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대축일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 마태오 10,17-22
+ 마태오 10,17-22
한국인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21년 충남 솔뫼에서 태어났다. 양반 가문이었으나 그의 아버지 김제준과 어머니 고 우르술라가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집안이 몰락하였다. 김대건 신부는 열여섯 살인 1836년 사제가 되고자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떠났다. 1844년 부제품을 받은 그는 선교 사제의 입국을 돕고자 잠시 귀국하였다가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1845년 8월 17일 상하이의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고국에 돌아온 그는 다시 선교 사제를 영입하려다가 1846년에 체포되어 여러 차례 문초를 받고 1846년 9월 16일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서울에서 한국 순교자 103위의 시성식을 거행하면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정하상 바오로와 더불어 한국의 대표 성인으로 삼았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어느 여교우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몇 년 동안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 내면서 지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것이 그에게 벅찬 짐이 되었습니다. 너무도 힘든 나머지 심지어 죽고 싶은 마음까지도 들었답니다. 그는 자신의 신세를 원망하며 왜 이러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예수님께 따졌답니다.
어느 날 그는 하도 힘이 들어 혼자서 엉엉 울었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다가와서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얘야, 왜 울고 있느냐?” 하고 말씀하시더랍니다. 그 순간 그는 예수님의 무덤 밖에서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천사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여인아, 왜 우느냐?”(요한 20,13) 그는 ‘이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더랍니다. 그 뒤로는 시어머니를 모시는 일이 바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대축일을 맞이하여 ‘이 시대의 순교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요즈음 우리 시대에는 김대건 신부님 당시의 박해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여전히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치매 든 어르신을 모시고 사는 이들, 장애인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정성껏 돌보는 이들이 이 시대의 사랑의 순교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어느 여교우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몇 년 동안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 내면서 지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것이 그에게 벅찬 짐이 되었습니다. 너무도 힘든 나머지 심지어 죽고 싶은 마음까지도 들었답니다. 그는 자신의 신세를 원망하며 왜 이러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예수님께 따졌답니다.
어느 날 그는 하도 힘이 들어 혼자서 엉엉 울었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다가와서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얘야, 왜 울고 있느냐?” 하고 말씀하시더랍니다. 그 순간 그는 예수님의 무덤 밖에서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천사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여인아, 왜 우느냐?”(요한 20,13) 그는 ‘이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더랍니다. 그 뒤로는 시어머니를 모시는 일이 바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대축일을 맞이하여 ‘이 시대의 순교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요즈음 우리 시대에는 김대건 신부님 당시의 박해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여전히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치매 든 어르신을 모시고 사는 이들, 장애인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정성껏 돌보는 이들이 이 시대의 사랑의 순교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억하며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새롭게 해 주시기 기도합니다.
1784년 최초의 영세자(이승훈)를 탄생시킨 한국천주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1794년 12월23일 비로소 한국 땅에 처음으로 주문모 신부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 후 1835년 조선에 입국한 모방 신부님은 방인 성직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1836년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 세 소년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최방제는 그곳에서 병사하였고 김대건과 최양업은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은 서양학문을 정식으로 익힌 첫 조선인으로서 최고의 지성인답게 당시 조선 왕국의 국가 정세와 교회 사정 및 민생상태에 관하여 예리하게 관찰하였습니다. 이 두 분은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을 유창한 라틴어로 써서 스승 신부님들께 보고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46년까지 21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중 한문과 한글로 쓴 편지가 각각 한 통씩이고 그 외에는 모두 라틴어로 썼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60년까지 19통의 편지를 전부 라틴어로 썼습니다. 그런데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는 대부분 사제 서품 전에 쓴 것입니다. 반면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는 사제 서품 후에 쓴 것입니다.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편지를 한 통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통해 그분의 믿음과 하느님과 그 백성을 위한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였는지 묵상하고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스물한 번째 편지는 옥중에서 쓴 것입니다.
