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구정) 명절 미사 (루카12,35-40)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축복을 빌어주는 사람
반영억라파엘신부
구정 명절을 맞이하여 우리 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모든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천상복락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아울러 여러분 모두가 하느님의 풍성한 복을 풍성히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하시는 일마다 잘되시길 기도합니다. “만사형통하십시오!”
설은 본디 신일(愼日) 이라고 하여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데에 근신하고 조심하는 마음이 우선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이날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며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합니다. 부모님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설빔을 해 주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큰절을 받고 세뱃돈을 주며 가정의 화목과 평화, 부와 안녕을 기원하였습니다.
조선의 학자 이율곡 선생은 “제사의 예는 자식이 되어서 가장 정성을 다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미 돌아가신 어버이를 다시는 봉양할 수 없으므로, 만약 상사에 그 예를 다하지 않고, 제사에 그 예를 다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 애통함이 덜어질 때가 없을 것이니, 자식으로 어찌해야 하겠는가?”하였습니다. 앞서가신 조상, 부모를 생각할 때 그만큼 정성과 사랑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미사 봉헌 안에서도 그만한 사랑을 담아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기억하는 모든 분들을 맡겨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영혼불멸과 육신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의 잘못에 대한 보속을 다하지 못했을 경우 연옥 단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더욱 소중합니다. 세상을 떠난 우리의 조상과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그들의 천상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성인 통공교리입니다.
오늘 우리의 정성과 사랑, 희생봉헌으로 이 세상에서 받지 못한 위로와 평안을 모든 것의 근원이신 하느님 곁에서 영원히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주님을 모르고 세상을 떠난 조상들이라 하더라도 자녀들의 효성 지극한 정성을 보시어 생전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하루빨리 천상의 잔치에 초대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의 정성과 사랑, 희생봉헌으로 이 세상에서 받지 못한 위로와 평안을 모든 것의 근원이신 하느님 곁에서 영원히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주님을 모르고 세상을 떠난 조상들이라 하더라도 자녀들의 효성 지극한 정성을 보시어 생전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하루빨리 천상의 잔치에 초대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또한 돌아가신 부모, 친척 조상 못지않게 살아계신 부모, 어르신께 효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식의 공경이 아무리 지나치다 하더라도 어버이의 사랑에는 못 미친다.”고 하였습니다. 부모 살아계셔서 자식된 도리를 하며 효도 했을 때, 돌아가시고 나서의 제사도 정성스런 제사가 될 것입니다.
‘살아생전의 술 한 잔이 수북한 제사상보다 더 값지다.’는 것을 알고 생전에 부모님께 잘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명절 때 서로에게 미운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식의 공경이 아무리 지나치다 하더라도 어버이의 사랑에는 못 미친다.”고 하였습니다. 부모 살아계셔서 자식된 도리를 하며 효도 했을 때, 돌아가시고 나서의 제사도 정성스런 제사가 될 것입니다.
‘살아생전의 술 한 잔이 수북한 제사상보다 더 값지다.’는 것을 알고 생전에 부모님께 잘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명절 때 서로에게 미운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명절에 미움 받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겠습니다.
1). 가깝게 살면서 늦게 오는 동서.
2). 형편 어렵다며 빈손으로 와서는 이것저것 싸 가는 동서.
3). 한 시간이라도 빨리 가서 쉬고 싶은데 눈치 없이
고스톱만 치고 있는 남편.
4). 술 취했으면서 안 취했다고 우기며 가는 손님 붙잡는 남편.
5). 시댁은 바로 갔다 오면서 친정에 일찍 와서 참견하는 시누이.
6). 며느리 친정 안 보내면서 시집간 딸은 빨리 오라고 하는 시어머니
7). 시댁에는 20만원, 처가에는 10만원으로 차별하는 남편.
8). 늦게 와서는 아직도 일하고 있느냐며 큰소리치는 형님.
9). 집에 가려고 준비 다 했는데 ‘한 잔 더 하자.’며
술상 봐오라는 시 아버지.
술상 봐오라는 시 아버지.
이밖에도 듣기 싫어하는 말 많습니다.
아직도 취업 못했어? 누구누구는 좋은 회사 들어갔다는데...
결혼은 언제 할래? 애인은 있어? 돈 많이 벌어놨어?
