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부활 제5주일(생명 주일)]
5월의 첫 주일인 오늘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의 위험성을 깨우치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참된 가치를 되새기는 ‘생명 주일’이다. 한국 교회는 1995년부터 해마다 5월 마지막 주일을 ‘생명의 날’로 지내 왔는데, 주교회의 2011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 이를 ‘생명 주일’로 바꾸고 5월 첫 주일로 옮겼다. 이는 교회가 이 땅에 더욱 적극적으로 ‘생명의 문화’를 건설해 나가자는 데 뜻이 있다.
오늘은 생명 주일이므로 ‘생명 운동 기도문’을 바친다.
생명 운동 기도문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저희가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게 하소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저희가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게 하소서.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요한15,1-8)
![]()
오늘의 묵상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열매를 맺지만, 떨어져 나간 가지는 말라 버린다.’ 포도나무의 비유의 핵심은 이 말씀에 있습니다. 어떤 삶이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 것인지요?
사는 것이 불안하기에 ‘신비스러운 힘’을 찾습니다. 굿을 하고 부적을 지니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시도하려 애씁니다.
조상의 묘를 탓하는 이도 있습니다. 터가 좋으면 복이 오고, 터가 나쁘면 화가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멀쩡한 묘를 옮기기도 합니다. 이 땅에 사는 자체가 좋은 터와 나쁜 터를 함께 밟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하는 행동입니다. 사람의 앞날은 하느님께 속해 있습니다. 평범한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불안을 극복하는 첫걸음입니다.
모든 나무는 뿌리에서 오는 ‘생명의 물’을 받아야 자랍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생명의 은총’을 받아야 건강한 삶이 됩니다. 보이지 않는 요행에 매달리면 불안은 곁에 있기 마련입니다. 잘려 나간 가지는 ‘뿌리의 힘’을 흡수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이 기쁨보다 구속으로 느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원인은 포도나무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는 겨울이 지나면 포도나무에서 죽은 가지를 잘라 불에 태웁니다. 그리고 열매가 많이 맺을 수 있도록 소용없는 가지들을 쳐 냅니다. 이때 잘린 가지에서 수액이 몇 방울 흘러내리는데 이를 포도나무가 눈물을 흘린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포도나무라고 소개하시면서 가지들이 당신 안에 머물기를 바라십니다. 가지가 살아 열매를 맺으려면 포도나무인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조건은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는 제자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이를 깨닫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하고 고백하였습니다.
가지들이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은 그 나무를 풍요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무로부터 생명을 이어받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안에 머물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은 결국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마련하신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구원의 열매를 맺으려면 이기심, 욕심, 교만 등과 같은 필요 없는 가지들을 쳐 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사랑의 포도가 주렁주렁 열릴 것입니다.
많은 열매를 맺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이다
- 허영엽 신부-
저는 이번에 아버지와 화해했습니다. 지난 15년간 잘 때도 아버지 방 쪽으로 누어서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아버지가 미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돌같이 굳었던 마음이 성경공부를 통해 살같이 부드럽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평생 받았을 내적인 고뇌와 고통, 외로움에 대해서도 눈이 떠졌습니다.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아버지의 속내는 한없이 약하고 외롭고 불쌍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항상 눈물이 흐릅니다. 이 모든 변화가 하느님께서 해 주신 것이 맞죠? 신부님.”
얼마 전 주말에 ‘청년 성서 모임’ 연수를 지도했는데, 그 중 연수에 참석했던 한 젊은이가 저에게 보낸 메일의 내용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간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만큼 더 큰 기적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바쁜 시간을 내서 열심히 성경공부와 기도, 봉사에 열중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는 젊은이들과 함께 근 십여 년 성서연수를 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이 힘있게 살아 움직이는 현장을 체험했습니다. 젊은이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는 것은 사제인 저에게도 큰 축복이고 행운이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5).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포도나무로, 신앙인들은 가지로 비유하십니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더할 수 없는 밀접한 생명의 관계입니다. 이처럼 신앙인들은 생명을 보존하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최후의 만찬 후에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고별의 말씀은 그분의 비장한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그렇습니다. 신앙인들은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야만 열매를 맺게 됩니다.
포도나무인 주님에게 가지처럼 붙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신앙인들이 주님의 말씀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의 말씀을 생활의 지표로 삼아 말씀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의 실천은 당연히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23). 이렇게 생활 속에서 우리가 맺는 성령의 열매로 세상은 우리 안에 주님이 살아 계심을 보게 됩니다. “주님! 우리가 세상 안에서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어서 하느님께 영광이 되게 하소서.”