신부님께서 1845년 8월17일에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그해 10월에 배를 타고 조선의 충청도 해안에 상륙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846년 5월12일 순위도에서 잡혀 9월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가운데 서품을 받고 조선에 입국하였지만 아깝게도 겨우 13개월 동안만 사제로 살았습니다. 그나마 2개월은 조선에 입국하기위해 황해 바다 위에서 보냈고 또 4개월은 감옥에서 지내다가 순교하셨으니 사목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한국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1784년, 지금부터 약 228년 전입니다. 당시 사회는 유교 사회였고 양반과 상놈이 구별되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습니다. 그리고 조상 제사에 대한 관습과 예절이 철저했던 시절입니다. 이때 천주교회의 기본 교리는 신분 계급과 조상제사라는 두 부분에 큰 충돌을 가져왔습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양반 상놈 구분을 거부하며 우상 숭배의 제사를 거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03년 동안(신유1801, 기해1839, 병오1846, 병인1866) 산발적인 박해 속에 살아야 했고 그 와중에 한국인 첫 사제가 나왔지만 13개월 만에 목자를 잃고 만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은 분명 다릅니다. 지나고 보니 신부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앙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출생하신 솔뫼, 순교하신 새남터, 묻히신 미리내는 오늘도 우리에게 신앙의 표징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신부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몫을 여전히 하고 계십니다. 신부님은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을 위하여 죽으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할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상에 대한 희망이 신부님을 지켜주었습니다.
옥중에서 쓰신 마지막 회유문(1846년 8월말)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님의 은총으로 세상에 나고 주님의 은총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의 은혜를 배반하니 주님의 은혜만 입고 주님께 죄를 더하면 아니 남만 못하리.
이러한 어려운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 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걷기까지 기다리라.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이런 군난 때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공덕을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성녀의 자취를 가르쳐 성교회의 영광을 더하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자(의로운 아들)됨을 증거하고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다) 하실 때를 기다리라.” 하시며 주님께 대한 믿음을 더하기를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큰 어려움도 역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너희가 감수 인내하여 주님을 위하고 오직 주님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하느님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천만 바란다.” 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큰 사랑과 믿음을 지키라는 간곡한 호소를 담았습니다. 혹 우리에게도 힘에 겨운 일이 생긴다면 더 큰 믿음으로 주님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농부가 수확을 기다리며 온갖 수고와 땀을 아끼지 않듯이 우리도 참고 견디며 천상 것에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 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17-22)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5,1-4)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삶의 여정을 보면, 열심히 산다고 하는데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실망과 좌절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고 그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따라서 다가오는 예기치 않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주님의 안배와 섭리를 찾기 위해 기도하고 간구할 때 새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김 대건 신부님의 삶은 하느님의 뜻과 세상의 일이 서로를 거스를 때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 속에서, 억울함 안에서, 생각하지 못한 난관 앞에서 끝까지 견디며 하느님을 먼저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더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만하면 됐지’‘나도 사람인데’‘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이것이 유혹입니다. 사실 천상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행복입니다. 언젠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흘리는 수고의 땀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도 눈물과 피로써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 번씩이나 넘어지면서 걸어가셨는데 우리가 아무런 수고 없이 공짜로 천국을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인내에 인내를 더할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기뻐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어떤 신자분이 성경을 읽으라는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억지로라도 하루에 한 줄이라도 읽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매일 아침 성경을 펴서 첫눈에 들어오는 한 줄을 읽고 말씀대로 실천하기로 결심하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 말씀이 마태오 복음 27장5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유다는 그 은돈을 성전 안에다 내던지고 물러가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 그러니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시 찾아 읽겠다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루카복음 10장 37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중“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너무 기가 막혀 삼세번이다 하면서 다시 성경을 펼쳤습니다.
요한복음 3장 37절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그리고는 매일 아침 성경을 펴서 첫눈에 들어오는 한 줄을 읽고 말씀대로 실천하기로 결심하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 말씀이 마태오 복음 27장5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유다는 그 은돈을 성전 안에다 내던지고 물러가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 그러니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시 찾아 읽겠다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루카복음 10장 37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중“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너무 기가 막혀 삼세번이다 하면서 다시 성경을 펼쳤습니다.
요한복음 3장 37절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우리 신자분들 중에는 오늘의 운세를 보듯, 점을 치듯 성경을 읽는 분이 계십니다. 말씀은 그렇게 읽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되는대로 눈이 가는 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나는 듣는 것입니다.
