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5일 연중 제5주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 없음)
불확실한 전설이지만 성녀 아가타는 시칠리아 섬의 카타니아 혹은 팔레르모(Palermo)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신심이 깊어 하느님께 스스로 정결을 서원하였다고 한다.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기간에 그 지방의 집정관이던 퀸티아누스(Quintinianus)가 그녀를 탐해 그녀를 소유하려는 계략으로 박해를 이용하였다.
그녀가 그의 제안을 거절하자 퀸티아누스는 온갖 무자비한 고문을 가하고 그녀를 매음굴로 보냈으며, 그녀의 가슴을 도려내고, 죽을 때까지 이글거리는 석탄불에 돌리면서 구워 죽였다고 전해온다.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나오시어, 29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마르코 1장 29-39절)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하루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시어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셨습니다.
저녁에는 병든 이들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습니다. 다음 날 새벽,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시어 외딴곳으로 가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시러 또 다른 동네를 찾아가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루의 모든 시간을 남의 사정을 헤아리시고 남의 행복을 위해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겪는 불행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넘어진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서 살아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행복합니까? 우리는 삶에서 보람을 느낄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섭취하는 음식물이 물질적인 필수품이라면 인간이 느끼는 보람은 정신과 영혼에 필수 영양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이 많고, 권력을 가졌다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이라도 남을 위해서 할 때 우리는 보람을 느끼고 거기에서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웃을 돕고, 남을 위해 살아가는 그 자리에 하느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불행한 사람들, 여러 가지 어려움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만 행복하면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행복한 그만큼 내 주변의 불행한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우리가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면 주님께서도 그 문으로 들어오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열린 마음의 문으로 들어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를 찾아가십니다. 앓고 있던 그녀를 치유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서 소식을 듣고 찾아온 많은 병자를 낫게 하십니다. 정말로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을까요? 그렇습니다. 정말로 고쳐 주셨습니다. 당신께 그런 능력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은 믿음을 통해 병이 나았음을 이야기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증언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개신교 신자들이 많이 했지만, 지금은 성당에서도 그런 증언들을 듣습니다. 그들의 말이 사실일는지요? 정말로 그들은 병이 나았을까요?
정말로 병이 나았을 것입니다. 물론 거짓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믿음 안에서 병이 낫는다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성경에 등장하시는 예수님과 성체의 예수님은 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예수님께서 병을 낫게 하셨다면, ‘성체의 예수님’께서도 병을 낫게 하실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렀다고 그분의 치유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유를 통해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셨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질병도 주님 앞에선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가르침을 잊어버리고 ‘치유 자체’에만 매달린다면, 진정 어리석은 행위가 됩니다. 치유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자 이 마을 저 마을로 부지런히 다니십니다. 또한 그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할 수 있도록 곳곳을 두루 다니시며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악령을 쫓아내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예수님처럼 자신의 일상생활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가운데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어서 도래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입장은 사람에 따라 다양합니다. 비관적인 사람도 있고 낙관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삶이 힘든 역경으로 점철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입장이든, 어떤 삶이든 그 목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사는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 바오로 사도는 복음 선포를 자신의 삶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사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겠습니까?
연중 5주일(마르1,29-39; 욥기7,1-4.6-7; 1코린9,16-19.22-23)

사랑의 묘약
반영억라파엘신부
예수님은 어느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살리고자 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가운데 은총을 입으시길 바랍니다.
또한 병이 깊거나 길어지면, 신앙마저 흔들리게 됩니다. 큰 병이나 긴 병을 앓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하늘을 향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라고 한탄과 원망을 하게 됩니다.
정신불안과 소화불량,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쓰리고 울렁거리는 등 여러 반응이 일어납니다. 여성암 환자 85%가 홧병이라는 통계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마음에 쌓인 것을 풀지 못하면, 비우지 못하면 정신적 장애는 물론 육체적인 장애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응어리를 풀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용서와 화해를 이뤄야 낫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엄격한 부모 밑에서 늘 통제 받고 살았기 때문에 자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서 자랐어요.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남을 지배하고 과시하려는 모습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자기를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앓고 있는 열병입니다.