내 안에 머물러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 안에 머물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이미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머무십니다. 이 시간 주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는 은총이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어두울 땐 안 보이는 것들이 불을 켜면 나타납니다. 눈 감았을 땐 안 보이던 것들이 눈을 뜨면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마음 없을 땐 안 보이던 것들이 마음을 두면 나타납니다. 사실 없는 것도 마음 두면 나타나고, 있는 것도 마음을 없애니 사라집니다. 마음을 두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너무도 다릅니다. 마음 두는 것에는 시간도 거리도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지고 아무리 오래 되어도 마음을 두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사실 마음에 두면 눈을 감아도 보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두고 있나요? 아내, 남편, 아니면 자식, 부모? 재물, 명예...“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습니다.”마음 둘 자리를 잘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2,5) 오늘은 어버이께 마음을 두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곧 어버이 날이잖아요! 하늘 아버지와 성모님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머물다’ 는 것이 핵심입니다. 결국 서로에게 마음을 둔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두어 그가 바라는 것, 기뻐하는 것을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2독서의 표현을 빌면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3,24). 그리고 마침내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에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요한15,7)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그러나 그분 안에 머물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아내 된 사람은 남편에게 마음을 두고, 남편 된 사람은 아내에게 마음을 두어야 ‘이심전심’, 마음이 통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화목합니다. 그러나 동상이몽도 있으니 걱정입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서로에게 지킬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 부부로써 신의를 지키는 것, 스승에 대한 존경, 그리고 제자에 대한 사랑을 지키는 것이 일상 안에서의 계명입니다. 이것을 지킬 때 주님으로부터 더 큰 복을 얻게 되고, 청하는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신 말씀은 달리 말하면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이 청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모님을 ‘은총을 가득히 받은 복된 어머니’라고 칭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복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엘리자벳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령 복되십니다.” “믿으셨기에 복되신 분!”하고 말합니다. 성모님께서는 믿으셨기 때문에 복되십니다. 우리도 먼저 믿음으로 주님 안에 머물러야 하고, 믿음으로 청해야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하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그분 말씀을 가슴에 품고 그대로 행하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간직하며 사는 것입니다.
어느 통계를 보니까 남자는 가장 이상적인 배우자로 ‘친구 같은 아내’, ‘현모양처’형을 선호하고, 여자는 가장 이상적인 배우자로 ‘가정적인 남편’, ‘카운셀러 남편’을 꼽았습니다. 그리고 남편 된 사람이 듣고싶어 하는 소리는 ‘당신을 믿어요!’ 이고, 아내 된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소리는 ‘당신 너무 힘들지?’ 랍니다. 다시 태어나도 현재의 배우자를 선택하겠느냐? 는 질문에 남성은 71.5%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여성은 50.4%만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부부 불화가 생기는 원인으로는 남편과 아내 모두 서로의 일로 가정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 이라는 답이 45%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탓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부부도 서로의 관심이 다릅니다. 이 다름 안에서 하나가 되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을 가슴에 모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으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항상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한 생애를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예수님 곁에 서 계셨던 성모님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고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무에서 가지가 영양을 공급 받는 것이지, 가지가 나무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열매는 가지에 달리지만 가지가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제자들 속에 주님께서 함께한 것은, 제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함께 하는 것과 달랐습니다. 그야말로 주님께는 이득도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가지 하나를 잘라버린다면 여전히 그 포도나무에서 다른 가지가 돋아날 것입니다. 스승은 제자를 버리지 못하지만 제자는 스승을 등지고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려진 가지는 뿌리에서 분리되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가지는 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 없이 가지는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님 안에 머물지 않으면 결코 주님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혹 무엇인가에 성공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주님과의 일치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내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 머물러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사실 주님을 믿는 이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천상의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6,31-34).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고달픔만 더하고 좋은 열매를 못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 안에 머무르지 못하고 내 뜻을 먼저 찾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무엇이든 청하여라.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말씀에는 관심이 있지만, 바로 그 앞부분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하는 말씀을 간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이 먼저입니다.
오늘은 주님 안에 머물러 꼭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 안에서 일터에서 주님 안에 머물러 기쁨을 누리시길 빕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 머물지 못한 일은 헛수고임을 일찍 깨우쳤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남편이, 자기 아내가 다른 사람인줄 알고 좋아진답니다.
서로 끝까지 사랑 안에, 항구하게 주님 안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항구하게 주님 안에 머물 수 있음이 행복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