설 보너스 받았어? 회사가 어디야? 유명해. 등등....
아무쪼록 가족들이 모인만큼 서로에게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를 통해 덕을 입기보다 복을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의 복이 되리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옆에 분에게 인사하겠습니다. “제가 당신의 복이 되겠습니다.”
“내가 너의 복이 되리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옆에 분에게 인사하겠습니다. “제가 당신의 복이 되겠습니다.”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라고 하면서‘상대가 마음상하는 말’을 하게 되는 데 그 말은 안하니 못합니다. 복을 짓고 나누는 명절 되시기 바랍니다.
예전에는 세뱃돈과 설빔을 받는 기쁨이 있었는데 지금은‘명절 증후군’이라는 병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유명절은 가족의 유대관계를 확인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고유명절은 가족의 유대관계를 확인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명절이 되면 도심으로 나가있던 삼촌과 누나를 기다렸습니다. 명절에는 손에 선물꾸러미를 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용돈을 얻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선물이나 돈의 액수가 줄어들면 마음속으로는 서운해 하였습니다.
그저 공짜로 받는 주제에 주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크게 받으면 다음에 받을 때는 더 많이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게 되고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받았으나 감사할 수 없으니 줄때도 잘 줘야 하고 받을 때도 잘 받아야겠습니다.
그저 공짜로 받는 주제에 주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크게 받으면 다음에 받을 때는 더 많이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게 되고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받았으나 감사할 수 없으니 줄때도 잘 줘야 하고 받을 때도 잘 받아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공짜로 언제든지 주십니다. 알맞게 주십니다.
그러나 내 잣대로 재고는 받았네, 못 받았네 하면서 투덜댑니다. 그러나 분명 주님께서는 각자에게 알맞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지금 받은 것에 감사하면 감당할 수 있는 축복이 또 주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그러나 내 잣대로 재고는 받았네, 못 받았네 하면서 투덜댑니다. 그러나 분명 주님께서는 각자에게 알맞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지금 받은 것에 감사하면 감당할 수 있는 축복이 또 주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명절의 의미는 바로 감사하는 생활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고향을 방문하여 조상들을 기리며 차례를 지내고 부모형제, 친척과 어른들을 찾아 인사드리는 것은 감사의 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는 감사의 원천인 하느님께로 먼저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혈족만이 아니라 모든 이웃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하느님의 작품이요, 사랑 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는 감사의 원천인 하느님께로 먼저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혈족만이 아니라 모든 이웃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하느님의 작품이요, 사랑 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 민수기(6,22-27)를 보면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빌면 주님께서 몸소 복을 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복을 받는 일은 먼저 복을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복을 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을 달라고 하기 전에 주님의 이름으로 복을 베푸는 몫을 차지해야 합니다.
복을 받는 일은 먼저 복을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복을 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을 달라고 하기 전에 주님의 이름으로 복을 베푸는 몫을 차지해야 합니다.
명절의 의미는 바로 축복을 빌어주는 생활입니다. 어른에게 세배를 하면서 한 해의 건강과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덕담을 받고 이웃형제와 서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인사하는 것이 오늘 하루만의 인사 치례가 되어서도 덕담으로 끝나서도 안되겠습니다.
복을 빌어주는 만큼 삶의 모범으로 진정으로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복을 받는 사람도 복 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복을 빌어주는 만큼 삶의 모범으로 진정으로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복을 받는 사람도 복 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축복하는 삶, 생활로써 복을 함께 나누고 지켜주면서 감사의 마음을 키워갈 때 우리 주변은 더욱 빛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기는 아름다운 환경이 조성될 것입니다.
감사와 축복의 날에 주님께서는 충성스런 종과 불충한 종의 비유를 통해서 “너희는 준비하고 있어라.”(루카12,40)고 말씀하십니다.
등불을 켜고 주인을 기다리는 충직한 종처럼 감사와 축복으로 매일을 한결같이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감사와 축복의 날에 주님께서는 충성스런 종과 불충한 종의 비유를 통해서 “너희는 준비하고 있어라.”(루카12,40)고 말씀하십니다.
등불을 켜고 주인을 기다리는 충직한 종처럼 감사와 축복으로 매일을 한결같이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조상을 위해 기도하고 서로에게 복을 빌어주며 이웃과 더불어 만남을 기뻐하는 날, 정월 초하루! 모두 모두 주님의 복을 많이 받으십시오. 사랑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운수대통, 의사소통, 만사형통, 쓰레기통입니다.
