 되풀이되는 이 성사는 우리를 순간순간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할 것입니다. 미사는 매일 우리에게 공급할 하늘에서 내려오는 영원한 생명의 빵을 굽는 가장 은혜로운 도구입니다. 
 매일의 미사, 그것보다 더 큰 은총은 없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매일 되풀이되는 홍해의 기적을 체험해야 합니다. 죄와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로 건너가는 파스카 신비를 온몸으로 느껴야 합니다.

 부디 타성에 젖은 얼굴로, 귀찮은 얼굴로, 짜증나는 얼굴로, 그저 주어진 의무이니 온다는 얼굴로 미사에 오지 마십시오. 하느님을 만나는 은총의 순간인 만큼 최대한 기쁜 얼굴로,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감사와 감동의 마음으로, 깨어있는 자세로 미사에 오십시오." 
   주님께서 바라시는 영적생활,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기쁜 마음으로 성체성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영원한 생명의 빵을 모시는 것입니다. 
 때로 마음의 어둠이나 슬픔, 나약함, 방종한 습관 등으로 괴로울 때도 있겠지요. 그럴 때 더욱 생명의 빵인 성체가 필요합니다.

  모든 어두운 감정들을 감추지 말고 솔직히 그분께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로 나아가는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분, 우리가 믿는 바대로 우리를 짐스럽게 했던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매일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언젠가 병세가 꽤 위중한 환자에게 병자성사를 거행하려 한 병실을 찾았습니다. 그날따라 교통체증이 무척 심했고, 또 길을 잘못 찾아 헤매다가 많이 늦었지요. 뿐만 아니라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어서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속전속결로 병자성사를 집전했습니다. 그리고 재빠르게 영성체 예식을 거행했습니다.

 엄청 바쁘고 여유 없는, 그래서 무척 성의 없어 보이는 저에 비해 환자 모습은 정말 진지했습니다. 엄숙하다 못해 거룩해보였습니다. 마치 수억원이나 나가는 진귀한 보물이라도 받듯이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정성껏 성체를 손에 받으십니다.
그리고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예식을 행하듯이 진지하게 성체를 영하셨습니다. 이어서 눈을 감고 깊은 침묵과 함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일분, 이분, 삼분, 사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대충 성사를 거행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맞아, 내게 부족한 것이 바로 저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정성, 마음, 진지함이 결여된 미사, 부끄럽게 드린 지난 미사들이 떠올라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침묵 가운데 진심으로 그 환자를 위해, 그리고 부족한 저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매일 우리의 밥이 돼 오시는 주님, 당신 성체를 통해 매일 우리를 구원하시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기적을 찾아, 특별한 그 무엇을 찾아 이곳 저곳 기웃거리지만 사실 매일 거행되는 사랑의 성체성사 보다 더 큰 기적은 없음을 우리가 알게 하십시오.

  우리 부족한 죄인들을 향한 극진한 사랑이 되풀이되는 매일의 성체성사를 그저 해치워야만 하는 숙제처럼 여기는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우리가 매일 드리는 미사가 마치 마지막 미사이듯 정성을 다하게 도와주십시오. 매일 봉헌되는 미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가장 큰 선물임을 알게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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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변해야 합니다.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영양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십니다. 따라서 주님의 몸을 제대로 모심으로써 생기 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양식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아들이고 그분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은총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다인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예수를 너무도 뻔히 아는데 어찌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하는가? 아버지는 요셉, 그 어머니는 마리아이거늘 당치도 않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예수님과 주변 사람들을 잘 안다고 생각한 선입견, 편견과 고정관념의 자기 틀이 문제 입니다. 내 것으로 가득 차서 다른 것이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아는 것으로 예수님을 판단해 버렸기 때문에 결국은 은총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굴러온 복을 차버린 것입니다. 섣불리 아는 게 병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에 대해서 이러 저러한 분으로 생각하고 또 예수님이라면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내가 만든 예수님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내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나에게 꿰맞추려 한다면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인 내가 그분의 뜻을 따라야지 그분이 나에게 맞춰주시길 바라는 것은 생떼를 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바라는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바라는 나’를 가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하늘을 향한 열린 마음이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에 은총을 더해 주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교만한 사람에게 은총을 더해 주면 그로 인해 주님이 가려지고 그의 헛바람만 커지게 됩니다. 교만은 천사를 악마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 주장과 소신의 판단이 혹 잘못된 판단이 아닌지 살펴봐야 하고 참으로 주님께서 나의 앞길을 인도해 주시길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끌어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생명의 빵’이요, ‘내가 줄 빵은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빵을 미사 안에서 영성체를 통하여 먹습니다. 영성체때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나에게 주시고 나의 소유가 되십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영성체보다 더 깊고 더 완전한 사랑의 일치는 있을 수 없습니다.”

