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23주일 (마태18,15-20 : 로마13,8-10 : 에제33,7-9)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형제적 충고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교회는 교회에 해를 끼치면서 못된 짓을 하는 형제를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가?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은 그수가 매우 적었다. 그래서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교우들 사이의 화목과 일치라는 내적인 요구를 더 크게 느끼고 있었고, 또 교회가 하느님의 사랑에서 생겨났기에 사랑의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그 친교 안에서 모든 사람은 형제들의 믿음과 성덕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잘 깨닫고 있었다. 아무도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친교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지혜와 인내를 가지고 듣고 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오늘 복음은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관습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지은 죄를 확인하고 유죄 판결을 내리는 법정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교회는 판단과 행동의 기초를, 정의보다는 죄를 용서하고 화해하려는 자비에 두어야 한다. 형제가 잘못을 계속하더라도 교회는 그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쳐서는 안 된다. 형제적 친교를 유지한다는 것은 교회가 그를 위한 기도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기도하는 교회 안에 현존하시고 그들과 함께 기도 하실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주님보다 먼저 교회가 형제를 단죄하고 파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제가 제 형제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카인은 아벨과 연대감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도 우리의 형제들에게 연대감을 느끼지 못한다. 빌라도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사람 때문에 위험에 놓이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손을 씻으려고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주의를 주신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잘못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도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법은 죽을 위험에 있는 사람을 도와 주지 않을 때뿐만 아니라 죄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을 잃게 될 위험에 있는 사람을 도와 주지 않을 때에도 벌을 내린다(제1독서).
그리스도인의 윤리는 "이것을 하지 마라.저것을 하지 마라."와 같은 많은 계명들로 우리를 얽어매는 사슬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금지하시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에게 책임 있는 행동을 하게 하신다. 하느님께서 우리 곁에 데려다 주신 이들을 적극적으로 사랑하게 하신다. "법"은 우리에게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다(제2독서).
교회를 하나의 사회 제도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누구든지 친구들을 만나고 형제적 친교를 나눌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 교회는 다른 형제들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하나의 가정이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의 모임은 누구든지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이러한 모습은 바로 교회가 복음의 요구를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