하느님께서 열어주시는 길에 응답하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소통을 잘해야 합니다.
그분의 뜻을 알아듣고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이웃과도 잘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밤새도록 되새기는 사람, 그 사람은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더러운것, 이런저런 소리를 들어도 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남 흉보고 욕하고 모함하는 소리도 다 담을 수 있는 쓰레기통입니다.
쓰레기통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쓰레기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통통통통 복받으십시오.

연중 3주간 화요일 (마르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운수대통, 의사소통, 만사형통, 쓰레기통입니다.
하느님께서 열어주시는 길에 응답하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소통을 잘해야 합니다.
그분의 뜻을 알아듣고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이웃과도 잘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밤새도록 되새기는 사람, 그 사람은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더러운것, 이런저런 소리를 들어도 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남 흉보고 욕하고 모함하는 소리도 다 담을 수 있는 쓰레기통입니다.
쓰레기통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쓰레기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통통통통 복받으십시오.
연중 3주간 화요일 (마르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
반영억라파엘신부
반영억라파엘신부
한번 맺어진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끊을 내야 끊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간혹 여러 사정으로 인해서 부자의 관계를 단절하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핏줄로 맺어진 연결 고리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좋으나 싫으나 내 부모는 부모이고 자녀는 자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많은 군중에 둘러싸여 있는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하고 말하였더니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반문하시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3,35). 라고 하셨습니다.
어찌보면 핏줄로 맺어지는 관계를 무시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도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당신의 참된 가족이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좋으나 싫으나 내 부모는 부모이고 자녀는 자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많은 군중에 둘러싸여 있는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하고 말하였더니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반문하시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3,35). 라고 하셨습니다.
어찌보면 핏줄로 맺어지는 관계를 무시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도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당신의 참된 가족이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태어난 모든 이와 하느님을 향한 믿음으로 맺어지는 새로운 부모 형제자매의 관계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형제님, 자매님 하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무늬만 형제자매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에게는 태양이 형님이요, 달이 누님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신 몫을 다하였을 때 그 모두가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형제님, 자매님 하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무늬만 형제자매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에게는 태양이 형님이요, 달이 누님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신 몫을 다하였을 때 그 모두가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는 “하느님은 영이시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영이시니 영적인 분을 만나려면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눈을 떠서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영적인 관계가 먼저 입니다.
어떤 외적인 관계보다 하느님의 뜻이 우선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눈으로 보면 혈연을 먼저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아직 영적이 눈이 뜨이지 않은 탓에 “예수님께서 미쳤다”, “악령이 들렸다”(마르3,22) 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붙잡으러 회당으로 왔습니다. 결국 육친의 가족은 밖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눈뜬 가족은 예수님 안에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외적인 관계보다 하느님의 뜻이 우선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눈으로 보면 혈연을 먼저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아직 영적이 눈이 뜨이지 않은 탓에 “예수님께서 미쳤다”, “악령이 들렸다”(마르3,22) 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붙잡으러 회당으로 왔습니다. 결국 육친의 가족은 밖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눈뜬 가족은 예수님 안에 있기 마련입니다.
가끔 어떤 사람은“가족을 먼저 챙겨야지 성당을 우선하면 되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성당이 먼저’라고 말합니다.
성당에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이 가족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혹시 가족을 소홀히 한다면 그는 더더욱 성당에 나와서 주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야 합니다.
‘몸 따로 마음 따로’라면 그는 분명 참된 신앙인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인은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사랑을 통해 표현하게 됩니다.
성당에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이 가족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혹시 가족을 소홀히 한다면 그는 더더욱 성당에 나와서 주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야 합니다.
‘몸 따로 마음 따로’라면 그는 분명 참된 신앙인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인은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사랑을 통해 표현하게 됩니다.
오늘은 나의 가족은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이 하느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한마음 한뜻을 이루고 있는지 살펴야겠습니다.
혹 하느님의 일을 핑계로 가족에 소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을 알게 됨으로서 만난 새 가족을 남으로 생각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
사랑합니다.

혹 하느님의 일을 핑계로 가족에 소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을 알게 됨으로서 만난 새 가족을 남으로 생각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