뜨거운 사랑으로 영성체를 원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은 성체를 모실 때 눈물이 나도록 감사하고 가슴 벅차오릅니다. 그럼에도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받아 모시기 일쑤입니다. 예수님을 받아 모시고 내가 예수님으로 변화되기 보다는 모시지 않으면 찜찜해서 모실 때가 많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양식을 받아 모셔도 효과가 없는 것은 하느님을 직접 모신다는 중대한 사실에 별로 주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성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고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까닭입니다. “접목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두 나무가 비슷할수록 접목이 더 잘됩니다. 마찬가지로 영성체에 임하는 사람과 예수님 사이에 더 많은 유사성이 있을수록 영성체의 결실도 더 좋은 것입니다.”(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그리고 고해성사야말로 영혼과 예수님과의 유사성을 회복시켜주는 매우 훌륭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고해성사로 잘 준비하여 성체를 모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내가 변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게 허물이 많으니 주님께서 몸소 오셔서 나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지 내가 그분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모시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나의 삶을 주관 하셔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서로 용서하며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우리는 이미 영성체를 통하여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그리스도처럼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어느 날 한 신부님의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연히 교회 홍보물을 보게 되었는데 자기 친구가 유명한 신부가 되어있어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 괴짜 친구가 신부가 되리라고는 감히 생각을 못했답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별수 있겠나! 옛 행실을 보면 지금도 그가 신부가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보십시오. 예수님 때문에 사람 됐다고! 성경의 아브라함, 모세, 다윗, 베드로, 바오로, 혁명당원 시몬, 세리 마태오 그 밖의 많은 인물들이 허물을 안고 살았고 그 허물이 오히려 하느님을 갈망하게 했고 새사람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옛날에 한 짓이 못됐고 가관이라 해도 새 사람이 된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과거에 대한 기억, 선입견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고향에서는 환영 받지 못하셨고 오늘날 신부도 출신 본당으로는 발령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어 새사람이 되었다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의 삶이 변했다면 그것이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끌어 주셔서 하느님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면 그것은 기뻐하고 축하할 일입니다. 주님을 믿는 이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비젼을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은총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입니까? 단순한 사람입니다. 계산하지 않고 소위 잔 머리 굴리지 않으며 주님의 말씀대로 순수하게 따라 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순명하는 사람입니다. 신부님 강론을 들었다면 바보처럼 그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놀랍게 성장합니다. 내 주관, 내 노선, 내 지식, 내 색깔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자칫 똥고집이 될 수 있고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실패하기 쉽습니다.

진리 자체이신 주님을 내 잣대로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의 잣대로 나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내 노선을 수정해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던 바를 바꾸지 않고 그것이 다 인양 머물면 주님의 넘치는 은총에도 불구하고 성장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내가 변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수군거리지 마라’하신 말씀을 새겨들으시기 바랍니다. ‘수군거리지 말고 새로나라’는 말씀입니다.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이‘너희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고집이 센 민족이다.’,‘마음이 완고한 백성이다.’라는 말로 혼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사실 가정 안에서도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그리고 부모가 자식에게, 자녀가 부모님께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지닌 틀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색깔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가끔은 분위기 있는 음식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남편은 돈 낭비하면서 왜 그런 곳을 가느냐? 된장찌개가 좋다고 합니다. ‘당신은 이래서 안 돼!’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자녀에게도 먼저 들어주기보다는 내 생각을 강요하고 주입시키려합니다.

자녀들도 ‘우리 부모님은 이래서 안 통해!’하고 마음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다 인양 서로를 판단하고 그래서 입을 다물어요. 그래서 결국은 서로를 모르는 채 시간이 흘러가고‘저 사람은 왜 저래!’,‘저 놈은 하는 짓이 왜 그래!’하는 마음이 커갑니다. 모두가 똑똑하니 모두가 선생입니다. 그러나 선생이 되려는 것이 병입니다.

오늘은 그러한 내 생각을 바꿔보시기 바랍니다.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상대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하신 예수님을 부정적으로 봤기에 은총에 장애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상대를 부정적인 눈으로 봄으로써 성장에 장애를 가져와서는 안 되겠습니다. 색안경을 끼면 안경의 색깔에 따라 달라 보입니다. 남을 바라볼 때 우리 마음이 색깔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천국이요, 사랑이 없으면 지옥입니다. 소위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다가 아니니 만큼 내가 지닌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을 주님의 잣대에 견주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잣대가 아니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가운데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혹 ‘내가 너 때문에 못살아!’하는 마음이 있다면 오늘 만큼은‘내가 너 때문에 산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예수님을 믿는 너 때문에 내가 산다.’주님, 제가 주님 덕분에 삽니다. 사랑합니다.


                  

                               
 

-하느님 헷갈리게 하지 마세요-


어떤 부자 한 사람이 성당에 와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사업이 꼭 성공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남루한 옷을 걸친 청년 한명이
성당으로 들어오더니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오늘 10만원을 벌게 해 주십시오.
제가 오늘 일자리를 얻어 10만원을 꼭 벌게 해 주십시오.
10만원이 꼭 필요합니다."

이 기도 소리를 들은 부자가 그 청년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내가 10만원을 줄 테니
그분이 딴 데 신경
쓰지 않도록 가만히 놔 드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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