능력을 지니신 주님, 봉사 받으러 오지 않으시고 사하러 오신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면서도 못 박는 원수들을 용서하시고 아버지 하느님께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겉모양을 다스리지 않고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써 근원을 치유해 주시는 주님을 만나게 되면 시련과 역경 안에서도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시몬의 장모는 예수님께서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손을 잡아주시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우리도 화가 치밀 때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시기, 질투, 미움, 분노가 생길 때 어머니를 부르십시오.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실까요? 모든 것을 품어라, 용서와 화해, 자비를 베풀라고 하십니다.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인근 마을로 널리 퍼졌습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만하거나 인기에 연연해하지 않으시고 이른 새벽 홀로 외딴 곳을 찾아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 능력의 원천인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공을 돌리고 그분께 의지하십니다. 그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 하신 행동이 외딴 곳을 찾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인정해 주고 알아주는 추종자들 곁에 머물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것들에 연연해하지 않으시고 다른 곳으로 떠나십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이웃 고을 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마르 1,39).
중요한 것은 명성이 아니라 자신이 이루어야 할 하느님 아버지의 계획, 즉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 캄캄할 때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신 까닭입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삶이 곧 우리의 삶이기를 기도해야 하고 또 행함으로써 그분과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곳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때를 알고 일어서서 모두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시길 바라며 그것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늘 일치해야 가능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물위를 걸어가신 기적을 보여 주시기 전에도 산 위에 올라가 기도하셨고(마르6,46), 수난을 앞두고 게쎄마니에서 공포와 번민에 싸여서 간절히 기도하며 아버지의 뜻을 찾으셨습니다(마르14,32-39).
그리고 제자들을 불러 사도로 삼을 때에도 먼저 산에 들어가 밤을 새워 하느님께 기도하셨습니다(루가6,12).
그야말로 바오로는 예수님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해 다른 고을을 찾으셨듯이 바오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스스로 종이 되고, 약한 사람이 되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이 또한 기도하며 자신의 소명을 확인한 결과입니다.
언젠가 드렸던 말씀입니다. 스승님이 평생 아끼던 책 한 권이 있었습니다. 스승님은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방문을 꼭 걸어 잠근 채 그 책을 읽곤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책의 내용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스승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제일 먼저 그 책을 꺼내 봤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책엔 이렇게 단 한 줄만 씌어 있었습니다.
-고준석신부-
사람이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해 주고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사랑한다고 수백 번 고백하는 것보다 고통스러울 때 함께 있어 주는 것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가장 커다란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고통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고통을 진정으로 알아주고 들어주지 못한다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의 고통은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고통의 소리를 들어주고 이해해 주기만 한다면 바로 그 순간에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고통의 무게가 말끔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치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시몬의 장모가 무슨 병인지 복음서는 명확히 밝히지않습니다. 단순히 열병이라고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서는 병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몬의 장모는 어떤 사정이 있었을까요?
오늘 제1독서의 욥기의 내용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 그렇게 나도 허망한 달들을 물려받고,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 누우면 언제나 일어나려나? 생각하지만, 저녁은 깊어지고 새벽까지 뒤척거리기만 한다네. 나의 나날은…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구려.” 삶의 고통과 좌절, 시련과 고뇌, 허무로 인해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내용입니다. 어쩌면 시몬의 장모도 욥과 같은 상황일 수 있습니다.
결혼해 시댁 식구를 모시거나 관계하면서 겪는 수모, 자신을 전혀 알아주지 않고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남편, 손안에 자식이건만 때때로 자신을 무시하고 대드는 자식들, 더욱이 사위 집에 얹혀살아 눈칫밥 먹는 신세 등, 그야말로 삶의 고해를 감당하기 힘들기에 온몸에 열이 나고 무기력해지는 열병(화병)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에게 다가가시어 아무 말씀없이 그저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오로지 따스한 사랑의 손길과 이해의 눈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 순간 그부인 안에 쌓여 있던 온갖 슬픔과 고통이 눈 녹듯이 사라지며 여인을 괴롭히던 열도 흔적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이제 여인은 일어나 정성스레 예수님과 그의 집에 찾아온 손님을 맞이합니다.
그렇습니다.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 최고의 약은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간절히 듣고싶은 말은 “당신이 고통당하고 있음을 저는 알아요. 그리고 당신이 고통당하는 것처럼 저에게 가슴 아픈 일은없어요.”라는 속삭임입니다. 그러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나의 모든 고통, 아픔, 슬픔을 두 아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그분께서는 나의 손을 잡아주십니다.
연중 제5주일 서울대교구 주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