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일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과 같았다.>
+ 마르코 6,30-34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아시고 채워주십니다. 이 시간 우리를 가엾은 마음으로 챙기시는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성당이 허전합니다. 휴가철이기 때문입니다. 일손이 한창 바쁜 시기이기도 하지만 휴가철이기 때문입니다. 어디를 가셨을까? 쉬러 가셨습니다. 쉰다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쉬는 방법과 우리의 쉬는 스타일은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쉬지만 우리는 사람도 많고 시끄러운 곳으로 휴가를 떠납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곳으로 갑니다. 길도 막히고 잠자리도 불편하고.. 휴가를 다녀와서는 더 피곤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 휴식은 바람직한 쉼이 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건강한 휴식을 취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아주 바삐 지냈습니다.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마귀를 쫓아내며 주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예수님 앞에 모여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자랑 삼아 보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아침에 계획한 것을 열심히 살고 저녁에 삶을 되돌아보며 자기가 지낸 하루의 시간들을 예수님께 보고하는 시간은 저녁기도 시간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입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고 하셨습니다.
왜 외딴 곳을 선택 하셨을까요? 동안에 열심히 할 일을 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주님의 일이었는지, 내 일이었는지를 살펴보라는 말씀입니다. 혹 하느님의 일은 접어두고 인간적인 일에 매달린 것은 아닌지 내적으로 반성하고 채울 시간을 가져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일에 치이면 마지못해 억지로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일은 신성한 노동이 아니라 부역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휴식을 잘해야 합니다.
어느 수도원의 두 수사가 원장으로부터 들에 나가 밀을 거두어들이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두 수사는 낫으로 밀을 베어 단으로 묶어나갔습니다. 한 수사는 시간마다 쉬곤 하는데 반해 한 수사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저물었을 때 보니 쉬면서 일한 수사가 쉬지 않고 일한 수사보다 훨씬 더 많은 밀을 베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수사는 어떻게 그런 결과를 가져왔을까 궁금해 했는데 쉬면서 일을 한 수사가 말했습니다. “저는 틈틈이 쉴 때마다 제 낫을 갈았습니다.” 쉰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을 준비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세상일에 파묻혀서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때, 가족과 잘 지내고 있는지,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을 모시고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은혜를 회복하는 시간이 휴식입니다.
쉼을 잘못하면 안 쉰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음식을 잡수실 겨를조차 없이 바쁘시더라도 한적한 곳을 찾으셨고 이른 아침에 기도하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을 보내주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때때로 한적한 곳을 찾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체조배는 바로 훌륭한 휴식입니다. 자주 성체 앞으로 오십시오. 피정이나 성지순례도 꼭 필요한 휴식입니다.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일정기간 의무적으로 한적한 곳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연 피정, 월 피정을 해야 합니다. 피정이란 말 그대로 시끄러운 곳을 피해 고요한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교회법으로, 수도회 규칙으로 정해놓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 자기 소명의식을 새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대개는 침묵 피정을 합니다. 동안에 말을 많이 하고 살았으니까 침묵 가운데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내적성장의 토대를 다지는 것입니다.
우리 청주교구 신부수가 173명입니다. 신부 전체가 모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 피정을 할 때는 특별히 주교님의 허락을 받은 분외에는 모두가 참석합니다. 그래서 어떤 신부님은 건의를 합니다. 침묵을 해제해 달라! 일 년에 한 번 전체가 모이는데 동안의 삶을 서로 나누며 선 후배간의 끈끈한 정도 쌓고 친교의 장을 만드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느냐?
그래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침묵이냐? 해제냐? 어떤 결과가 나왔을 까요? 절대다수의 신부님께서 침묵을 선택하셨습니다. 한번은 부산교구 정명조 주교님께서 피정 지도를 하셨는데 첫 시간에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피정은 “절대 침묵피정”입니다. 절대침묵이란, 내가 침묵을 지키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문 여닫는 소리, 발걸음 소리까지도….. 왜 그렇게 침묵을 강조하셨겠습니까? 세상이 시끄러우면 시끄러울수록 그만큼 더 주님의 소리를 듣고 주님의 뜻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란하고 들뜬 마음으로는 결코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고요함 속에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의 거울에 비춰진 내 속을 보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일상이 몇 일씩 시간을 내서 피정하기란 힘듭니다. 그러나 한적한 곳에 가서 쉬라는 주님의 말씀을 되새겨야 합니다. 이 말씀은 좋은 휴양지에 가서 먹고 마시고 즐기라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휴가를 내서 우리 성당에 오시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어머님께 전구하면서 생기를 얻고 가십니다. 치유를 받는 분도 많이 계십니다. 어떤 분들은 가족과 더불어 요양원이나 복지시설에 가서 봉사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들은 중환자실에서 똥, 오줌을 받아내고 식사수발도 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배우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일깨웁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들의 휴가는 참으로 하느님 안에서의 휴식입니다.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휴가를 내서 성경연수에 참석하시는 분도 있고 단식원에 들어가 단식기도를 하며 주님 안에서 쉬기도 합니다.