2012년 7월 8일 미사 강론
일시 : 2012. 7. 8일(일) 연중 제14주일 교중미사
강론 : 정 월 기 프란치스코 주임신부님
강론 : 정 월 기 프란치스코 주임신부님
주님, 믿음의 근력을 키워주세요
장재봉 신부(부산교구 활천본당 주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마태오 10,17-22)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
오늘은 한국교회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대축일입니다. 그분의 숭고한 얼을 기리며 그 무엇으로 ‘순교’의 삶을 살아낼 수 있었는지, 어떻게 ‘순교’까지도 감당할 수 있었는지를 가르침 받습니다.
신부님께도 목숨은 천만금을 주고도 되살 수 없는 귀한 것이고 한 번 가면 다시 못 올 세상이 아쉽지 않았을 리 만무합니다. 신부님을 향했던 권력과 출세의 유혹이 컸던 만큼 일단 순교를 피하고 목숨을 아껴 더 오래 복음을 선포하는 쪽이 허약한 조선교회를 위해서 바람직할 것이란 번민도 깊었을 터입니다.
묵상할수록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진리의 길을 따랐던 신부님의 무조건적 신앙 비법과 희망의 비결을 배우고 싶어집니다.
열다섯 살 소년 김대건의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 같습니다. 이때문에 저는 “순교자 집안에 태어나 순교자의 신앙을 이어받아 자신도 순교자가 된” 인물로 속단되는 걸 거부합니다.
박해가 한창이던 당시, 마카오 신학교를 향했던 ‘뚜벅이’ 여정은 말 그대로 고행이었습니다. 수만리를 두 발로 걸었던 길이 어찌나 험하고 고생스러웠는지 동기 최방제는 여독에 지쳐 사망하고 말았다니, 구구한 설명을 덧댈 필요가 없습니다. 먹을 것도 입을 옷도 마땅찮은 상태에서 짚신을 신고 눈보라를 헤쳐 나갔다니, 이미 생명을 내 놓았던 순교라 싶습니다.
반년 만에 그들이 마카오 신학교에 도착했을 때, 신학교 교장이 통곡을 했다는데요. 그 행색이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상거지 꼴이라 그러했답니다. 그날 세 소년의 생고생에 주님께서도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어 질끈 눈을 감았을 것만 같습니다. (총총) 이후 사제가 된 김대건은 두 사람 정도 눕기도 빡빡한 조각배, 라파엘호를 타고 충청도 강경 나바위에 도착했다니, 신부님의 천국을 위한 행로는 오로지 하느님의 도우심과 섭리를 향해 똘똘 뭉쳐 굴러간 돌멩이 신앙이라 생각됩니다. (또 총총) 나이 26세, 형장에서 당신의 목을 칠 망나니들에게마저 “너희들도 천주교인이 되어 내가 있을 곳에 오도록 하라”는 선교의 말씀을 남기셨다니, 신부님 믿음의 튼튼한 근력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첫 제자 파견에 앞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고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제자들을 파견하는 일이 물가에 아이를 내어 놓는 것처럼 불안하고 염려된다는 고백이신데요.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더 겁에 질렸을 것만 같습니다.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라는 혹독한 말씀에다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갖은 수모를 겪을 것이라는 끔찍한 말씀을 덧달고, 형제와 부모와 자식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대책 없는 말씀까지 하시니, 제자들의 오금이 저렸을 게 분명하다 싶습니다. 그럼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주저 없이 나선 “열두 사람”의 배짱이 참 대단합니다.
이때문에 오늘 바오로 사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만이 주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하게 됩니다. 환난을 당하는 일마저도 그리스도인에게는 자랑이라는 표현에 수긍합니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힘든 고난과 역경 속에는 꼭,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는 성령께서 함께하시니까요.
청년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과연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성령께서 일러주신 말씀만을 받아 전했던 진리의 증인이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의 ‘순결’을 따르려고 온 것을 성령께 맡겨드리는 지혜로써 갖은 유혹과 회유를 단호히 뿌리치고 수많은 배교의 함정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라 헤아립니다.
순교는 부활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믿고 희망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합니다.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1코린 15,2)라는 말씀을 믿어 의심치 않는 순수한 영혼만이 거친 환란에 침잠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김대건 사제께서는 간곡히 전구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근력을 튼튼히 키워, 희망과 사랑의 삶을 살아내도록 응원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환란 속에서도 은혜를 보는 영안을 갖게 되기를 청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이토록 든든한 믿음의 선조를 선물하신 주님께 찬미 바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