“한적한 곳으로 가서 쉬어라”는 주님의 말씀을 가정에서 실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른 아침, 일상을 시작하기 전 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 시간, 침묵의 시간을 꼭 챙겨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예수성심상이나 성모님 앞에서 하루를 살피고 부족함을 채울 수 있도록 자기를 봉헌하면서 주님과 더불어 시작하고 주님과 함께 마쳐야 합니다. 세상이 각박해지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쉼이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쉰다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재충전의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높은 곳에, 귀한 곳에, 천상에 두어야하겠습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 받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기도 하셨지만 사람들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분께 능력이 있고 힘이 있으며 가르침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휴식을 취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보다 먼저 그 휴식장소로 와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몸이 파김치가 되어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데 군중에게 떠밀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충분히 짜증이 날 만한데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 같아 오히려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슴은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과 자비심으로 가득 차 귀찮고 짜증이 날 법한 상황에서도 꾸준한 사랑의 길을 가십니다.
과연 우리 주변에 사람이 모이고 있는가? 사람들이 나를 피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미리 가서 진을 치고 있던 사람들처럼 주님의 뜻을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것엔 바쁘고, 주님 것엔 관심이 없으면서도 주님의 복을 청하는 모습에 부끄러운 하루입니다. 오늘 만큼은 외딴 곳에서 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꼭 마련하시기 바라며…. 사랑합니다.

요즘 너무 더우셨죠?
이럴 때는 차가운 바다를 다시금 생각합니다 : 썰렁해!
이럴 때는 가장 뜨거운 바다는 피하시기 바랍니다 : 열바다
그래서 따뜻한 바다가 그립습니다 : 사랑해!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과 같았다."
<해결사 예수님>
나이에 맞지 않게 이른 성공처럼, 자기도 모르게 다가온 ‘반짝 인기’처럼, 갑자기 굴러들어온 횡재처럼 위험한 것이 또 없다고 합니다.
재물이란 것, 사람들의 박수갈채란 것, 세상의 화려함이란 것은 손으로 움켜쥔 물과도 같기 때문이겠지요. 있다가도 순식간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재물이요, 더 새로운 대상을 향해 황급히 옮겨가는 것이 사람들의 시선이기 때문이겠지요.
결국 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변화무쌍한 인간만사와 달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보다 영속적인 것, 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 세상이 것들과는 달리 크게 실망시키지 않는 것...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요? 세월과 함께 더욱 깊어가는 훈훈한 우정, 인간관계 안에서 오고가는 순수하고 지고한 사랑,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 진리와 정의를 향한 투신...
그런데 따지고 보니 그런 것들도 결국 인간과 더불어 시작되고, 인간과 더불어 끝마치게 되는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니고 마는군요.
세상이 지나가고, 모든 인간이 지나가고, 인간이 한 평생 쌓아온 탑도 무너지고, 다 지나가고 나서 결국 다가오시는 분이 계시는 데, 그분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실 분, 우리를 끝까지 책임져주실 분, 우리 생명의 주관자, 우주만물을 주재하시는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집요하게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군중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아마도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덧없음, 인간만사의 무상함을 온 몸으로 체득한 사람들이지 않았을까요?
여기 저기 좋은 곳, 기댈만한 곳, 실망시키지 않는 곳을 찾아 숱한 곳을 다녀봤을 것입니다. 딱딱 속 시원히 짚어준다는 예언자도 찾아가봤을 것이고, 용하다는 의사도 만나봤을 것이고, 민간요법, 대체요법.... 다 다녀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몸 버리고, 가산 탕진하고, 시간 다 낭비하고, 결국 엉뚱한 곳에서 헛물만 켜다가 드디어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물론 고질병을 치유 받은 행복도 컸을 것입니다. 몹쓸 마귀로부터 해방되는 그 기쁨도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군중들을 더 기쁘게 한 것은 다른 데 있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 그 어디서도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 늘 고민 고민해 오던 문제, 다시 말해서 삶과 죽음의 문제, 영원한 생명의 문제를 예수님께서 단 칼에 해결해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발걸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 고정되어 있습니까?
보다 한 차원 높은 곳,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곳, 우리의 근원적인 갈망을 해결시켜줄 곳, 그곳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일시 : 2012. 7. 22일(일) 연중 제16주일 새벽미사
강론 : 정 월 기 프란치스코 주임신부님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강헌모(kanghmo7)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복음전파를 마치고 예수님께로 다시 모여옵니다.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들을 낫게 해주었으며,
가난과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기쁨을 전해 준 일입니다.
주님이 사람들에게 전해 주시고자 하는 은총과 평화와 사랑을 주님을 대신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이 제자들이
파견되어 한 주 된 일이였지요.
머나면 도보여행에 사람들 한테 무던히도 시달려서 제자들은 많이 지쳐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와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권하며
배를 타고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함께 떠나십니다.
사막의 교부 안토니오 성인은
사막에서 은수생활을 하다가도 도시에 나가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사막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도시에 머물지 않고 왜 자꾸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으로 돌아가느냐고 사람들이 묻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지요."
성인에게는 사막이 바로 물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와 친밀히 만나는 것은 힘들어집니다.
정신이 산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외딴곳으로
데려가신 이유는 번잡한 세상을 떠나서
당신과 오붓하게 머물게 하심으로써
그들에게 다시 힘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교우들은 일상을 떠나
진정한 휴식과 마음의 평화를 얻기위해서
기회만 있으면 피정을 가는 것이겠지요.
피정은 세상이 주는
기쁨이나 평화와는 전혀 다릅니다
마치 정화된 물처럼
맑고 깨끗하여 고요하고
은근한 평화가 침묵 안으로
잦아들어 포근하고 평안한 것이지요.
진정 신앙인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적으로 주님과 머물 줄 아는 영성이라는 설명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